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갈마와 인문고전이 알려주는 철학고전 저자들의 참모습

개마두리 2022. 11. 7. 00:26

▶ 갈마 : 순수한 배달말로 ‘역사(歷史)’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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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철학자들을 오해하게 한 또 다른 배경에는 인문고전 무(無)독서증이 있다.

만일 대중이 철학고전을 단 몇 권이라도 읽었다면, 당연히 철학자들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철학자들에 대해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철학고전의 저자들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 존재였다. 대표적인 사례를 보자.

공자와 맹자(본명 ‘맹가’.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의 주요 고객은 각국의 왕들이었다. 오늘날(서기 2010년대 – 옮긴이)로 치면 두 사람은 세계 각국 대통령들(또는 수상들 – 옮긴이)의 정치 고문이었다.

(묵가[墨家]를 만든 – 옮긴이) 묵자(본명 ‘묵적’ - 옮긴이)와 그의 제자들은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 역사상 최고의 전사(戰士)이자 군사 기술자였다.

『 정관정요(貞觀政要) 』의 주인공 당 태종(본명 ‘이세민’ - 옮긴이)은 중국(당나라. 단, 당 왕조가 ‘정통 중국 왕조’인지는 의문이다 – 옮긴이) 황제였다.

양명학의 창시자 왕양명은 명나라 최고의 행정가이자, 대규모 반란 진압에 탁월한 재능을 보인 최고의 장수였다.

탈레스는 페르시아(아케메네스 제국 – 옮긴이)에 맞서 그리스(헬라스 – 옮긴이) 도시국가들을 하나로 묶은 탁월한 정치가였다.

소크라테스는 군인들의 칭송을 한 몸에 받은 최고의 중장갑 전투 요원이었다.

플라톤은 아테네 최고 명문가 출신이었고, 전쟁에 참여해서 훈장을 세 번이나 탄 전사였고, 국가 규모의 레슬링 대회에서 두 번이나 우승한 스포츠맨(운동선수 – 옮긴이)이었다.

키케로는 로마 역사(갈마 – 옮긴이)를 통틀어 최고의 변호사였고, 카틸리나의 쿠데타(반란 – 옮긴이) 음모를 분쇄한 공로로 ‘조국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받은 위대한 집정관이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로마 황제였다.

데카르트는 당대에 적수를 찾아보기 힘든 유명한 검객이었다.

아이작 뉴턴은 조폐국장(造幣局長. 돈[幣]을 만드는[造] 곳[局]의 총 책임자 – 옮긴이)을 지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국회의원, 법무장관, 대법관 등을 역임했다.

존 로크는 의사였다.

볼테르는 세계적인 유명인사이자 파리 사교계의 꽃이었고, 160명이 넘는 하인을 거느린 부자였다.

존 스튜어트 밀은 동인도회사의 관리였고, 유명 작가였고, 국회의원이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제트기에 쓰이는 엔진에 대한 특허를 내기도 한 항공공학 전문가였다.

(덧붙이자면, 중기신라와 ‘통일신라’의 불교 철학을 정리하고 체계를 세운 신라의 승려였던 원효는 “불교 외에도 유가[儒家]와 도가[道家]의 책들까지 넓게 공부”했고, “골품제 사회에서 그 출신에 따라 사는 것에 대해서 많은 모순과 비애를 겪는 사람들”을 보았으며, 

그가 살아 있을 때 “당/고구려[전기 고리]/백제[남부여]/신라 간의 큰 전쟁”과 남부여 부흥 전쟁[‘백제 부흥 운동’은 올바른 이름이 아니다]/전기 고리 부흥 전쟁[‘고구려 부흥 운동’은 올바른 이름이 아니다]/신당전쟁[‘나당전쟁’]이 일어났다. 그는 그 모든 전쟁을 보고 들었다. 

또한, 그는 젊은 시절에는 “화랑으로 여러 전투에 참가”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는 장년인 쉰 두 살 때[서기 668년], 김유신 장군이 자신에게 [제 1 당 왕조의 장수인] 소정방이 보낸 암호 ‘난독회[鸞犢繪. (새의 일종인) 난새(鸞)와 송아지(犢)가 그려진 그림(繪)을 일컫는 말이다]’의 뜻을 물어보자, 그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내놓기도 했다. - 옮긴이) 

 


(한 마디만 더, 근세조선의 유학자이자 성리학 신봉자이자 철학자였던 율곡 이이는 나라의 국방을 강화해야 한다는 제안을 내놓은 정치인이기도 했다 - 옮긴이) 



물론(勿論. 말할[論] 것도 없이[勿] - 옮긴이) 장자(본명 ‘장주’ - 옮긴이)나 디오네게스처럼 철저하게 세상을 조롱한 철학자들도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올바른 발음은 ‘맑스’. ‘마르크스’는 왜국식 발음이고, 도이칠란트어 발음과 맞지도 않다 – 옮긴이)처럼 당대에는 전혀 인정을 받지 못한 철학자도 있다. 하지만 그런 철학자는 소수다. 

