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금화 마술사 도널드

개마두리 2016. 4. 16. 00:34


후덴과 두덴이라는 농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마당에서 닭을 치고, 풀밭에서 양떼를 키우며 강가에서는 수십 마리의 소를 키웠다. 그들은 많은 짐승들을 키우고 있었지만 결코 행복하지 못했다.


그들의 두 농장 사이에는 가난한 도널드 오니어리가 살고 있었다. 초라한 오막살이에 사는 그는 손바닥만한 풀밭에서 데이지라는 암소 한 마리를 키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암소가 아무리 풀을 열심히 뜯어먹어도, 도널드는 우유 한 통과 버터 한 덩어리를 겨우 얻어낼 뿐이었다. 두덴과 후덴이 그의 재산을 탐낼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두덴과 후덴은 그렇지 않았다. 부자란 자기가 가진 많은 재산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차지하려고 안달을 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두덴과 후덴은 도널드의 손바닥만한 땅을 뺏는 방법을 궁리하느라고 밤에 잠도 자지 못했다. 그들은 말라빠진 암소 데이지 따위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어느 날, 길에서 만난 두덴과 후덴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둘은 저 ‘건달’ 도널드 오니어리를 이 동네에서 쫓아내야겠다면서 이를 갈았다. 드디어 후덴이 이렇게 말했다.


“암소 데이지를 죽여버리자. 그래야만 저 놈이 여길 떠날 거야.”


그렇게 하기로 즉시 합의한 그들은, 해가 지기도 전에 가련한 암소 데이지가 누워 있는 조그마한 헛간으로 기어갔다. 낮에 제대로 풀을 뜯어먹지 못한 암소는 그나마 열심히 되새김질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도널드는 암소가 밤에 잘 지내고 있는지 살펴보려고 헛간으로 갔다. 그런데 가련한 암소는 그의 손을 혀로 핥아주고는 그만 죽어버렸다.


도널드는 꾀가 많은 사람이었다. 암소가 죽어서 크게 실망하기는 했지만,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궁리하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다가,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는 암소의 가죽을 어깨에 둘러메고 시장으로 떠났다.


바지의 양쪽 호주머니에 동전이 잔뜩 담겨 있어서, 짤랑짤랑 부딪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는 집을 나서기 전에 암소 가죽을 여러 군데 조금씩 찢어서 그 틈새마다 동전을 끼워 두었다.


이윽고 읍내에 이르자, 가장 좋은 여관의 식당으로 거침없이 걸어 들어가 못에 가죽을 척 걸어둔 채 자리를 잡고는 주인에게 말했다.


“위스키 한 병! 최고급으로.”


여관 주인은 도널드의 차림새를 훑어보더니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왜? 돈이 없을까봐 걱정되쇼? 저 암소 가죽이 내가 필요한 돈을 얼마든지 줄 테니 염려마쇼.”


도널드가 지팡이로 가죽을 한 번 후려치자, 동전 한 개가 떨어졌다. 여관 주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가죽, 얼마면 되겠습니까?”


“저건 팔 물건이 아닙니다.”


“금화 한 개 주겠소.”


“안 판다고 했잖소. 저 가죽 덕분에 난 수십 년을 잘 살았다 이거요.”


도널드가 지팡이로 가죽을 한 번 더 후려치자, 동전이 또 굴러 떨어졌다. 여관 주인과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도널드는 가죽을 팔고 말았다. 그날 밤, 도널드는 후덴의 집을 바로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다.


“후덴, 제일 좋은 저울을 좀 빌려주겠나?”


후덴이 뒤통수를 긁어대면서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저울을 빌려주었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간 도널드는 금화들을 일일이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달아보았다. 그런데 후덴이 저울 바닥에 버터를 발라놓았기 때문에, 도널드가 그 저울을 다시 돌려주었을 때는 금화 한 개가 저울 바닥에 달라붙어 있었다. 후덴은 소스라치게 놀라 도널드가 돌아서기가 무섭게 두덴에게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두덴, 저 건달에 망할 자식이 ….”


