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인용]사자(獅子)

개마두리 2023. 10. 16. 23:18

언젠가 나(‘마빈 토케이어랍비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는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에서 일본(왜국[倭國] - 옮긴이)으로 건너온 유대인(정확히는, 유대교 신자. 그 가운데서도 유럽 출신인 이슈케나지’ - 옮긴이)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당 왕조가 다스리던 때에도 서아시아/중앙아시아 출신인 유대교 신자들이 제하 땅으로 건너가서 살았고, 송나라 때에도 그 도읍인 개봉[開封]시에는 유대교 신자들이 [비록 적은 수이긴 했지만] 살았으며, 근대인 서기 19세기 말 ~ 20세기 초에는 이슈케나지들이 청나라/중화민국으로 건너가서 살았다. 이 글에 나오는 유대인은 그들 가운데 이슈케나지에 속한다 - 옮긴이). 그런 유대인들 중에는(가운데는 옮긴이) 대개(대부분 옮긴이) 네 가지 유형이 있다.

 

중국이 좋고 일본이 나쁘다는 사람, 일본이 좋고 중국이 나쁘다는 사람, 중국도 일본도 다 좋다는 사람, 중국도 일본도 다 싫다는 사람. 한데 (토케이어 랍비가 만난 옮긴이) 유대인은 전쟁(2차 세계대전 옮긴이)중 일본이 중국(손문[‘쑨원’]이 세운 중화민국. 서기 1949년에 세워진 모택동[‘마오쩌둥’]중화인민공화국[오늘날의 제하]’과는 다른 나라다. 서기 1949년 이후에는 이 나라의 유민들이 대만으로 달아나서 살고 있다 옮긴이)을 점령했을 때(그러니까, 중화민국과 근대 왜국의 전쟁인 중일전쟁 때 옮긴이) 유대인들을 박해했다고 해서(근대 왜국은 2차 대전이 일어나기 몇 해 전에 히틀러의 나치 정권과 동맹을 맺었고, 그 때문에 나치의 요구에 따라 본국과 식민지/점령지에 살던 이슈케나지들을 감시/탄압했다 옮긴이) 일본을 나쁘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본이 중국을 (거의 대부분 옮긴이) 점령하고 있을 때(중일전쟁이 일어난 기간이기도 한 서기 1937 ~ 1945: 옮긴이), 유대인들은 특별 거주구역이란 일정한 구역에 수용되어 일본군(근대 왜군[倭軍] - 옮긴이)의 감시를 받았다.

 

그러면서 유대인들은 (근대 왜군에게 옮긴이) 무수히 구타를 당하고(수 없이 두들겨 맞고 옮긴이), 또 식량이 부족하여(먹을 것이 모자라서 옮긴이) 굶고, 또 전염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 아픈 추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 많다.

 

나는 중국에서 온 유대인에게 말했다.

 

(2차 대전 때 옮긴이) 유럽에서는 6백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소. 세계 제 2차 대전 때 유럽에서 있었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참변을 당한 일은 없었소. 당신은 (서기 옮긴이) 1970년대인 지금, 과거(2차 대전 때 옮긴이) 상해(上海)에서 겪은 아픈 추억을 (중화민국에서 왜국으로 건너와서 옮긴이)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당신이 살아 있다.’는 증거요. 탈무드 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한 다음, - 옮긴이) 나는 그에게, < 목에 뼈가 걸린 사자 > 이야기를 했다.

 

사자의 목구멍에 다른 짐승의 뼈가 걸렸다. 그래서 사자는 제 목구멍에 걸린 뼈를 꺼내 주는 자에게는 큰 상을 주겠다고 말했다.

 

그때 학 한 마리가 찾아와, 사자의 목에 걸린 뼈를 꺼내겠다고 말했다.

 

학은 사자의 입을 크게 벌리게 하고, 머리를 그 사자의 입속으로 넣어 긴 부리로 걸려 있는 뼈를 뽑아냈다. 그리고 나서 학이 말했다.

 

, 이제 상을 주셔야지요?”

 

그러자 사자는 느닷없이 화를 버럭 내며

 

내 입속에 머리를 집어넣고도 살아난 것이 (내가 너에게 줄 수 있는 옮긴이) 상이다. 너는 그렇게 위험한 지경을 당하고도 살아서 나온 것을 자랑으로 삼을 수가 있다. 그러니 그보다 더 큰 상은 없을 것이다.”

 

하고 대답했다.

