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스트레일리아 : ‘남쪽 땅’이라는 뜻. 실제로도 오스트레일리아는 지구의 남쪽인 남반구에 있다. 한자로는 ‘호주(濠州)’로 부르나, 이 이름은 ‘호주제’의 ‘호주(戶主)’와 발음이 같으므로, 그것을 피해 이 글에서는 ‘오스트레일리아’라는 원래 이름을 쓴다.
▶ 민족 :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이나 거북섬(‘아메리카’)의 원주민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원주민을 ‘부족’이라고 부르는 관행은 서기 19세기 제국주의 시절에 서양 백인들이 세계 여러 곳의 원주민들을 깎아내리려고 만든 관행이므로, 여기서는 ‘부족’ 대신 ‘민족’이라는 말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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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1세기 초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발굴된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남성의 뼈에는 날카로운 날에 베인 듯한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고, 그 뼈는 발굴되기 전에는 구덩이 안에 웅크린 형태로 묻혀 있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학자들은 이 뼈를 연구했는데, 연구 결과 그 뼈는 지금으로부터 8세기 전인 서기 13세기, 그러니까 서기 1200 ~ 1299년 사이에 살았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남성의 뼈였으며(그러니까, 이 뼈는 중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뼈다), 뼈의 자국은 부메랑(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사냥 도구이자 병기[兵器]다)에 맞거나 창날에 베여서 생긴 것임이 밝혀졌다.
이 연구 결과 대로라면 이 원주민 남성은 누군가와 싸우다가 상대방의 부메랑이나 창으로 큰 상처를 입었고, 그 때문에 피를 많이 흘려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시 말해 이 남성은 병기를 들고 민족간의 전쟁에 뛰어들었고, 역시 병기를 든 다른 민족의 전사에게 공격당하거나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남긴 벽화(바위 절벽이나 동굴 벽에 남아있다)로도 입증되는데, 그 벽화에는 원주민들이 창이나 몽둥이나 부메랑을 들고 한데 모여 다른 무리와 싸우는 모습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시베리아 원주민이나 거북섬[‘아메리카’] 원주민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원주민들과는 달리 활이나 화살은 만들지 않았고, 따라서 그것들을 병기로 쓰지도 않았다). 이 뼈의 발굴은 벽화가 증언하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의 갈마(전쟁사)를 사람의 뼈라는 가장 확실한 물증을 통해 다시 한 번 입증한 셈이다.
이 뼈의 ‘증언’대로라면, 중세시대인 서기 13세기에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병기를 들고 민족끼리 치고 박았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원주민들만 오스트레일리아 땅에 살던 시대가 평화롭지만은 않았음을 시사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 내(개마두리)가 지난해(서기 2024년)에 본 ‘디스커버리 사이언스’ 채널의 다큐멘터리에 나온 이야기를 요약해서 정리
▣ 덧붙이는 글 :
다큐의 내용을 곱씹다 보니, ‘도대체 중세 말기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은 무엇 때문에 서로 싸웠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물이나 사냥감이나 살 곳이 모자랄 정도로 인구가 늘어나서, 그런 자원들을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이웃 사이의 사소한 갈등이나 마찰/충돌이 나중에는 전쟁으로 바뀐 것일까? 아쉽게도(그리고 안타깝게도) 다큐멘터리도 그에 대한 설명이나 분석은 하지 않아 이 의문은 당분간은 의문 그대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다만 한 가지, 중세시대의 민족 전쟁이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 가운데 한 갈래인 ‘티위’ 족이 다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에게도 적개심을 드러내고 배타적인 태도를 드러낸 걸 보면, ‘우리는 모두 같은 원주민’이라는 생각은 영국 백인들이 오스트레일리아를 완전히 손에 넣기 전까지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에게는 없었다고 판단할 수 있고, 이 다큐멘터리가 살펴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남성의 뼈도 그 판단을 뒷받침한다는 말은 할 수 있으리라.
같은 인종이고,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민족들이 이렇게 서로 싸우면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힌 것을 보면, ‘같은 인종끼리 살아야 평화가 온다.’거나 ‘인종이 같으면 싸울 일이 없다.’고 주장하는 한국의 인종주의자/순혈주의자들(나아가 모든 것을 ‘인종’이라는 열쇠말로 풀이하려고 드는 서구의 인종주의자들)의 주장이 과연 옳은 것인지 의문이 들며, <문제는 ‘나와 같은 인종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내 권리를 침해하려고 드는 사람인가, 아닌가?’가 아니겠느냐>는 생각도 든다는 말을 끝으로 이 글을 맺는다.
부디 이 글과 이 글의 본문이 여러분이 오세아니아 원주민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빈다.
- 단기 4357년 음력 12월 9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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