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소 떼가 지붕 위를 지나간다.
모기의 목소리 어제보다 낭랑해지고
나는 B형의 그리움을 벽에 피칠하며
어설픈 잠결에 불안해한다. 당신은
흔들리는 무덤 같아요, 라고
적어 보냈던 편지
쓰지도 않고 썼다고 우기면
내 마음 관보다 더
깊어져 방 안 가득 곰팡이꽃 피어오르지만
나는 목침을 베고 누워
자욱한 물안개까지만 생각하기로 하고
비 오는 시절의 주소를 모두 잊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모가지부터
가슴까지 수수깡처럼 꺾이는 나라에 살았던
경력이 있는 법이다. 부끄러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심야일기예보로 다가오는 밤 1시의 태풍을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다. 탱크가
짓이긴 폐허 위에도
홍등의 거리가 다시 세워지듯이
나는 믿는다. 저 물소들 밟고 지나가는
마음 한켠에서부터 이미
벽돌 한 장, 한 장,
새로운 도시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 '이응준' 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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