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역사를 왜 배우느냐 묻는다면

개마두리 2014. 10. 14. 14:17

- 박시백(『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의 저자)의 글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느냐.’ 이는 내가 종종 마주하게 되는 질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이 땅의 일원으로 살아가려면 우리말과 글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답한다. 때로는 나 자신의 정체성을 바로 알기 위해서라고, 오늘을 바로 살아가기 위해서라고 답하기도 한다. 혹은 역사에 대한 교양이 쌓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그만큼 더 바른 판단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와 사회, 문화와 예술에 대한 이해까지도 한층 깊어질 수 있다고, 조금 더 긴 답을 내놓기도 한다.

 

어느 것 하나 똑 떨어지는 답이 아니고, 어쩌면 이 모든 것이 필요한 답의 일부에 지나지 않아 이들의 총합이라야 제대로 된 답이랄 수 있겠지만, 이 모두가 ‘왜’에 대한 답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한다.

 

역사는 어렵다고들 한다. 고조선(단군조선 - 옮긴이) 이전부터 시작해 각 시대의 정치체제, 경제구조, 사회와 문화, 풍속은 물론 주요한 사건과 인물들, 또 그 인물들이 남긴 업적이나 저작과 예술품까지, 심지어는 관련된 연도들까지 외워야 하는 게 학교에서 배워온 역사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역사는 우리 조상들이 이 땅 위에서 살아낸 이야기다. 그들이 내딛은 발자취의 흐름이자 역사의 고비마다 어떻게 대처했는지에 대한 서사다. 우리가 끝내 경험해보지 못할 숱한 경험들의 축적이다. 잘 정리된 역사는 ‘사건’이 아니라 ‘사연’을 담고 있다. 그러기에 역사는 잘 만들어진 드라마(연속극[連續劇] - 옮긴이)나 영화처럼 얼마든지 재미있을 수 있고, 우리의 마음 속에서 희로애락을 끌어낸다.

 

(중략)

 

가해자가 가해의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추억하고 기념하려는 오늘이기에 망각은 부끄러움을 넘어 죄악이 될 수 있다. 그러기에 지금 여기서, 역사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덧붙여야겠다. 기억해야 할 것은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잊지 않기 위해서라고.

 

-『역사 ⓔ 2』(EBS <역사채널 ⓔ>지음, 북하우스 펴냄, 서기 2013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