“도널드 오니어리 말인가?”


“그야 물론이지. 놈이 금화 한 자루를 가지고 와서 무게를 달았다니까.”


“그걸 어떻게 알았지?”


“내 저울을 놈이 빌려갔었는데, 금화 한 닢이 여기 붙어 있더라구.”


두 농부는 부리나케 도널드의 집으로 달려갔다. 도널드는 금화 열 개씩 묶어서 꾸러미를 짖다가, 마지막 꾸러미를 만들고 있을 때 잃어버린 금화 하나 때문에 그만 일을 중단한 채 앉아 있었다. 두덴과 후덴은 들어가도 괜찮냐고 묻지도 않고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어째서 이런 일이 다 있단 말이오!”


그들은 그 말부터 퍼부었다. 그러나 도널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이렇게 말했다.


“후덴, 두덴, 안녕들 하셨소? 당신들이 내게 못된 장난을 쳤지만 난 엄청난 행운을 얻게 되었네. 암소 데이지가 죽었을 때 난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좋은 수가 나더군. 쇠가죽을 지금 시장에서 팔면 그 가죽 무게와 똑같은 무게의 금화를 받을 수가 있거든.”


후덴이 두덴의 옆구리를 쿡 찔렀고, 두덴은 후덴에게 눈짓을 했다.


“도널드, 그럼 우린 가볼게.”


“고마운 친구들, 잘 가요.”


다음 날, 후덴과 두덴은 암소든 암송아지든 모조리 잡아서 가죽을 벗긴 뒤, 후덴의 가장 큰 수레에 싣고 두덴의 가장 튼튼한 말 두 필을 몰고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에 도착한 그들은 각각 가죽을 팔에 걸친 채 돌아다니면서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쇠가죽 사요! 쇠가죽 사요!”


가죽을 가공하는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다.


“얼마요?”


“쇠가죽 무게와 똑같은 무게의 금화를 주면 팔지요.”


“아직 술이 덜 깬 모양이군.”


그는 한 마디 말을 내뱉고는 작업장으로 돌아갔다.


“가죽 사세요! 방금 벗겨낸 튼튼한 쇠가죽 있습니다!”


구두 만드는 사람이 다가와서 물었다.


“그 가죽, 얼마요?”


“쇠가죽 무게와 똑같은 무게의 금화를 주면 팔겠소.”


“아니, 지금 누굴 놀리는 거야? 이거나 먹어라!”


구두 만드는 사람이 후덴을 세게 후려치는 바람에 후덴은 비틀거렸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몰려들면서 소리쳤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 난리요?”


구두 만드는 사람이 소리쳤다.


“아, 글쎄 이 악당들이 쇠가죽을 팔겠다면서 가죽 무게와 똑같은 무게의 금화를 내라는 거요. 거 참 기가 막힐 노릇이지! 안 그렇소?”


몸이 뚱뚱해서 제일 나중에 달려온 여관 주인이 큰소리로 고함쳤다.


“놈들을 잡아! 저 놈들을 잡으란 말이오! 저치들은 어제 형편없는 가죽을 내게 금화 30냥에 팔아먹은 악당들이오.”


두덴과 후덴은 실컷 얻어터진 후 집으로 가려는데, 시장의 모든 개들이 뒤를 추격하는 바람에 그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쳐야만 했다. 그들은 도널드를 예전보다 한층 더 미워하게 되었다. 모자가 찌그러지고 옷이 찢어진 채 시퍼렇게 멍든 얼굴로 허겁지겁 달려오는 그들에게 도널드가 말을 걸었다.


“아니, 싸움이라도 했소? 경찰을 만나 도망쳐오는 거요?”


“이 악당아! 널 경찰에 고발하고 말테다. 그 따위 엉터리 거짓말로 우릴 속이다니!”


“누가 속였다는 거예요? 당신들 눈으로 금화를 똑똑히 보지 않았소?”