 

(따라서, 이슈케나지가 옮긴이) 중국에서 혹독한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그런 것으로 이제 와서 불만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 마빈 토케이어, 성전 탈무드 , 181 ~ 182

 

→ 『 성전 탈무드 ( ‘마빈 토케이어지음, ‘김정우옮김, ‘아이템북스펴냄, 서기 2007)에서

 

옮긴이(개마두리)의 말 :

 

평범한 한국인이고, 유대교 신자도 시온주의자도 아닌 내가(개신교 신자이기는 하지만, 사정이 있어 교회에는 나가지 못하고 있고, 나가지 않고 있다) 이 이야기(토케이어 랍비가 2차 대전 때 근대 왜군에게 괴롭힘을 당한 이슈케나지 남성에게 충고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까닭은, 한국 사회 안에 크게 퍼진 인식, 그러니까 유대인들과 (이른바) <이스라엘 공화국(시온주의자들의 정권)>은 우리 한국인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주겠지. 그러니 우리가 나치를 비난하고 싫어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의 적이었던 왜국(倭國)을 싫어하고 비난해 줄 거야.’ 하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자 착각임을 지적/강조하고 싶어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랍비라는 사람이 왜국 제국주의/군국주의의 피해자(!)인 동족 앞에서 당신이 겪은 일은 유럽에서 일어난 일보다는 나쁜 일이다.”하고 떠드는 걸 보라! 그리고 유대인(이슈케나지인 유대교 신자)(2차 대전 때) 중국(제하/중화민국)에서 (근대 왜군에게) 혹독한 고통을 받았다고 해서, 그런 것으로 이제 와서 불만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이는 걸 보라!

 

이런 사람들이 나치를 비난하듯이 근대 왜국을 비난하고 처벌할 것 같은가? 이런 사람들이 히틀러를 고발하듯이 히로히토 왜왕(倭王)을 고발할까(실제로, 이슈케나지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한 미국의 언론사나 다큐멘터리 방송국들은 히틀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악마로 그리지만, 그의 공범[!]이자 그 못지않게 잔인했던 히로히토는 전쟁을 좋아하지 않았던 착한[?] 임금으로 그리고 비난을 자제한다! 이는 내가 신문기사와 다큐멘터리를 보고 확인한 사실이다)? 나는 답은 (이미) 나왔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하지만 <이스라엘><일본>2차 대전에서 한 짓은 비판하던데요?”하고 되물으리라.

 

하지만 그뿐이다. 시온주의자들은 나치 전범인 아이히만을 잡아 가두려고 첩보요원들을 보냈지만, 왜국 전범들에게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으며, 아우슈비츠는 하루가 멀다 하고 고발/비난하는 시위를 하는 유대교 신자들과 시온주의자들은 남경(南京) 대학살은 고발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내가 읽은 신문기사에 따르면, 유대인 노인 한 명만 남경 대학살을 비난했을 뿐, 나머지는 입을 다물었다). 히틀러를 고발한 그들은 히로히토나 메이지 왜왕(倭王)을 고발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리고 유대교 신자들을 편드는 서양 언론사는 그들과 프랑스/폴스카[‘폴란드의 정식 국호] 백인들이 이 나치에 화를 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한국인들에게는 너희의 문제가 뭔지 알아? (왜국과의) 과거를 안 잊는다는 거야!” 하는 뻔뻔한 설교를 서슴지 않는다.

 

게다가 유대교 신자들과 시온주의자들은 근대 왜국이 2차 대전 이전에 저지른 근대사의 범죄(예를 들면, 유구[琉球] []을 해체하고 동학군[]을 죽이고 대한제국을 침략하고 대만을 침략하고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관동[간토] 대학살을 저지른 일)나 중세 말/근세에 저지른 짓들(왜구[倭寇]의 해적질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근세조선 침략전쟁[6년 전쟁]/에도시대에 막부의 관리들이 서양인들에게 조선[근세조선]은 우리의 속국입니다.”하고 거짓말을 한 일)에 대해서는 나아가 오늘날까지 사라지지 않는 왜국 사회의 혐한에 대해서도 어떤 비판이나 비난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오직 ‘<일본(왜국)>이 나치랑 손을 잡았다.’는 것에만 화를 내지, 다른 일 예를 들면, 6년 전쟁이나 메이지 정부의 근세조선/대한제국 침략 에는 화를 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2차 대전 이전에는 유대교 신자가 근대 왜국을 도와준 적이 있다. 러일전쟁 때 근대 왜국 정부와 군대에 군자금을 대준 사람이 바로 미국의 유대인 재벌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그런 태도는 유대인과 그들의 편을 드는 2차 대전 이후의 서양 학계가 중세(!)에 일어난 유대교 박해나 근세/근대(2차 대전 이전)의 유대인 차별까지 도마 위에 올리는 현실 그리고 그 일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한국인들조차도 그 일에 화를 낼 것을 강요당하는 현실 을 생각하면, 한국인들이 (그들을 보고) “불공평하고, 불평등하다!”라고 화를 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일이다!

 

(설령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면 안 된다 하더라도) 현실이 이런 이상, 이제 우리 한국인들은 지난 일흔 해 동안 짝사랑했던 유대교 신자들과 시온주의자들을 환상을 깨고, 인식의 거품을 걷어낸 뒤 차갑고 딱딱하고 날카롭게대해야 한다.

