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장마를 견디며

개마두리 2021. 7. 7. 21:56

물소 떼가 지붕 위를 지나간다. 


모기의 목소리 어제보다 낭랑해지고 
나는 B형의 그리움을 벽에 피칠하며 
어설픈 잠결에 불안해한다. 당신은 
흔들리는 무덤 같아요, 라고 
적어 보냈던 편지 
쓰지도 않고 썼다고 우기면 


내 마음 관보다 더 
깊어져 방 안 가득 곰팡이꽃 피어오르지만 


나는 목침을 베고 누워 
자욱한 물안개까지만 생각하기로 하고 
비 오는 시절의 주소를 모두 잊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모가지부터 
가슴까지 수수깡처럼 꺾이는 나라에 살았던 
경력이 있는 법이다. 부끄러움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심야일기예보로 다가오는 밤 1시의 태풍을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다. 탱크가 
짓이긴 폐허 위에도 
홍등의 거리가 다시 세워지듯이 
나는 믿는다. 저 물소들 밟고 지나가는 
마음 한켠에서부터 이미 



벽돌 한 장, 한 장, 
새로운 도시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 '이응준' 시인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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