그들에게 그 말이 먹힐 리가 없었다. 도널드는 그 대가를 치러야만 했다. 두덴과 후덴은 그를 마침 곁에 있던 곡식 자루에 처박고 꽁꽁 묶은 다음, 밧줄 매듭 사이로 막대기를 꿰어서 각각 한쪽 끝을 어깨에 멘 채 브라운 호수로 향했다.


브라운 호수로 가는 길은 멀고, 게다가 먼지투성이였다. 후덴과 두덴은 지치고, 다리도 아프고, 목도 무지 말랐다. 마침 길가에 여관이 하나 있었다.


“피곤해 죽겠으니 저기 여관에서 좀 쉬었다 가세. 이 놈은 먹은 것도 없을 텐데 무겁기 짝이 없어.”


후덴의 말에 두덴은 반대하지 않았다. 그들은 도널드를 감자 자루라도 되는 듯 여관 문 앞에 털썩 내려놓았다.


“이 악당아, 얌전히 거기 들어 있어.”


도널드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다. 얼마 후, 유리잔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더니, 후덴이 목청을 돋구어서 노래를 불러댔다.


“난 그녀를 차지하지 않겠어. 그녀를 차지하지 않겠다, 이거야!” 라고 도널드가 말했지만 아무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가 두 번째로 더 크게 소리쳤지만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나 세 번째로 아주 크게 외치자, 마침 풀밭에서 소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던 농부가 물었다.


“누구를 차지하지 않겠다는 거요?”


“그야 왕의 딸이지요. 저 사람들은 나를 강제로 공주와 결혼시키려고 해요.”


“당신은 정말 행운아로군. 내가 당신을 대신할 수만 있다면 뭐든지 주겠어요.”


“이제 뭘 좀 아시는군! 농부 주제에 금과 보석들로 잔뜩 치장한 공주와 결혼한다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가!”


“보석들로 치장했다고요? 제발 당신 대신 제가 거기에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당신은 매우 정직한 사람이군요. 공주가 아무리 예쁘고 온 몸을 보석으로 장식했다고 해도 난 조금도 마음에 없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녀를 차지해도 좋습니다. 내가 달아날까 걱정되서 저 사람들이 나를 꽁꽁 묶어버렸으니 우선 이 밧줄부터 풀어주시오.”


도널드가 자루에서 풀려나고 대신 농부가 들어갔다.


“자, 이제부터는 꿈틀대지도 말고, 얌전하게 누워 있어요. 왕궁의 문턱만 넘으면 당신은 행운아가 될 테니까. 혹시 저들이 당신에게 공주와 결혼하지도 못할 뜨내기 악당이라고 욕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말 따위는 신경도 쓰지 마세요. 그럼 난 공주를 포기하겠어요.”


“그 대신 내 소 떼를 가지세요.”


얼마 후, 도널드는 농부의 소 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다. 후덴과 두덴이 여관에서 나와 막대기 끝을 각각 어깨에 걸쳤다. 후덴이 투덜거렸다.


“이 놈이 더 무거워졌어.”


“염려 마. 브라운 호수가 바로 코앞에 있거든.”


자루 속에서 농부가 고함쳤다.


“난 그녀를 차지하겠어요! 그녀를 차지하겠어요!”


“무슨 헛소리야? 맛 좀 봐라.”


후덴이 지팡이로 자루를 마구 후려갈겼다. 그러자 농부는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난 그녀를 차지하겠어요! 그녀를 차지하겠어요!”


“마음대로 차지해 봐라!”


두덴이 그렇게 대꾸한 것은 이미 브라운 호수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루 입구를 풀어서 농부를 호수에 텀벙 처넣고 말았다. 후덴이 소리쳤다.


“다시는 우릴 속이지 못하게 됐군.”


두덴이 맞장구를 쳤다.


“그야 물론이지! 어이, 가련한 도널드야, 내 저울을 네가 빌려간 그 날이 재수가 더럽게도 없는 날이었다 이거야.”


속이 후련해진 그들이 발걸음도 가볍게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도널드 오니어리 주위에서 암소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는가 하면, 발로 땅을 차거나 머리를 서로 부딪치고 있었다. 두덴이 말을 걸었다.


