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선생의 역사책(이자 문학)인 『 사기(史記) 』 에는 안 나오는 이야기지만, 제하(諸夏)를 비롯한 이른바 ‘중화권’의 ‘한족(漢族)’들에게는 창세 본향풀이(‘신화’)가 있다.
그 이야기에 따르면, 하늘과 땅이 열린 뒤 맨 처음으로 이 세상에 나온 거인이 ‘반고(盤古)’인데, 이 반고는 원래 ‘한족(漢族)’이 섬기던 신이 아니라 말레이 몽골 계통인 남중국 원주민이 섬기던 신이라는 것이다. 이는 지금으로부터 딱 한 세대 전, 그러니까 딱 서른 해 전에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가 자신의 글( 『 동아시아, 문제와 시각 』 에 실린 「 서사와 이데올로기 – 중국, 그 영원한 제국을 위한 변주 」 )에서 지적한 사실이다.
“세계를 창조했다는 거인에 관한 반고(盤古) 신화만 하더라도 원래는 남방(남중국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소수 민족의 신화(본향풀이 – 옮긴이)였던 것이 (제하[諸夏]의 – 옮긴이) 삼국 시대 무렵 중원(위/촉/오를 합친 제하[諸夏] - 옮긴이)으로 흘러들어와 오늘날(서기 1994년 – 옮긴이)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의 대표적인 창조 신화가 되지 않았는가?”
- 정재서, 『 동아시아, 문제와 시각 』, 166쪽
실제로, 반고 이야기는 『 시경 』 이나 『 서경 』 이나 『 주역(周易) 』 같은 서주/동주 시절의 기록에는 나오지 않고, 『 춘추(春秋) 』 같은 춘추시대의 기록에도 나오지 않으며, -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지만 - 『 사기(史記) 』나 『 한서(漢書) 』 같은 한(漢)나라 때의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다. 거꾸로 뒤집어 말하자면, 이 이야기는 원래 ‘한족’의 본향풀이가 아니었고, 그래서 ‘한족’ 지식인들이 이를 인용하거나 강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제하(諸夏)의 삼국시대에 와서야 오(吳)나라 지식인인 ‘서정(徐整)’이 남긴 글인 「 삼오력기(三五歷紀. “삼오[三五]”는 “삼황오제[三皇五帝]”를 줄인 말이라고 한다 – 서정의 글을 인용하신 ‘skypass’님의 보충설명) 」에
“하늘과 땅이 달걀처럼 혼돈의 상태일 때/그 속에서 반고가 태어났고/1만 8천 년이 지났다./하늘과 땅이 열려/밝고 따뜻한 것은 하늘이 되고/어둡고 탁한 것은 땅이 되었다./반고는 그 가운데 있어/하루에 아홉 번 바뀌었는데/하늘보다 신령하고 땅보다 성스러웠다./하늘은 날마다 한 길씩 높아졌고/
땅은 날마다 한 길씩 두터워졌으며/반고의 키는 날마다 한 길씩 자랐다./
그렇게 하기를 1만 8천 년/하늘은 아주 높아졌고, 땅도 아주 깊어졌으며/반고도 아주 키가 커졌다./ … (이하 생략) ….”
고 반고에 대한 설명이 나와, 오늘날 ‘중화권’ ‘한족’들이 아는 반고 이야기가 나타났다.
정 교수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한족’들은 제하의 삼국시대에 와서야 반고 이야기를 남중국 원주민들로부터 받아들였고, 그것을 글로 적어 남겼으며, 그제야 창세 신화, 하늘과 땅이 만들어진 사실을 설명하는 본향풀이를 가질 수 있게 된 셈이다.
추측컨대 남중국 원주민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제하 왕조인 오나라가 맨 먼저 반고 이야기를 받아들여 그것을 글로 정리했고, 오나라를 무너뜨리고 점령한 서진(西晉)왕조가 반고 이야기를 화북 지방(북중국)으로 가져갔으며, 그럼으로써 그 이야기가 온 제하(諸夏)에 널리 퍼지게 된 건 아닌지. 그렇다면 이른바 ‘중화권’의 ‘한족’은 남중국 원주민들로부터 창세신화를 빚졌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스물다섯 해 전에 한림대학교의 강의에서 들은 것들을 적은 짧은 글을 바탕으로 보충설명을 하자면, 이 반고 이야기는 원래 ‘반호’라는, 남방(남중국. 오늘날의 화중[華中]/화남[華南] 지방)의 여러 소수민족들(사실은 남중국 원주민들)이 함께 섬기던 시조신이었으며, 그 신의 이야기가 한나라 때 ‘한족’에게로 건너갔고, ‘한족’은 그 이야기를 바탕으로 ‘반고’라는 신이 나오는 창세 신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반호가 나오는 본향풀이를 자세히 살펴보자. 그 이야기에 따르면 ‘고신국’이라는 나라에서 누에만한 황금빛 벌레가 비단을 온 몸에 두른 개, 그러니까 ‘반호’로 바뀌었고, 그 개가 “반란군 두목의 목을 가져온 자는 공주와 혼인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고신국 임금의 말을 듣고 반란군에게로 가 반란군 두목을 죽이고 그 목을 물어온다. 그러나 임금은 약속을 지키지 않고, 개는 크게 화를 낸다. 개는 “나를 금으로 된 종 속에 넣고 이레(7일)가 지나면 사람이 될 것이오.”하고 사람의 말로 이야기를 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그 말대로 한다. 마음이 착한 고신국 공주는 엿새가 지나도 반호가 종 밖으로 나오지 않자 반호가 굶어 죽었다고 여겨 종 뚜껑을 열고, 반호는 그 안에서 머리는 개로 남아 있었고, 몸은 사람으로 바뀐 모습이 되어 있다. 반호는 공주와 혼인해서 살게 된다.
