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짜 :2015.09.22.
- 출처 : http://jisiks.com/220488806442
지난 9월 10일 밤, 만화계는 웹툰 작가 대나무숲(이하 대나무숲)이라는 한 트위터 익명 계정의 제보로 한 차례 뜨거워졌다. 유명 웹툰 플랫폼인 L사, 즉 레진코믹스(이하 레진)의 작가임을 밝힌 그는 레진에서 변경한 수익 배분 비율을 문제 삼는 동시에, 공식적 채널을 통한 레진의 발언들에 대해 ‘언플’과 ‘거짓말’이라 비난했다.
하지만 “나중에 몇 배로 돌려받을 줄” 알라는 격한 표현과 별개로 “미니멈 200+코인 수익이 아니”라는 것을 비롯해 레진이 결코 작가를 우대하지 않는다며 내놓은 해당 트윗의 팩트들은 크게 새로울 게 없었으며, 정확히 어떤 부분이 왜 문제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정확히 말해 이 문제는 사실과 거짓이 대립하는 구도의 ‘진실게임’보다는 하나의 사실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이 대립하는 해석의 문제에 가깝다. 해석에 따라 이쪽도 옳고 저쪽도 옳다는 건 아니다. 타래를 풀 듯 하나하나 맥락을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서만 사태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뜻이다.
[아이즈]는 현재 레진의 계약에 대해 문제 삼고 성명서를 낸 작가들을 직접 만나 입장을 묻고, 업계 관계자들에 대한 취재(레진 측에도 답변을 요청했지만 아무 답이 없었다)를 통해 대나무숲에 의해 촉발된 여러 쟁점에 대한 FAQ를 준비했다. 부디 이것이 해당 문제와 유료 웹툰 시장에 대한 선정적이지 않은 이해를 도모하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Q1. 대나무숲이 문제 삼은 것들은 모두 정말 팩트인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성희롱 급의 이야기’라는 것에 대해서는 해당 작가의 직접 증언을 듣지 않는 이상 확인하기 어렵지만 계약에 대해 문제 삼은 것들 대부분, 가령 코인 수익(레진은 유료 만화와 무료 만화가 있으며, 유료 만화를 보기 위해선 코인을 결제해야 한다. 보통 한 편에 코인 2개, 혹은 3개를 사용한다.) 배분을 개당 70원에서 50원으로 줄이는 것, 독점적 대행권의 제시, 지각에 대한 징벌적 페널티 등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중 대부분은 이미 레진에서 직접 밝힌 것들이라 레진이 거짓말을 했다고도, 대나무숲이 폭로를 했다고도 볼 수는 없다. 다만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입장을 내놓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여태까지 레진이 여론을 유리한 쪽으로 주도했다고는 할 수 있다.
Q2. 기사들을 보면 레진이 최저 고료인 미니멈 개런티(이하 MG)를 200만 원으로 ‘올린’ 건 작가를 우대하는 것이라 하던데.
200만 원이 작가의 최소 생활을 보장해줄 수 있는 액수냐(어시스트 비용이나 취재비를 생각하면 부족하다.), 200만 원이 오직 레진에서만 보장되는 꿈의 액수냐(코믹스퀘어 등 후발주자 중에도 월 200만 원, 혹은 주 50만 원의 MG를 보장하는 플랫폼들이 있다.)는 것과는 별개로, MG의 액수가 올라가는 건 창작자의 복지를 위한 일이 맞다.
레진은 오직 독자의 유료 결제로만 수익을 내는 사업체다. 여기서 가장 간단한 셈법은 모든 작가가 자기가 버는 것과 비례해 회사와 일정 비율로 수익을 배분하는 것(수익 셰어)이다. 실제 초기 레진은 그렇게 운영됐다. 이때의 비율은 작가 9 대 회사 1이었다. 비율만 보면 철저히 작가 프렌들리하다고 할 수 있지만 억대 수익을 벌어들인 네온비의 [나쁜 상사] 같은 히트작이 아닌 경우 월 10만 원 정도 받는 작품도 있었다. 당연히 기본 생활이 가능한 수준의 MG에 대한 요청이 있었고 조금씩 MG가 올라가 최근까진 고정 고료 월 150만 원과 수익 셰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해 계약할 수 있었다.
레진은 이번 새 계약서에서 모든 작가들이 수익 셰어로 계약하되, 200만 원 이하로 버는 작품에 대해서는 최소 200만 원을 보장해주는 안전망으로서의 MG를 제시했다. 가령 월 5만 원의 수익을 내든 190만 원의 수익을 내든 MG 200만 원은 보장받을 수 있으며, 200만 원 이상의 수익을 내는 작품은 버는 만큼 가져갈 수 있다.
