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과 기술의 목적지는 어디인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과학 기술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우리가 우려하는 상황을 ‘산성 눈’에 비유한 시 한 편을 먼저 소개한다.
산성 눈 내린다 … (중략) …
그러고 보면 땅이나 하늘
자연은 결코 참을성이 있는 게 아니다
산성 눈 한 뼘이나 쌓인다 폭설이다
당분간은 두절이다
우뚝한 굴뚝, 은색의 바퀴들에
그렇다, 무서운 이 시대의 속도에 치여
내 몸과 마음의 서까래
몇 개 소리 없이 내려앉는다
… (중략) … 펄펄 사람의 죄악이 내린다
하늘은 저렇게 무너지는 것이다
- 이문재「 산성 눈 내리네 」
과학과 기술은 “무서운 이 시대의 속도”로 발전하여 세상에는 “우뚝한 굴뚝”이 세워지고 “은색의 바퀴들”이 돌아가고 있다.
그 이면에서 인간이 머무는 “자연”이라는 공간은 “두절”되고 마침내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는다. 화자는 이때 내리는 “산성 눈”이 사실은 “사람의 죄악”이라고 말한다.
왜 죄악인가?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일방적인 과학 기술의 발전은 무모한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화자는 과학 기술의 속도에 차여 살다 보니 ‘몸과 마음이 다 무너져 내려앉는다.’며 경고하고 있지 않은가.
인간으로서 자연에 죄의식을 느끼고 더 늦기 전에 행동해야 한다는 시의 주제 의식이『 세 바퀴로 가는 과학 자전거 』에 담긴 저자 강양구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 과학으로 시를 쓸 수 있을까?
자연을 탐구하는 ‘과학’이 ‘인간’의 마음을 노래하는 시에 들어가면 어떤 모습일까? 뜻밖에도 실험실에서나 쓰일 법한 과학 용어(혹은 개념과 원리)가 사람의 마음을 적절히 표현하는 사례는 일상에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걸 그룹 ‘여자친구’의 노래 <시간을 달려서>에서, 시간을 빨리 흐르게 해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화자의 바람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떠올리게 한다. 백예린의 노래 <우주를 건너>에서, “너와 나 사이의 우주를 건너 내게로 날아와 줘.”라는 부탁은 블랙홀의 개념을 연상하게 한다. 뉴턴의 만유인력마저 시어(詩語. 시에 있거나 쓰는 말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로 빨아들이는 다음 시를 읽어 보면, 앞선 질문에 충분한 답이 될 것 같다.
만유인력의 법칙에 의하면
손을 떠난 물체는 땅으로 떨어지게 되어
있다.
공도 그 중의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공은 잠시 동안이지만
인력을 거부할 줄 안다
돌이나 책처럼
처음부터 항복하지 않고
스스로 튀어 오름으로
우리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준다
한번 떨어진 물체는
대부분 그 자신이 부서지거나
금이 가서 상처를 입게 되지만
공은 내색하지 않는다
밑으로 떨어져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그대로 주저앉아야 하는 심정을
속을 비우고 공처럼 가볍게 뛰어올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
가를
지금 어떤 물체 하나
땅으로 떨어지고 있다
- 신미균「 공 」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사물은 이 세상에 없다. 닥쳐오는 ‘운명’이나 삶의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시련’도 사람에겐 만유인력처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과학에서 정지된 빛은 질량이 0이기 때문에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이 시는 사람도 “속을 비우고” 마음속이 0이 되어야 공처럼 가볍게 뛰어올라 비로소 만유인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노래하고 있다. 지금 “땅으로 떨어지고 있”는 모든 이에게 마음을 비우라는, 마치 옛 성현의 가르침과 같은 깨달음을 던져 준다.
과학, 기술, 문학은 별개의 절대 영역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 기술이 사람을 위해 봉사하고, 문학이 사람을 노래하는 것처럼 과학/기술과 문학 사이에는 ‘사람’이라는 교차점이 있다. 과학과 기술이라는 두 바퀴와 함께 굴러갈 나머지 한 바퀴는 ‘사회’에 한정되지 않는다. ‘사람’의 바퀴, ‘자연’의 바퀴, 이왕이면 ‘문학’의 바퀴도 함께 있으면 좋다. 또 어떤 바퀴가 더 있어야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기대는 – 옮긴이) 과학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세 바퀴가 될 수 있을까?
- 공규택(2017년 현재 수원 화홍고 국어 교사)의 글
-『 고교독서평설 』지 2017년 4월호(제 313호) 기사
- 음력 4월 16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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