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동화

[동화]소년 광대와 임금

개마두리 2022. 10. 25. 21:43

강화도에서 나뭇꾼으로 살던 떠꺼머리 총각이 어느 날 임금 자리에 올랐다.

처음 얼마 동안은 꿈만 같았으나, 그는 점차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꽁보릿밥에 된장국을 먹으나, 쌀밥에 고기를 먹으나, 배 부르기는 마찬가지,

삼베로 거친 옷을 만들어서 입거나, 곤룡포(衮龍袍. 임금이 입던 옷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를 입거나, 몸 가리는 건 마찬가지,

흙으로 만든 바닥에 거친 이불 깔고 눕거나, 침상에 비단 이불 덮고 눕거나, 어차피 눕는 건 마찬가지.

임금은 화가 나서 신하들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여자들(궁녀들 - 옮긴이)에게도 질렸다! 좀 더 재미있는 놀이를 다오!”

결국 신하들은 길거리에서 소년 광대를 한 명 불러와 임금 앞에서 입담과 재주를 자랑하게 했다.

광대는 임금 앞에서 거침 없는 말을 해서 임금을 웃게 했다.

광대가 궁궐의 내시(환관)을 보고, “저건 고X(성 불구자 – 옮긴이)다.”하고 말하자, 임금은 “으하하!”하고 웃었고,

광대가 임금의 말에 “옳습니다. 그렇사옵니다.”하며 굽실대는 신하를 가리키며 “저건 아첨꾼이다!”하고 말하자, 임금은 그 때도 “으하하!”하고 웃었다.

기분이 좋아진 임금은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웃으면서 광대에게

“얘야, 그럼 과인은 뭐라고 생각하느냐?”

고 물었는데, 그 때 광대는

“당신이야 뭐, 임금 옷을 입혀놓은 허수아비지!”

하고 대답했다.

임금의 안색이 변했다. 임금은 이렇게 명령했다.

“여봐라! 저 놈을 당장 끌고 가서 처형하라!”

그러자 이번에는 소년 광대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 하하하!”

임금은 더 화가 나서 이렇게 따졌다.

“뭐가 그렇게 웃기느냐?”

소년 광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럼 웃기는 일이 아닙니까? 바른 말로 남들의 잘못이나 결점을 들추어내면 웃으면서 칭찬하고 돈이나 상을 주면서, 정작 그런 말로 본인의 잘못을 말하면 죽이라고 명령하니, 이보다 더 웃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임금은 화가 나서 소리질렀다.

“듣기 싫다, 이놈!”

임금은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오른손을 꽉 쥔 뒤 주먹으로 눈 앞의 책상을 꽝 하고 내려쳤다(이것은 강화도 도령이 임금이 된 뒤, 처음으로 자신의 몸으로 힘을 발휘한 ‘역사적인 일’이었다).

글쎄요, 과연 임금이 이 광대를 죽였을지, 아니면 사면해주었을지, 그것은 독자들의 상상에 맡깁니다.

― 정채봉 선생의 책에 실린 「 생각하는 동화 」 시리즈에서

(참고로 나[옮긴이]는 이 이야기가 실린 동화책을 서른 해 전에 읽었다. 지금 그 때의 기억을 되짚어서 글을 쓰므로, 세부 사항이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부디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라며, 만약 이 동화의 정확한 내용을 아시는 분은 댓글을 달아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그럼 그 댓글을 바탕으로 이 글을 고쳐 쓰겠다)

☞ 옮긴이(개마두리)의 말 :

인간은, 특히 윗사람들은 이런 족속이다. 

남이나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나 원수/적이 독설에 당하면 ‘다 까닭이 있어서 그런 거지. 정확하고 올바른 말이잖아?’하고 생각하며 “훌륭하십니다!”하고 독설을 퍼붓는 사람에게 손뼉을 치지만, 정작 그 독설가가 자기를 같은 방법으로 치면 (설령 그 독설이 제 3자가 보기에는 사실이더라도) 단 1초도 참지 않고 “내가 왜 이런 잘못된 대접을 받는 거야?”하고 소리지르며 화를 내는 족속이란 이야기다. 

‘객관적인 평가’? ‘정확한 지적’? 그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에만(또는 내 이해관계가 얽히지 않은 일에만) 할 수 있는 일이다.

 

 

'현대 동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상  (0) 2017.08.08
▷◁도둑  (0) 2015.11.01
▷◁몸집  (0) 2015.11.01
▷◁장사꾼과 왕  (0) 2015.08.02
▷◁낙타 떼  (0) 2015.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