인문고전의 저자이거나 주인공이었던 그들은 대부분 당대에 세상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왕과 귀족들을 팬으로 거느리고 가는 곳마다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슈퍼스타였다. 또 그들이 거느린 제자들은 대부분 왕이나 귀족 또는 그들의 자녀들이었다.

                                                                             (중략)

이제 진실을 알아야 한다. (영화나 연속극이나 만화나 게임이나 만화영화나 경[輕]소설/웹툰/웹 소설/대중가요나 유행가를 비롯한 – 옮긴이) 대중문화를 쥐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허상에 속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마주하기 바란다.

철학고전의 저자들은 부(富)에 대해서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아마도 당신은 그들이 부를 경멸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물론 부를 경멸하고 가난을 찬양한 철학자들도 있었다. 또 실제로 처참할 정도로 가난하게 산 철학자들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철학자들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들을 보자. 

플라톤은 재벌가 출신으로 그리스(헬라스 – 옮긴이) 세계에서 최고의 명성을 떨친 아카데메이아의 학장, 오늘날로 치면 하버드 대학교 총장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왕의 주치의의 아들이었고, 아카데메이아에 버금가는 명성을 누린 리케이온의 학장, 오늘날로 치면 예일 대학교 총장이었다.

공자는 정식 제자만 3000명에 달했고, 국가에서 원로 대우를 받았다.

관중(管仲.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명재상. 존칭은 ‘관자[管子]’다. 그의 사상을 다루었다는 책의 이름도 『 관자 』 다 – 옮긴이), 맹자, 순자(荀子. 본명 ‘순황’. 성악설을 주장한 제하[諸夏] 전국시대의 철학자다 – 옮긴이), 손무( 『 손자병법 』 을 쓴 손자[孫子]의 본명 – 옮긴이), 오기(제하 전국시대의 병법가. 존칭은 ‘오자[吳子]’다. 지은 책으로 『 오자병법 』이 있다 – 옮긴이) 같은 중국 철학자들의 공통점은 한 나라의 재상이었거나, 재상급 대우를 받았다는 것이다.

키케로는 로마 최고의 부자 중 한 명이었다. 

몽테뉴는 ‘몽테뉴 성(城)’의 주인이었다.

몽테스키외, 쇼펜하우어, 비트겐슈타인의 공통점은 젊은 나이에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았다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대부분의 철학고전 저자들은 오늘날로 치면 단과대학 학장 이상의 대우는 받고 살았다.

물론 철학자들 중에는 철학의 절대순수를 추구하기 위해 철저하게 빈손으로 살았던 사람도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자와 디오게네스다. 두 사람은 당대에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장자는 초(楚)나라 위왕의 초청을 받았고,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 대왕(올바른 이름은 ‘알렉산드로스 3세’. ‘알렉산더’는 헬라스/마케도니아 이름인 ‘알렉산드로스’를 잉글랜드 식으로 발음한 것이고, 그를 ‘대왕’으로 부르며 칭송하는 것은 그에게 짓밟힌 서아시아/중앙아시아/남아시아/북아프리카 사람들을 모욕하는 일이다 – 옮긴이)의 방문을 받았다.

두 사람에게는 최고의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왕의 러브콜(Love call. 거래 등을 제안하는 일을 은유하는 말. 개인이나 단체를 채용하기 위해 좀 더 좋은 조건을 내세워 유인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기도 하다. – 옮긴이)을 냉정하게 뿌리쳤다.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보다는 철학을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순수는 무능력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위대한 능력에 기반한 것이었다(나아가, 장주, 그러니까 장자의 거절은 그의 국적이나, 그의 고국과 초나라 사이의 관계 때문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루겠다 – 옮긴이).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순수는 역사가 될 수 있었다.  

- 이지성, 「 당신이 인문고전에 대해 오해하는 것들 」, 『 리딩으로 리드하라 』,  223~226쪽  

※ 참고 자료

- 『 리딩으로 리드하라 』 (이지성 지음, ‘차이정원’ 펴냄, 서기 2016년)

- 『 원효 』 (작은 제목 「 한국 불교 철학의 선구적 사상가 」. ‘김원명’ 지음, ‘(주)살림출판사’ 펴냄, 서기 2008년)

- 『 중학교 역사 ① 』 (한철호 외 11인 지음, ‘(주)좋은책 신사고’ 펴냄, 서기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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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 :

이번에도 읽는 사람들이 이지성 선생이 이 글을 쓴 뜻(그리고 내가 이 글을 소개하는 뜻)을 잘못 받아들일 것 같아, 몇 자 적는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철학자와 인문고전을 쓴 사람들이 높은 벼슬아치였거나, 군인이었거나, 임금이었거나, 정치인이었거나, 이름난 집안 출신이거나, 운동선수였거나, 변호사였거나, 돈을 만드는 일을 했거나, 법관이었거나, 의사였거나, 부자였거나, 하인을 거느린 사람들이었거나, 작가였거나, 군인을 도와주는 사람이었거나, 공학(工學) 전문가였거나, 재벌 집안 출신이었거나, 성주였거나, 많은 유산을 상속받은 사람이었으니, “돈을 사랑하는 마음”을 숨길 필요가 없고, 권력을 탐내도 되며, 총칼을 들고 싸우는 것을 꺼리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남들을 종이나 “아랫것”으로 삼아서 막 부려도 된다.’