이에 대해 대나무숲은 기본 고료 200만 원에 유료 수익을 더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을 문제 삼았고, 지난 8월 초 [한겨레]에서도 같은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하지만 출판 시장에서도 선인세로 작가에게 일정 액수를 보장하고, 수익이 그 액수를 넘겼을 때부터 추가 인세가 지급된다는 걸 떠올리면 레진의 방식이 불합리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Q3. 그럼 코인 수익에서 작가의 몫을 ‘줄인’ 건 문제가 맞나.
입장 차가 있다. 현재 레진의 코인 가격은 평균 140원이며 이 중 플랫폼 수수료로 빠져나가는 돈을 빼면 100원 정도다. 이걸 작가가 70원, 레진이 30원 가져가던 것을 앞으로 계약할 신작에 대해 작가가 50원, 레진이 50원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단순히 작가 수익을 줄이고 회사 수익을 늘린다고 볼 것이냐, 고수익 작가들의 수익을 조금 낮춰 다른 작가들의 MG를 보장해주는 것으로 볼 것이냐다. 현재 레진이 주장하는 것은 후자다. 복지를 늘리기 위해선 증세가 필요하듯, 총매출액이 고정된 상태에서 최저안전망으로서의 MG를 올리기 위해선 그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작가들의 수익을 조금 나누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민들이 증세에 합의하기 위해선 증세 없이도 원하는 복지를 만들 만큼의 남는 예산은 없는지, 혹여 새는 예산은 없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다.
바뀐 수익 비율을 문제 삼는 작가들은 이 과정이 선행되지 않았기에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작가들에 따르면, 면담 중 현재로선 매출에 비해 회사 마진이 많지 않으며 바뀐 수익 배분을 통해 회사에 들어오는 돈을 더 늘려 사업을 확장하겠다는 뉘앙스의 해명도 있었다. 물론 이것이 레진 수익을 위해 작가 수익을 줄이는 것이라는 걸 증명해주는 건 결코 아니지만, 새 계약 기준을 내놓기 전 소속 작가 모두를 대상으로 한 공청회나 사업설명회를 열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한 건 절차상 분명 아쉬운 부분이다.
Q4. 코인 수익 변화를 거부하는 건 코인 수익이 많은 잘 버는 작가들이겠다.
의외로 그렇지 않다. 현재 협상을 벌이는 작가들 중엔 오히려 MG의 혜택을 보는 작가들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이 바뀐 비율을 문제 삼는 건 작가들의 미래 가치를 깎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기존 수익 비율로도 200만 원을 못 넘기던 작가들로서는 지금 셈법으로도 당장 손해 볼 게 없다. 하지만 월 수익 200만 원이 작가로서의 최종 목표가 아닌 이상, 코인 수익이 줄어드는 건 하한선인 200만 원을 넘기까지의 허들을 더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가령 기존 코인 수익으로 월 180만 원을 벌던 작가 A가 MG 이상을 벌어들이기 위해선 20만 원만 더 수익을 내는 걸 목표로 삼고 노력할 수 있다.
하지만 코인당 수익이 70원에서 50원으로 떨어지면 A의 총 코인 수익은 130만 원이 채 안 된다. 물론 두 경우 모두 200만 원이 보장되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이상을 벌기 위해서 넘어야 할 허들은 20만 원에서 70만 원으로 늘어난다. 현재 유료 웹툰 시장의 규모에서 200만 원이 합리적인 수준의 기본급인 건 사실이지만, 작가에 따라 그것만으로 연재 기간을 버티긴 쉽지 않으며, 그 기준을 넘긴 더 어려워졌다.
레진 측은 새로운 코인 수익 배분이 성인물로의 쏠림을 막고 실험적인 작품의 생존을 보장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기본 생계가 보장되지 않으면 모두들 수익이 나는 장르로만 몰릴 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 있는 말이다.
하지만 다르게 보면, 비인기 장르로 MG 200만 원 이상을 벌기는 이제 더더욱 어려워졌다. 그 이상의 수익을 바라는 입장에선 오히려 실험적인 작품보단 수익이 보장된 장르로 넘어가기 더 쉬울 수도 있는 구조다. 게다가 작가는 연재하지 않을 때 더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연재 중이지 않을 땐 MG가 아닌 오직 완결작의 코인 수익에만 기대야 하는데 그 비율이 떨어진 건 상당히 치명적이다. 레진 입장에서도 작가 입장에서도 전체 예산의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유료 결제 외의 수익 모델인 2차 사업, 글로벌 출판권 등의 문제가 중요한 건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도 대나무숲이 밝힌 독점적 대행권 등 문제적인 조항들이 있었다.