 

그들이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는 만큼 우리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배려할 거라는 헛된 희망은 버려야 하며, 그들은 자신들이 천주교/동방정교 교회나 히틀러에게 입은 피해만 강조하지, 한국인을 비롯한 배달민족이 입은 피해를 강조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굽히면서 잘 보이려고 애쓰는 짓은 더 이상 하지 말고, 따질 것은 따지고 요구할 것은 요구하며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반박할 것은 반박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한 마디만 더하자. 슬기가 꼭 탈무드 에만 있는가? 유대교 신자들만이 똑똑하고, 나머지는 다 바보인가? 그건 아니지 않은가? 슬기는 연암(박지원) 선생의 책에서도 얻을 수 있고, 깨달음은 배달민족의 옛이야기에서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또는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격언에서도 그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은가? 나아가 그동안은 주목받지 못했던 칼릴라와 딤나 나 비르발 이야기나 나와디르 나 수피( Sufi ) 우화에서도 슬기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 않은가?

 

이제 우리는 유대교 신자들을 절대화하고 그들에게만 정신을 집중하는 태도에서, 마음의 사대주의 / 현대판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참고로, 내가 열두 해 전에 읽은 책에는, 영어권에서는 교활하고 약삭빠른 자탈무드 를 따르는 자 라는 뜻인 탈무디스트 로 부른다는 설명이 나온다. 우리의 고정관념과는 달리, 서구 사회에서는 탈무드 가 좋게만 여겨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

 

유가(儒家)의 경전인 논어 / 맹자 와 주자(朱子)의 책만 붙들고 다녔던 근세조선의 선비들 그리고 그들에게서 학문을 배워 성리학만 알았던 근세조선 사람들 사대주의자로 몰아세우는 오늘날의 한국 사람들이, 정작 탈무드 를 금과옥조로 삼아 그것만 추켜세우고 칭찬하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사대주의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으며, 다만 논어 에서 탈무드 로 충성하는 대상바뀌었을 뿐이라고, 어느 한 가지에만 몰두하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며, 그것이 가르치는 대로만 행동한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고 비판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그 점을 지적하고 싶어서라도, “우리 한국인은 탈무드 를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상대화하고, 비판할 건 비판해야 한다.” 고 말하고 싶어서라도 이 글(<옮긴이의 말>)을 쓰는 것이다.

 

(덧붙이자면, 나는 토케이어 랍비의 태도와 반응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가스실로 가거나 총에 맞지는 않았지만, 중화민국 안의 왜군 점령지에서 갇혀 살던 이슈케나지 남자도 큰 고통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그는 특별 거주구역에서 근대 왜군에게 여러 번 두들겨 맞았고, 그 안에서 먹을 것이 모자라서 굶었으며, 다른 유대교 신자들이 전염병에 걸려 죽어가는 걸 보았어야 했다.

 

그런 사람에게 그래도 당신은 <일본>에게 불만을 터뜨려서는 안 된다.’, 토케이어 랍비는 공감 능력이 없는 건가? 나라면 당신이 그렇게 화를 내고 불평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왜국 정부가 지금이라도 사실을 인정하고 당신에게 사죄/배상해야 해요.”하고 대답했을 것이다!

 

남이 큰 불행을 겪었다고 해서 내 불행이 작아지거나 보잘것없는 것이 되는 건 아니라는 점도, 내가 토케이어 랍비에게 반박하는 까닭 가운데 하나다)

 

(이제 <목에 뼈가 걸린 사자> 이야기 자체를 반박하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 짓겠다. 나라면 우화를 사자가 화를 내며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라는 대목에서 끝내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사자의 대답을 듣고 화가 난 그리고 배신감도 품은 학이 동족에게로 돌아가 앞으로는 사자들의 목에 짐승 뼈가 걸려도 절대 빼 주지 마라! 난 그렇게 해 주었는데도, 어떤 보답도 못 받았다!”고 충고하고, 모든 학들이 그 충고를 따라서 모든 사자들은 학에게서 어떤 도움도 받을 수 없게 되었다고, 그래서 우화에 나온 사자는 일이 그 지경이 되고 나서야 자신이 한 말과 행동을 뉘우쳤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고 마무리 지었으리라.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인 소년 시절 벌써 스물일곱 해 전이다 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폭군이나 거짓말쟁이가 약속을 어기는 현실을 정당화하는 것으로[그리고 약속 위반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체념을 요구하는 것으로] 들리기 때문에, 나는 이런 식으로 딴지를 걸 수밖에 없다!)

 

단기 4356년 음력 92일에, ‘이제 우리는 서양 백인과 유대인에 대한 사대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들의 것이라고 해서 무작정 다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나쁜 것이나 우리한테 안 맞는 것이나 문제가 있는 것은 걸러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