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비엣남[Vietnam]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에서는 퇴계와 율곡만 알고 있었는데, 한국에 왔더니 다양한 사유를 남기고 정리한 철학자들이 정말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다오 부 부’ 베트남 사회과학한림원철학원 연구원(38세)은 유창한 한국어로 말했다. 전남대 방문연구원으로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는 ‘현암 이을호(서기 1910년 ~ 1998년)’ 선생(본관은 전주고, 태어난 곳은 전라남도 영광이다 – 옮긴이)의 『 한국철학사 총설 』 을 번역해 최근 베트남어로 출판했다.
현암은 다산 경학 연구의 개척자이자 사상의학(四象醫學. 사람의 체질을 태양인/태음인/소양인/소음인으로 나누어, 각각의 체질에 따라 다른 약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 의학. 이제마가 만들었다 – 옮긴이)을 재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학자다. 전남대 철학과 교수, 국립광주박물관장 등을 역임했고 『 다산학의 이해 』, 『 다산학 입문 』 의 저서를 남겼다. 다산 정약용에 대한 연구를 개척한 뒤 자신의 ‘한사상’을 정립해 후대 한국 철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 옮긴이) 정작 한국인에게는 익숙한 이름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그럼 베트남의 젊은 철학자는 왜 현암의 책을 번역하기로 했을까. 그는 “베트남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한국의 전통 철학과 베트남의 전통 사상의 유사성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현암의 책은 근대 이후 한국 철학의 독창성과 철학사를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베트남의 한국학 연구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를 특히 매료시켰던 것은 사상의학과 신종교에 대한 연구다. “한국에서는 현암이 다산학을 정립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한국적 유교철학의 발전으로 해석한(풀이한 – 옮긴이) 것과 동학/대종교/원불교 등 근대 한국에 나타난 신종교에 대한 연구가 흥미로웠다.”고 말했다.
베트남 현지에서 대학 시절 동방학을 전공한 그가 한국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양국 역사(歷史. 순수한 배달말로는 ‘갈마’ - 옮긴이)의 유사성이 계기였다.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의 주변 국가로서 유교와 한자를 받아들이고, 중앙집권적(‘적’은 빼야 한다 – 옮긴이) 국가를 세웠으며, 각각 일본과 프랑스라는 제국주의 국가에게 국권을 빼앗긴 점 등이다. (논문인 – 옮긴이) 「 한국 근대기의 인본사상 」 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한국이 근대 이후에도 현암 같은 학자들이 주체적으로 유학을 해석해 독자적 철학을 발전시킨 것처럼 베트남도 비슷한 학자들이 많이 나왔다.”며 “(두 나라는 – 옮긴이) 근대기에 많은 신종교가 등장한 것도 유사하다.”고 말했다.
차이점은 없을까?
그는 “베트남의 유학이 (한국의 그것에 비해 – 옮긴이) 조금 더 실용적 분위기가 있다.”며 “한국처럼 명분이나 도덕보다는 사회에 실질적 도움을 준다는 측면에서 연구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한국 유학이나 철학을 연구하며 – 옮긴이) 다소 (이해하기 – 옮긴이) 힘들었던 개념이 ‘하늘[天]’이다. 베트남 유학에서는 ‘천명’이나 ‘천벌’ 같은 개념이 없다(좀 뜻밖이다. 나는 어느 나라의 유학[儒學]이건 ‘천명’이라는 개념이 있는 줄 알았는데! - 옮긴이). 그보다는 가족(식구 – 옮긴이)의 의미가 더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베트남의 국민 영웅(이자 독립투사 – 옮긴이)인 호치민이 정약용의 『 목민심서 』 를 애독했다는 설에 대해서 그에게 물어봤다. 다오 연구원은 “그가 『 목민심서 』 를 읽은 것은 맞다. 그런데 호치민은 프랑스, 소련(오늘날의 로[Ro]시야 – 옮긴이), 홍콩 등에서 활동하며 다양한 책을 읽었다. 아마도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에 있을 때 그 책을 읽은 것 같은데, (그가 그 책을 – 옮긴이)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거나 의미를 부여한 것은 아니다.”라고(하고 – 옮긴이) 말했다.
그는 향후 10년간 현암 이을호 선집 27권 중 11권을 번역할 계획이다. “한국 철학은 매우 매력적인 세계”라며 “앞으로 K팝처럼 한국 철학이 베트남에서 많이 알려지고, 인기 있는 학문이 되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 ‘유성운’ 기자
- 『 중앙일보 』 서기 2021년 양력 12월 26일자 기사
- 단기 4357년 음력 12월 21일에, ‘<토종> 한국인인 내가 비엣남의 상고사/고대사/중세사/근대사/현대사에 관심을 기울이듯이, <토종> 비엣남 사람 가운데서도 한국 근대사와 한국 철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두 나라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남아 있다고 여겨 진심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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