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3

※ 1941 ~ 1945, 태평양전쟁 - (2)

▶ 섬 전쟁 태평양전쟁에 대한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가진 대중도 많다. 인터넷(순수한 배달말이자, 새로운 배달말로는 ‘누리그물’. ‘세계[누리]를 옭아맨 정보의 그물’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을 검색하면 고맙게도 그런 대중들로부터 풍부한 설명과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만큼 세부적인 평가에서는 전문가와 대중을 막론하고 의견이 다르기도 하다. 여기서는 보편적으로 확인되고 공유된 사실들만을 개괄적으로 다룬다. 그 속에서 필요한 부분을 골라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서기 – 옮긴이) 1941년 (양력 – 옮긴이) 12월 7일, 일본군(근대 왜군 – 옮긴이)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미국과 일본(근대 왜국 – 옮긴이)의 태평양전쟁은 처음부터 일본이 이..

갈마(역사) 2024.10.09

※ 1941 ~ 1945, 태평양전쟁 - (4)

▶ 코코다 전투와 일본군의 정신력 할복, 옥쇄, 자살돌격을 불사할지언정 항복을 모르는 일본군이야말로 일본인의 강인한 정신력을 보여주는 상징이라 운운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 혹자(或者. 어떤 사람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는 그것이 일본군의 전투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엔 중대한 오해가 숨어 있다. 이 오해는 일본을 이해하는 데 큰 장애를 일으킨다. 상식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을 은폐하거나 왜곡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비가 오는 이유(까닭 – 옮긴이)를 저기압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무당의 기도에서 찾는 것과 같다.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꼭 해명되어야 할 부분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동남아의 남방전쟁 등에서(같은 전쟁에서 – 옮긴..

갈마(역사) 2024.10.09

※ 1941 ~ 1945, 태평양전쟁 - (5) : 끝

▶ 일본군은 얼마나 강했는가 (전략) 동북아(동아시아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의 일본군(왜군[倭軍] - 옮긴이)은 고대 이래로 그리 강군이 아니었다. 중세 무사정권 이후에는 시종일관 전사국가였음에도 그렇다. 이유(理由. 까닭 – 옮긴이)는 간단하다. 변방에 위치하여(자리하여 – 옮긴이) 과학기술이 뒤떨어졌고, 그런 만큼 무기(병기[兵器]. 순수한 배달말로는 ‘잠기’ - 옮긴이)와 장비가 뒤떨어졌기 때문이다.  대신 이들은 기습전과 단기전에 강했다. 항상(늘 – 옮긴이) 싸우고 있었으므로 병력 자체는 상시적으로 실전에서 단련된 정병(精兵. 우수하고 힘센 군사 – 옮긴이)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후기 고리[高麗] 말기에 일어난 – 옮긴이) 왜구의 약탈과 (서기 1592년에 일어난 전쟁인 – ..

갈마(역사) 2024.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