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올바른 이름은 ‘6년 전쟁’/‘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근세조선 침략전쟁’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이 소강상태에 빠진 (서기 – 옮긴이) 1596년 어느날, (당시 근세조선의 임금이었던 – 옮긴이) 선조는 허준(許浚)을 불러 (이렇게 – 옮긴이) 명했다.
“요즘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의 방서[方書](처방[方]을 적은 글이나 책[書] - 옮긴이)(약을 짓기 위한 처방을 적은 책 : 지은이의 주석)를 보니 모두 자잘한 것을 가려 모은 것으로, (근세조선의 의원/약사들이 그것을 – 옮긴이) 참고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너는 마땅히 온갖 처방을 덜고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들라.”
그러면서 새로 지을 책(의서[醫書], 그러니까 의학 서적 – 옮긴이)의 원칙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사람의 질병이 (그 병을 앓는 사람이 – 옮긴이) 조섭(調攝. [건강을] 조절[調]하고 굳건히 유지[攝]함 – 옮긴이)을 잘 못해 생기므로, (애초에 병이 나지 않도록 – 옮긴이) 수양(修養[몸과 마음을] 닦고(修) 길러(養) 높은 경지로 끌어올림 – 옮긴이)을 우선으로 하고 약물 치료를 다음으로 할 것(요즘 말로 바꾸자면, ‘병의 치료보다 예방을 우선으로 삼을 것’ : 옮긴이).
둘째, (지금까지의 의서들은 – 옮긴이) 처방이 너무 많고 번잡하므로, (새 의서를 쓸 때는 처방이건 치료법이건 가릴 것 없이 – 옮긴이) 요점을 추리는 데 힘쓸 것.
셋째, 벽촌과 누항[陋巷](지저분한 거리)의 사람 가운데 의원과 약이 없어 요절하는 자가 많은데도 사람들이 국내(나라 안. 여기서는 근세조선 안 – 옮긴이)에서 생산되는 향약(鄕藥. 원래는 ‘시골[鄕]에서 나는 약재[藥]’라는 뜻이나, 여기서는 [제하(諸夏)에서 나는 약재와 대비한] ‘우리나라에서 나는 약재’라는 뜻으로 쓰였다 – 옮긴이)을 잘 몰라 약으로 쓰지 못하니, 책에 국산 약명(藥名. 약[藥]의 이름[名] - 옮긴이)을 적어 (근세조선 – 옮긴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
이렇게 해서 편찬된 책이 『 동의보감 』 이다. 물론(勿論. 말할[論] 것도 없이[勿] - 옮긴이) 『 동의보감 』 의 저자는 허준이다. 당대의 명의였고, 또한 경전과 사서(史書. 역사책 – 옮긴이)에 밝아 학문적 소양(素養. 평소에 닦아 놓은 교양 – 옮긴이)까지 갖춘 허준이 없었다면 『 동의보감 』 같은 수작(秀作. 뛰어난[秀] 작품[作] - 옮긴이)은 탄생하지(태어나지 – 옮긴이)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 동의보감 』 을 기획하고 그 기본 방향을 제시한 것은 선조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허준이 우리 역사(歷史. 순수한 배달말로는 ‘갈마’ - 옮긴이) 속에서 전설이 되어가면서, 선조의 역할(선조가 한 일 – 옮긴이)은 그늘에 가려졌다. 조선(근세조선 – 옮긴이) 초기의 의서인 『 향약집성방 』 / 『 의방유취 』 가 저자보다 기획자인 세종의 업적으로 기억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 윤희진, 『 제왕의 책 』, 131 ~ 132쪽
→ 『 제왕의 책 』 ( 윤희진 지음, ‘황소자리 출판사’ 펴냄, 서기 2007년 )에서
- 단기 4357년 음력 2월 4일에, ‘비록 잘못을 저지른 지도자라도, 잘한 일이 있었다면 그건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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