이 이야기가 한(漢)나라 때 ‘한족(漢族)’에게로 건너왔고, ‘반호’는 이름이 ‘반고’로 바뀌었으며, 이야기도 종족의 유래를 설명하는 본향풀이에서 하늘과 땅이 만들어진 과정을 설명하는 본향풀이, 그러니까 창세 신화로 바뀌게 된다.
이 설명과 글 위에 나오는 설명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내 생각은 이렇다. 반호가 나오는 본향풀이와 서정이 쓴 「 삼오력기 」 의 반고 이야기가 많이 다른 점으로 미루어볼 때, ‘한족’들은 반호 이야기를 받아들이되,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입맛대로 바꾸고, 다듬고, 자르고, 깎아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로 재창조를 한 게 아닌가 한다.
(이는 일본의 도자기가 맨 처음에는 - 조선백자를 만든 근세조선 도공들에게 기대야 했기 때문에 - 백자와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졌지만, 나중에는 백자와는 달리 ‘일본풍’으로 불릴 만한 기법과 문양과 빛깔과 무늬로 그 자신만의 복잡한 아름다움을 지닌 독특하고 화려한 도자기가 된 것과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본 도자기의 뿌리가 근세조선의 백자라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반고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비록 ‘원전’인 반호 이야기와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지만, 전자의 뿌리가 후자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반호’는 ‘반고’로 이름을 바꾸고, ‘개와 사람이 혼인해서 자손을 남겼다.’는 이야기는 한(漢)나라나 오나라가 따랐던 유교 도덕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대로 적을 수가 없어서 빼 버리고, ‘개가 사람이 되었다.’는 설정도 “괴력난신(怪力亂神. ‘괴이와 용력[씩씩한 힘]과 패란과 귀신에 대한 일’이라는 뜻. 이성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불가사의한 존재나 현상을 일컫는 말)을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는 ‘한족’ 지식인들의 합리주의적 사고와 공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빼고, 그 대신 ‘일족/민족의 시조’라는 성격을 ‘하늘과 땅을 만든 신’이라는 성격으로 바꿔서 오늘날 ‘중화권’의 ‘한족’들이 아는 반고 이야기를 만들어낸 것이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반호 이야기는 오(吳)나라 때가 아니라 제하의 삼국시대 이전인 후한 시대에 ‘한족’들에게 소개되었고, 그것이 후한 때 반고 이야기로 재창조되었는데, 반고 이야기를 적은 후한 때의 글이 전해지지 않고, 그보다는 후대인 오나라 때의 글만 남아서 오늘날까지 내려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오나라 서정의 글을 기억하고 후한 때의 글은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이는 『 전신론[錢神論] 』 이라는 책이 서진 때가 아니라 제하 삼국시대에도 - ‘노포’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 쓰여지긴 했지만, 노포가 쓴 같은 제목의 책과는 달리 글의 양이 적었고, 제대로 보존되어 내려오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 전신론 』 하면 삼국시대의 책을 떠올리지 않고 서진 시대에 노포가 쓴 책을 떠올리는 것과 같다).
후한 때에 전해졌다는 주장을 따르든 오나라 때에 소개되었다는 주장을 따르든 간에, 반고 이야기가 남중국 원주민(말레이 – 몽골 계통 민족)의 시조 신화인 반호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렇다면 이른바 ‘중화문명’은 ‘한족’이 다른 나라/겨레에게 영향을 끼친 점만 강조해야 하는 게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다른 겨레가 ‘한족’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나서 이 글을 맺는다.
(내가 이런 식으로 남중국 원주민이 ‘한족’에게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까닭은, 중화사상과 한족 중심주의로 무장한 ‘중화권’ ‘한족’들의 오만에 반박하기 위해서고, 나아가 ‘한족’뿐 아니라 다른 민족들도 아시아의 갈마[‘역사’]와 문화에 공헌을 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어서다)
※ 참고 자료
- 『 동아시아, 문제와 시각 』( ‘정문길’/‘최원식’/‘백영서’/‘전형준’ 엮음, ‘(주)문학과지성사’ 펴냄, 서기 1995년 )
- 글쓴이(개마두리)가 서기 1999년에 한림대학교에서 들은 강의의 일부분을 받아적은 글
- <가욕(可欲) 님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asapshin/223381388873
- 단기 4357년 음력 11월 21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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