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유방(劉邦) 시절 전한(서한) 왕조가 훈나(‘흉노’) 제국과의 전쟁에서 진 까닭

개마두리 2025. 5. 12. 21:50

기원전 200, 한 고조 유방(劉邦)이 이끌던 전한(서한)의 군사 32만 명은 훈나(한자로는 흉노’) 제국의 군사에게 크게 패했는데, 그 까닭은 훈나 제국은 “10만 명의 기병을 동원한 반면, 전한(서한)은 군사 32만 명 가운데 기병이 “3000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전자는 10만 대가 넘는 전차(탱크)로 이루어진 부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후자는 대부분 총 든 보병이고 전차는 3000대 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 패배 때문에 전한(서한)은 일흔 해 동안 훈나 제국의 신하 나라로 살아야 했고, “한나라 공주(가짜였지만 - 옮긴이 개마두리)”를 훈나의 황제인 선우에게 시집보내야 했으며, 해마다 비단//음식 등을 바쳐야 했다.

 

이런 관계는 유철(시호 한 무제’)이 한나라의 황제가 된 뒤에야, 그것도 유철이 훈나 제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키고 나서야 뒤집히게 된다.

 

- 참고자료 :만화로 읽는 중국사 1 (/그림 류징[劉京/유경]’, ‘이선주옮김, RSG 펴냄)

 

- 음력 415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