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歷史]’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를 배운 사람이라면 잘 아는 이야기지만, 모든 귀금속이나 보석은 자신이 지닌 특성 때문에 ‘귀한 물건’으로 대접받거나 ‘재물’/‘재산’으로 인정받았다.
예를 들어, 은(銀)은 독극물이나 상한 음식에 닿으면 검게 바뀌어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위험을 경고하는 특성이 있어서 귀금속으로 인정받았고, 금(金)은 녹슬지 않기 때문에 귀금속으로 인정받았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에서 귀금속으로 인정받은 옥(玉)은 무엇 때문에 ‘보석’의 한 갈래로 인정받았을까?
그것은 옛 동아시아 사람들의 믿음(내지는 관념) 때문이었다. 내(글쓴이)가 지지난 해에 옛 물건을 다루는 장인(匠人 : 기술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들은 설명에 따르면, 옛 동아시아 사람들은 옥을 ‘하늘과, 사람과, 땅을 하나로 이어주는 물건’으로 여겼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런 ‘돌’(옥)을 사람들이 ‘보석’으로 여기고 귀하게 다룬 건 당연한 일이다.
고고학자들이 밝힌 바에 따르면, 맨 처음 옥으로 그릇이나 치레거리(장신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곳은 오늘날의 요서 지방과 남(南)몽골 지방이고, 이곳은 화북지방에 하(夏)나라가 세워지기 10세기 전부터 ‘옥기(玉器 : 옥으로 만든 도구나 그릇) 문명’으로 불릴 만큼 옥을 만들어 쓰는 기술과 그것을 누리는 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에, 옥 문화는 배달민족에게서 비롯되었고, 그것도 상고(上古)시대부터, 아사달(‘고조선’의 순수한 배달말 이름이자, ‘고조선’의 첫 도읍 이름)이 세워지기 수 세기 전부터 그런 문화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나중에 하나라를 비롯한 황하(黃河) 문명이 아사달로부터 옥 문화를 받아들였고, 그럼으로써 옥에 대한 관념도 받아들였으며, 그 때문에 오늘날까지 동아시아에서 옥을 귀하게 여기는 관념과 옥을 ‘하늘/사람/땅을 하나로 이어주는 물건’으로 여기는 관념이 이어져 내려온 건 아닌지.
어쩌면 메소아메리카의 원주민인 마야 사람들이 옥(비취석/녹옥)으로 지배층의 물건인 가면이나 목걸이를 만들었던 까닭도, 고대 ~ 중세(서기전 1000년 ~ 서기 10세기 초)의 배달민족이 시베리아를 거쳐 거북섬(‘아메리카’)으로 건너온 뒤 원주민에게 옥 문화와 옥에 대한 관념을 전해 주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참고로, 마야 사람들은 금/은보다는 옥을 더 좋아했는데, 이는 1800여년 전에 살았던 삼한백제[三韓百濟]의 마한[馬韓] 사람들이 “금/은은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다만 구슬[玉은 한자로 ‘구슬’이라는 뜻도 있다]만을 귀하게 여길 따름이다.”라는 『 삼국지 』 「 한전 」 의 설명을 떠올리게 한다 ).
옥 문화의 뿌리와 그것의 전파 과정을 고고학 유물과 옥에 대한 관념을 바탕으로 살펴보는 것은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지 않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 단기 4357년 음력 6월 29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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