- 위근우의 웹툰 네비게이터
- <포천>, <한섬세대>, <오성X한음>의 유승진 작가
정통 사극 <명량>, 웨스턴(미국 서부극의 형식을 빌린 - 옮긴이) 사극 <군도>, 코믹 사극 <해적>까지 올해 극장가는 사극 풍년이다. 성격이 다른 이들 사극에서 조선(이성계의 조선왕조 - 옮긴이)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때론 역사적 사건으로, 때론 장르적 상상력을 실현할 수 있는 시공간으로 활용된다. 이 중 무엇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너무 역사 고증에 충실하면 픽션(허구의 창작물 - 옮긴이)으로서의 상상력을 발휘하기 어렵고, 시대를 너무 맥거핀(극적 장치)으로 활용하면 굳이 그 시대를 선택할 당위가 사라진다. 사극들은 이 양극단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며 최적의 균형을 찾게 된다.
그런 면에서 현재 <오성X한음>을 연재하는 유승진 작가의 ‘팩션(사실[Fact]과 허구[Fiction]를 합친 말. 사실에 바탕을 두되, 세부적인 사항이나 일부 내용은 사실과는 다른 작가의 견해/상상력을 덧붙여서 만들어낸[또는 재해석한] 글이나 만화를 일컫는 말이다 - 옮긴이)’ 사극들은 상당히 모범적인 답을 모색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사실 오성과 한음이라는 오래된 콤비를 소환해 셜록 홈스와 왓슨 같은 추리 콤비로 재탄생시키는 것이 아주 기발하지는 않다. 역사 속 석학이 추리를 펼치는『탐정 아리스토텔레스』나『살인의 해석』같은 국외(國外. 나라[國] 밖[外]. 그러니까 외국 - 옮긴이) 추리소설도 있었고, 당장 한국에도 케이블 드라마(연속극 - 옮긴이) <조선 추리활극 정약용>이 있다. 사극에 특화된 만화가로서 유승진 작가의 탁월함은 이러한 가상의 설정을 실제 역사의 흐름 안에 위화감 없이 배치한다는 것이다.
가령 실제로 젊은 날의 두 사람이 사가독서라 하여 일종의 휴가를 받은 것에 대해 탐정으로서 왕의 밀명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절묘하게 끼워 맞추는 식이다. 이건 단순히 작가의 역사 지식을 과시하는 정도로 폄하할 수 없는데, 그들의 첫 사건이자 미처 피의자의 억울함을 풀어주지 못했던 사건을 역시 역사에 기록된 고문 중 낙태한 임산부의 일과 연결시킬 때, 공권력의 빈틈을 보완하는 탐정으로서 두 사람의 캐릭터가 훨씬 생생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진다.
이처럼 실제 역사에 단단히 뿌리박을수록 동시대(同時代. ‘같은 시대’라는 뜻. 여기서는 ‘작가와 같은 시대’, 그러니까 작가가 사는 시대를 일컫는 말이다 - 옮긴이)의 고민을 더 잘 반영할 수 있다는 게 사극의 아이러니(역설[逆說] - 옮긴이)다. 당대의 사회적 요소를 외면했을 때 사극에 남는 건 화려한 비단 의복 같은 스타일뿐이다.
하지만 형조(현재 법무부)의 개혁이 필요했던 선조 시대를 반영한 <오성X한음>은 공권력의 정의라는, 현재에도 유효한 테마 안에서 추리극을 펼칠 수 있다. 제목부터 88만원 세대에 대한 패러디인 <한섬세대>는 한 달 한 섬의 녹봉에 불과한 미관말직(微官末職. ‘작은[微] 벼슬[官]과 끄트머리[末]에 있는 일자리[職]’. 그러니까 ‘자리가 아주 낮고 변변찮은 벼슬’이라는 뜻 - 옮긴이)에 목을 매는 조선 후기 젊은이들을 통해 현재의 청춘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어쩌면 우리가 굳이 과거의 사건을 역사책이 아닌 극(예컨대 영화나 만화영화나 연속극 - 옮긴이)으로 봐야 하고, 굳이 극을 동시대가 아닌 과거를 배경으로 풀어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아닐까. 사극을 통해 역사는 살아있는 이야기가 되고, 역사를 통해 사극은 구체적인 실체를 얻게 된다. 물론 앞서 이것은 역사와 픽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잡았을 때의 이야기다. 유승진 작가의 작품들처럼.
- 위근우(매거진[잡지]『아이즈』취재팀장)의 글
-『한겨레』서기 2014년 8월 2일자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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