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슬로베니아인 학자의 한국인과 한국 역사에 대한 평가

개마두리 2014. 9. 15. 18:14

한국 사람은 20세기의 파란만장하고 극심한 역경을 견뎌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요. 그 고통이 너무도 극심했던지라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만행을 잊기 위해서라도 한국 사람들은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듣는 이야기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그런데 제가 알기로 한국 사람들은 “잊어버리자. 그러나 절대 용서하지는 말자.”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기존 가치, 표준화된 공식을 전도하는(뒤집는 - 옮긴이) 니체(철학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 - 옮긴이)의 철학을 적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저는 한국 사람들의 이 같은 태도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용서하지만 잊지는 말자.”라는 말 자체가 조금 위선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어쩌면 그 문구(文句. 순우리말로는 ‘글귀’ - 옮긴이) 자체가 교묘하게 인간들을 조종하는 논리가 아닌가 합니다. 말하자면 “당신의 만행을 용서는 하겠지만, 당신이 한 짓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영원히 기억하겠다.”라는 사고가 담겨 있으니까요.

 

-『나는 누구인가』(‘21세기북스’ 펴냄, 서기 2014년)에 실린 ‘슬라보예 지젝’ 박사의 글「사유하라, 그리고 변화하라」에서

 

* 슬라보예 지젝 : 슬로베니아 사람(백인 남성)인 지식인.

 

* 슬로베니아 : 발칸 반도의 서북쪽 끝에 있는 내륙국가. 예전에는 유고슬라비아 공화국의 일부분이었고, 냉전이 끝난 뒤에 유고슬라비아가 해체되자 독립국가가 되었다. 발칸 반도에 있는 나라 가운데 가장 안정되고 잘 사는 나라로 꼽힌다. 참고로 이 나라는 보스니아 내전과 코소보 독립전쟁 때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