“아니, 이거 도널드 아냐? 우리보다 빨리 돌아왔군.”


“두덴, 정말 고마워. 당신의 의도는 불순했지만 그 결과가 너무나도 좋았거든. 브라운 호수에 들어가면 그 속에 약속의 땅이 있다고들 말하지. 난 그게 허튼 소린 줄 알았는데 딱 들어맞는 말이었어. 저 소 떼를 봐.”


후덴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쳐다보고, 두덴은 입을 딱 벌렸다. 그러나 튼튼하고 살진 소 떼가 탐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도널드 오니어리가 한 마디 더했다.


“저것들보다 더 살이 많이 찐 소들이 거기 득시글대지만 아무도 돌보지를 않더라고. 맛있는 풀이 한없이 펼쳐져 있어서 그래.”


두덴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도널드, 우리가 좀 무례한 짓을 하기도 했지만 당신은 언제나 훌륭한 사람이야. 자, 그러지 말고 그 목장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게.”


“소 떼를 내가 더 많이 몰고 올 수가 있는데 왜 그 길을 당신에게 가르쳐주겠소? 나 혼자 모조리 차지하고 말 거요.”


“사람은 재산이 많아질수록 더욱 악질적으로 군다는 말이 정말 맞구먼. 도널드, 당신은 언제나 우리 이웃사촌 아니오? 그러니까 행운을 독차지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후덴, 당신 말도 맞아. 당신이 과거에 나쁜 짓을 했지만 이제 와서 지난날을 생각해서 뭐 하겠어? 우리 셋이 실컷 차지해도 소 떼가 남을 테니. 자, 날 따라오게.”


도널드의 뒤를 따라가는 두덴과 후덴은 흥에 겨워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브라운 호수에 도착했을 때, 하늘에는 흰 구름 덩어리들이 가득하고, 호수 위에도 그 그림자가 비쳤다. 도널드는 호수 위에 비친 구름들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소리쳤다.


“자, 저기 있어요!”


“어디? 어디 있단 말야? 혼자 욕심 부리지 말고 ….”


후덴이 소리칠 때, 이미 두덴이 살찐 소 떼를 먼저 차지하려고 물 속으로 힘차게 뛰어들었다. 후덴도 지지 않고 뛰어들었다. 그들은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면 소 떼처럼 너무 뚱뚱해졌는지도 모른다. 도널드 오니어리는 그들의 소 떼와 양들을 차지하여 날마다 행복하게 살았다.


- 퍼온 곳(나온 곳) :『청소년을 위한 아일랜드 동화』(조종순 편역, 해누리 펴냄, 서기 2014년)


→ “이 책에 수록된 판타지(환상 - 인용자 잉걸) 동화는 아일랜드(정식 국호 ‘에이레’. ‘아일랜드’는 잉글랜드 인이 에이레에 붙인 이름이다. - 인용자)와 스코틀랜드(정식 명칭 ‘알바’.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 인이 ‘스코트 인의 땅’이라는 뜻으로 알바에 붙인 이름이다 - 인용자) 등 북유럽의 켈트족(Celtic) 사이에서 대대로 전해 오던 민담과 전설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 작품들은 셀틱(켈틱 -> 켈트 : 인용자)나 어부 혹은 나무꾼들이 한 얘기들을 일부 민속학자들과 작가들이 수집한 것으로, 그들로부터 얘기를 구술받아 기록하는 과정에서 본래의 원전보다 스토리(이야기 - 인용자)가 좀더 길어지고 정교하게 다듬어졌다.


이렇게 구전되어온 전설과 민담 중에는 슬프고 기막힌 이야기나 로맨틱한(낭만적인 - 인용자) 러브스토리(사랑 이야기 - 인용자)가 있고, 코믹하고(웃기고 - 인용자) 판타스틱한(환상적인 - 인용자) 것들도 있는데, 오랜 세월을 거치는 동안 얘기들이 조금씩 덧붙여지거나 변했어도(바뀌었어도 - 인용자) 원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책 앞표지의 표지 날개에 적힌, 이 책을 소개하는 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