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아스테카’로 불리는 제국의 바른 이름은 ‘메히까’다. 그것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은 이 카페 게시판의 글인 「 ‘아스테카’의 또 다른 이름이자 참 이름 」을 찾아서 읽어보라 : 글쓴이 개마두리)
(이 글에서 초록색 글자로 이루어진 문장들은 글쓴이가 덧붙인 주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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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히까 제국의 법과 관행들 가운데, 오늘날의 사람들이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고, 오늘날에 되살려도 어색하지 않은 것들이 있어 간단히 소개한다.
1. 메히까 제국에서는, 같은 죄를 지었어도 신분이나 직위가 더 높은 사람이 더 엄하고 가혹한 벌을 받았다(똑같이 성폭행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는데도 일반인의 아들이면 유죄 판결을 받고, 시[市]의회 의원의 아들이면 무죄 판결을 받고 풀려나는 오늘날의 한국보다 훨씬 낫다!).
2. 메히코(흔히 ‘멕시코’로 불리는 나라의 바른 이름. 이것은 ‘한국’이 ‘한궈[韓國의 북경어(北京語)]’가 아닌 것과 같다) 원주민의 증언에 따르면, 메히까 제국을 비롯한 메소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나라에서는 법을 새로 만들거나 널리 알릴 때 어린이들도 그 자리에 나와야 했다. 왜냐하면 그 법은 어른들 뿐 아니라 어린이들도 지켜야 하는 것이었고, 따라서 그들도 새 법을 알 권리와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나아가 그들도 법을 만들 때 의견을 내놓을 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만약 한국 사회가 이 관행을 본받는다면, 어떤 법을 만들 때 본받아야 할까? 내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해보자면, 학원폭력을 처벌하는 법을 새로 만들 때, 학원폭력의 피해자였던 10대들을 불러 그들에게 법을 만들어보라고 제안하는 것 – 또는 어떤 법을 만들면 좋겠는지 의견을 내놓아 달라고 요청하는 것 - 을 들 수 있겠다]
3. 비록 메히까 제국 사람들이 선인장의 한 갈래인 “용설란(龍舌蘭) 수액”을 “발효”하여 ‘풀케’라는 술을 빚긴 했지만, 그들의 법과 관행에 따르면, 그 술은 늘 마실 수 있는 게 아니라 “축제와 같은 특별한 날”에만 마실 수 있었고, 그들은 그 밖에는 “술을 엄격히 금지”했다. 메히까 제국에서는 “52세 이상의 사람과 귀족층에만” 하루에 “3잔 정도가 허용”되었다(“술 권하는 사회”를 넘어 ‘술독에 빠진 사회’가 된 지 오래고, 판사가 “술에 취해서 범죄를 저지른 점을 감안하여” 범죄자에게 집행유예나 감형을 선고하며,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다!”하고 주장하는 광고는 자주 틀지만, 술은 절대 비판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연예 프로그램에서는 “내 주량은 술 몇 병을 마셔도 끄덕없을 정도다.”하고 떠드는 사람들이 나오고, 음주운전을 하다가 사람을 치어 죽여도 절대로 살인죄를 적용하지 않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는 메히까 제국의 엄격한 태도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핏줄도, 태어난 곳도, 자란 곳도, 사는 곳도, 국적도 모두 한국인 나는 메히까 제국의 잔인한 종교행사(인신공양)나 식인(제물로 바친 적국의 포로를 먹는 일)이나 노예제도나 일부다처제는 반대하나, 지금까지 소개한 법과 제도와 관행에는 깊이 공감하며,
후자는 오늘날의 메히코 정부가 되살릴 가치가 있다고 보고,
나아가 한국도 ‘다른 나라의 좋은 점은 배운다.’는 마음으로 – 그리고 ‘갈마(“역사[歷史]”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에서 배운다.’는 마음, 그러니까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故)을 익히고(溫) 미루어 새것(新)을 앎(知)]’하는 마음으로 – 이 법과 관행들을 참고하자고 제안한다.
(또한 이 법과 관행들은 한국의 『 역사 』 [ 또는 『 세계사 』 ] 교과서에서 가르쳐야 하고, 그게 안 된다면 갈터[ ‘학교’ ]에서 쓰는 보충 교재에라도 이것들을 실어야 한다)
나는 한국의 『 헌법 』 을 고칠 때(또는, 사회에서 공동체나 조직의 규칙을 만들 때) 이것들을 우리의 상황과 처지에 맞게 바꾸어서 집어넣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며, 그것은 우리의 법과 규칙을 더 훌륭하고 아름답게 바꾸는 방법임을 확신한다.
나아가 이것은 메히까 제국의 단점‘만’ 강조하는 일부(?) 순혈 한국인 유튜브 회원들의 잘못(유럽중심주의와 인종주의를 바탕으로 메소아메리카의 갈마를 바라보는 일)에 이의를 제기하고, 한쪽으로 기운 ‘역사 인식이라는 저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부디 이 글이 저울의 균형을 맞추는 ‘저울추’가 될 수 있기를 빈다.
▣ 참고 자료
- 『 아스텍 제국 그 영광과 몰락 』 ( ‘세르주 그뤼진스키’의 책 )
- 『 아스테카 : 태양을 움직인 사람들 』 (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책자 )
- 『 꿈꾸는 사람만이 지혜를 찾는다 』 ( ‘크소코노쉬틀레틀[ Xokonoschtletl ]’ 지음, ‘강석란’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서기 1999년 )
- 『 우리는 소중한 것을 잃고 나서야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된다 』 ( ‘크소코노쉬틀레틀’ 지음, ‘홍명희’ 옮김, ‘생각의 나무’ 펴냄, 서기 1999년 )
- 단기 4357년 음력 6월 20일에, ‘옛것이라 해도 좋은 것이면 요즘 사람들이 그것을 이어받아야 하고, 비록 다른 나라의 것이라 해도 좋은 것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본받아야 한다. 우리가 갈마(“역사”)를 배우는 까닭들 가운데 하나는, 바로 그런 “좋은 옛것”과 “다른 나라의 좋은 것”을 찾아내기 위함이다.’하고 생각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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