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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劉邦) 시절 전한(서한) 왕조가 훈나(‘흉노’) 제국과의 전쟁에서 진 까닭

기원전 200년, 한 고조 유방(劉邦)이 이끌던 전한(서한)의 군사 32만 명은 훈나(한자로는 ‘흉노’) 제국의 군사에게 크게 패했는데, 그 까닭은 훈나 제국은 “10만 명의 기병”을 동원한 반면, 전한(서한)은 군사 32만 명 가운데 기병이 “3000명”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로 치면 전자는 10만 대가 넘는 전차(탱크)로 이루어진 부대를 가지고 있었지만, 후자는 대부분 총 든 보병이고 전차는 3000대 밖에 없었던 셈이다. 이 패배 때문에 전한(서한)은 일흔 해 동안 훈나 제국의 신하 나라로 살아야 했고, “한나라 공주(가짜였지만 - 옮긴이 개마두리)”를 훈나의 황제인 ‘선우’에게 시집보내야 했으며, 해마다 “비단/술/음식 등”을 바쳐야 했다. 이런 관계는 유철(시호 ‘한 무제’)이 한나라..

갈마(역사) 2025.05.12

‘5호 16국 시대’와 남북조 시대의 유목민 지배가 불러온 북중국의 변화

수나라가 남북조를 통일함으로써 “분열의 시대가 끝날 즈음, 여러 세기에 걸친 유목민의 지배로 인해 북쪽(화북 지방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에 사는 한족의 생활양식도 바뀌었다(류징).” 다시 말해 한족이 유목민의 문화를 받아들여 한족의 문화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면, - 한족은 바닥에 앉는 생활, 그러니까 좌식 생활을 했으나, 남북조 시대와 수나라 초기에는 선비족을 비롯한 유목민족들처럼 의자에 앉는 생활, 다시 말해 입식 생활을 하게 되었다. - 한족은 5호 16국 시대 이전에는 샌들이나 슬리퍼를 신었지만, 이후에는 구두나 장화를 신게 되었다. - 한족은 한나라 때나 삼국시대나 서진시대에는 길고 헐렁한 옷을 입었지만, 5호 16국 이후에는 짧고 몸에 꼭 맞는 옷을 입게 되었다. (..

갈마(역사) 2025.05.12

[세계사]외국인의 눈으로 본 명나라

- ‘중은우시’님이 2009년 양력 3월 20일에 올린 ‘곽상학(郭翔鶴)’ 님의 글 - 출처 : http://blog.daum.net/shanghaicrab/16152611 역사적인 원인으로 수십년이래로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의 역사학계에서는 하나의 현상이 존재했다. 폄명양청(貶明揚淸. 명나라를 깎아내리고 청나라를 치켜세우다). 명나라는 군주가 멍청하고 신하가 탐욕스러우며, 사회는 어두웠고, 문화와 과학기술은 타락한 시대로 그려졌다. 청나라는 강건성세(康乾盛世, 강희, 옹정, 건륭을 거치는 태평성대)를 계속 언급하였다. 역사학자들은 청나라가 통치 말기까지도 명나라의 사회/문화, 경제 성취를 따라가지 못했던 사실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무지한 학생과 민중들에게 왜곡된 역사..

갈마(역사) 2025.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