Q5. 독점적 대행권이란 뭔가. 레진에서는 독점적 대행권이 아닌 우선협상권이며, 또한 계약결정권은 작가가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가령 레진에 연재 중인 A라는 작품이 영화화된다고 할 때, 작품의 저작권은 작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협상은 A의 작가가 주도하거나 본인의 에이전시에 맡기거나 연재처인 레진에 맡기는 경우의 수가 가능하다. 우선협상권은 해당 사안에 대해 우선적으로 레진에게 협상권을 준다는 것으로, 계약결정권은 작가가 가지고 있기 때문에 만약 레진의 협상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다른 루트로 협상하는 게 가능하다. 하지만 이번 계약서에서는 우선적 협상권과 독점적 대행권이 함께 명기되어 있었으며, 이럴 경우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다고 해도 협상권을 레진이 독점하게 된다. 한국만화가협회는 이에 대한 수정을 권고했고, 레진 측은 Q&A 방식의 해명 글을 작가들에게 보내며 독점적 대행권이 아닌 우선적 협상권이라는 것을 명확히 했다.
하지만 지난해 [에이코믹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볼 수 있듯, 독점적 대행권은 아니지만 이미 레진은 우선협상권과 최종거절권을 가지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최종거절권 개념에 대한 레진 측의 설명은 따로 없는데, 만약 이것이 레진과 별개로 진행된 협상에 대한 최종적인 거절권을 의미한다면 결과적으로는 독점적 대행권과 마찬가지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선 최종거절권에 대한 레진 측의 명확한 개념 정의 혹은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또한 국내 유료 결제 외의 수익 채널이라는 면에서 또 다른 의미의 2차 사업이라 할 수 있는 글로벌 전자출판권 역시 문제가 많았던 사안이다. 해외매니지먼트의 권리를 연재처에서 요청하는 것 자체가 부당한 건 아니지만, 2차 사업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작가 개인이 직접 시도하거나 에이전시를 통해 시도할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 항목을 연재 계약서에 포함시킬 경우 작가로선 레진에서 연재를 하기 위해 해외매니지먼트의 권리를 자동적으로 레진에 맡겨야 했다. 다행히 이 역시 연재 계약과는 별개로 계약하는 방향으로 수정되긴 했다. 하지만 해당 계약서에서 해외 수익 비율이 회사 8, 작가 2로 책정된 것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다. 자본력의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모 포털의 경우 해외 수익의 비율이 작가 7, 회사 3이다.
Q6. 그렇다면 레진은 본인들의 말처럼 창작자를 우대하는 사업자인가 아닌가.
레진이 웹툰 작가들이 먹고사는 방식에 도움을 줬다는 점에서는 분명 그렇다. 한국에서 거의 전무했던 유료 웹툰의 수익 구조를 성공적으로 설계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거대 포털 독주 체제로 가던 웹툰 시장에 새로운 사업자들이 들어설 자리를 마련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사업자 중 작가를 더 존중하는 곳이냐는 질문이라면 글쎄. 결국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창작자들이며 대나무숲을 비롯해 작가들의 성명서 사태 등이 벌어진 건 레진에게 존중받지 못한다고 느낀 창작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레진에 소속된 작가 수가 400여 명이라는 것을 떠올릴 때 성명서를 낸 44명은 너무 일부라고 할 수도 있다. 작가들을 대표하는 용기 있는 전위일 수도 있지만 철없는 소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쟁점 정리에서 보듯 레진이 비양심적이었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작가들의 문제제기가 근거 없는 투정이라 말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이 쟁점들은 매체를 비롯한 공론장 안에서 동등하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건 레진이 창작자를 우대하는 곳이냐 아니냐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 대중이 그것을 궁금해한다는 사실 그 자체다.
지금까지 레진은 자신들이 얼마나 작품의 다양성을 위해 노력하는지, 작가들이 얼마나 만족하고 있는지에 대해 효과적으로 홍보를 해왔다.
거짓말이 아닌 이상 이런 언론 플레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그럴수록 말해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불만과 박탈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특히 협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작가들에게 보낸 해명성 Q&A가 어떤 경로인지 다음 날 인터넷 커뮤니티 루리웹을 통해 대중들에게 공개되며 회사 입장에 유리하게 여론이 형성된 것이나, 연재 계약서에 글로벌 전자출판권이 포함되는 것을 강경하게 고수하다가 레진 소속이 아닌 작가들 사이에서도 비판적 여론이 형성되자 수정하는 과정을 보면, 과연 레진이 우선하는 건 소속 작가의 권익인지 그 바깥의 여론인지 궁금해지는 건 사실이다.
물론 레진은 사업 이익을 내야 하는 사업자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 선에서 여론을 유리하게 이끄는 것도 필요하다. 여기엔 하등 문제가 없다. 하지만 그조차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공룡 포털에 대항해 작품 다양성과 작가 권익을 보호하는 선구자 이미지를 유지하려 한다면, 그걸 위해 자신을 둘러싼 모든 잡음을 부당하거나 뭘 모르는 것으로 규정한다면, 그건 문제가 될지도 모른다.
- 글 : 위근우
- 교정 : 김영진
[출처] 레진코믹스 논란에 대한 FAQ|작성자 지식스닷컴
*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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