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철학자들과 인문고전을 만든 사람들은 자신이 타고난 유리한 조건들을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을 위해서도 썼고, 일종의 상향 평준화를 꿈꾸었으며, 현실을 바탕으로 철학을 만들거나 고전을 썼다.’

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 예를 들어보자. 

(다른 제자백가도 마찬가지였지만) 공자와 맹자는 학문을 배우겠다는 사람은 설령 그가 평범한 백성 출신이라도 제자로 받아들여서, 그들에게 춘추전국시대 이전에는 ‘지배층만을 위한 것’이었던 학문을 가르쳐주었고, 

군인이자 전사였던 묵자와 묵가인들은 침략전쟁이나 정복전쟁이나 군주/귀족의 욕심을 채우는 전쟁이나 약탈이 아니라, 침략당하는 나라/고을/성을 지키기 위한 전쟁만을 인정했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중기신라의 화랑으로서 전쟁에 참전했던 원효는 장년 이후에는 전쟁이나 폭력에 몰두하는 대신 전쟁들이 불러온 상처를 어루만지고, 불교 종파끼리의 논쟁과 다툼을 어떻게든 중재하고 평화롭게 풀며 모든 종파를 아우르려는 책과 글들을 썼다.

왕양명은 “집안이 가난하여 학문을 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형을 따라 소금을 만드는 인부로 지냈”던 왕간(王艮)을 제자로 받아들였고, 왕간은 “자신의 학문을 전하는 데 노인이나 어린이나 귀한 집 출신이나 천한 자이나 명민(明敏)하거나 어리석거나를 가리지 않고 평등함을 강조했다.” 그리고 왕간의 제자들 가운데는 “사대부뿐 아니라 상인, 중인, 노동자 등 다양한 신분 출신의 사람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제자 가운데 ‘주서’는 나무를 베는 사람이었고, ‘한정’은 도자기공, ‘하정미’는 농민(순수한 배달말로는 ‘여름지기’)이었다.” 또 왕간을 이어받아 그의 태주학파(또 다른 이름은 ‘양명학 좌파’)를 이끈 ‘하심은’은 구리로 징을 만드는 집안 출신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제대하고 난 다음에는 전쟁에 몰두하는 대신, “너 자신을 알라!”고 외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철학을 설파했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가 한계를 드러내고 문제점을 드러내자, 그에 대한 반발과 실망/분노로 철인(哲人)이 군주가 되어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몽테스키외는 비록 젊은 나이에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아 부자가 되기는 했지만, 향락에 몰두하거나 사치스럽게 굴거나 부를 뽐내며 천박하게 사는 대신, 『 법의 정신 』 을 쓰고 “한 나라의 사법/입법/행정은 나누어져야 한다. 한 쪽이 어느 다른 한 쪽에 간섭하면 안 된다.”는 이론을 만듦으로써, 사람들에게 정부나 권력이나 국가의 횡포/전횡을 막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었다.

그러니 우리는 ‘철학자나 인문고전을 쓴 사람들이 위대한 까닭은, 남들보다 유리한 조건이나 재능을 타고 났음에도, 그것을 자신만을 위해 쓰지 않고, “남”인 많은 사람들을 위해 썼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들은 처음부터 속세와 인연을 끊고 산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과 치열하게 싸웠고, 현실을 접했고, 그 다음 그것에 바탕을 두되, 그것을 뛰어넘는 이상을 만들어내 그 이상으로 사회를 더 좋은 쪽으로 바꾸려고 했던 사람들이다.’고 이해해야지,

‘철학자나 인문 고전의 지은이들은 부자 집안에서 태어났거나 부자였으니, 내가 부를 탐닉하고 거기에만 집착하는 건 아무런 문제가 없어. 그리고 그들 가운데 군인이나 전사 출신이 있었으니, 내가 총칼을 들고 폭력을 휘둘러도 괜찮겠지. 그들이 권력자로 살거나 권력자를 위해 일했으니, 내가 높은 자리를 탐내도 비난받으면 안 돼. 그들이 종을 부리면서 살았으니, 내가 남들을 종이나 노예나 하인으로 부려도 아무런 문제가 안 될 거야. 플라톤이 운동선수였으니, 나도 인문학은 내버려두고 운동에만 몰두해도 되겠네.’ 
  
하고 이해하면 안 된다.

너무 가난하거나 병약하면 철학자도, 인문고전 작가도 못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돈을 사랑하는 마음”에 물들거나 몸의 아름다움에만 몰두하면 아예 썩어빠진 철학자나 쓰레기 같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자!

- 단기 4355년 음력 10월 14일에, ‘이제 우리는 철학자와 인문고전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