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 1941 ~ 1945, 태평양전쟁 - (2)

개마두리 2024. 10. 9. 23:32

섬 전쟁

 

태평양전쟁에 대한 많은 연구가 축적되어 있다.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가진 대중도 많다. 인터넷(순수한 배달말이자, 새로운 배달말로는 누리그물’. ‘세계[누리]를 옭아맨 정보의 그물이라는 뜻이다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검색하면 고맙게도 그런 대중들로부터 풍부한 설명과 자료를 얻을 수 있다. 그런 만큼 세부적인 평가에서는 전문가와 대중을 막론하고 의견이 다르기도 하다. 여기서는 보편적으로 확인되고 공유된 사실들만을 개괄적으로 다룬다. 그 속에서 필요한 부분을 골라 초점을 맞추기로 한다.

 

(서기 옮긴이) 1941(양력 옮긴이) 127, 일본군(근대 왜군 옮긴이)의 진주만 공습으로 시작된 미국과 일본(근대 왜국 옮긴이)의 태평양전쟁은 처음부터 일본이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이는 전쟁사 관련 역사책 일반의 공통된 관점이다. 생산력과 장비와 기술에서 터무니없는 격차가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병사들의 개별 전투력과 정신력에서도 미국은 일본에 뒤지지 않았다. 미국으로서는 적잖은 고통과 희생을 치렀지만, 총체적 전력을 비교하면 이 전쟁은 애초 상대가 안 되는 게임이었다.

 

당시 일본이 바라는 게 있다면 동맹국인 독일(도이칠란트 제 3 제국/히틀러의 나치 정권 옮긴이)이 유럽에서 소련과 영국을 제압하여 미국을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하고, 이런 미국으로부터 강화 요청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한국(코리아[Corea] 반도와 간도 옮긴이), 중국(중화민국 옮긴이), 동남아, 서태평양(오세아니아 옮긴이)을 아우르는 일본제국의 점령지가 미국의 방해 없이 인정될 것이라 여겼다. 실제로 이런 식의 강화 방침이 일본의 유일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이와 다르게 전개되어 전쟁이 길어진다면 일본이 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당시 일본 수뇌부조차 예감했던 바다. 따라서 1940년 이후 제 2차 세계대전의 유럽 전선을 이끌던 나치 독일이 일본의 전쟁 개입 시점에서 영국은커녕 소련 점령조차 실패한 이상 일본의 패배는 처음부터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 하나의 공통된 관점은 일본이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에서 미국에게 패배한 이후 전세가 돌이킬 수 없이 미국의 우세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워낙 유명해서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사실이다. 미드웨이나 과달카날이 무엇인지, 즉 그것이 지도에도 잘 안 나오는 작은 섬의 이름인지조차 모르고 있어도 이 전투가 결정적이었다는 것만은 두루 알고 있는 것이다.

 

사실이 그렇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본은 전쟁 초기에 아직 준비가 덜 된 미국과 비등한 혹은 더 우세한 전력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두 전투 이후 일본의 열세는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 지속되고 심화되었다. 재기와 역전의 가능성은 전혀(조금도 옮긴이) 없었다.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는 모든 유명한 전투가 그렇듯 격렬한 드라마를 내포하고 있다. 왜 일본제국은 실패하였는가? 와 같은 책이나 역사 다큐멘터리 등을 참고하면 흥미롭고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앞의 책은 일본 연구자들이 서술하여 일본에서 100쇄가 넘게 팔렸다 하고, 다큐멘터리는 새계적으로 유수(有數. 손꼽을 만큼 두드러짐 옮긴이)한 방송사들이 만들었다. 그만큼 흥미롭고 신뢰할(믿을 옮긴이) 만한 자료가 많다는 뜻이다. 그것이 주는 고통과 감동과 교훈 역시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여기서 먼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미드웨이와 과달카날의 두 전투가 아닌 그 다음 과정이다.

 

두 전투가 끝난 1943년 초반을 지나 1943년 말에 이르면 육해공 삼면에서 미국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한다. 이제 완전한 재정비를 마친 미국은 일본을 향해 북서쪽으로 진격한다. 시작은 길버트제도부터다. 지금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그러므로 이게 무슨 말인지 좀 더 상세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길버트제도는 호주(오스트레일리아 옮긴이)를 둘러싸고 있는 솔로몬제도(과달카날은 이 섬[옮긴이] 중의 하나)의 북동쪽 수백 킬로미터에 있는 작은 섬들이다. 그 북쪽 수백 킬로미터 지점에는 마셜제도가 있고 그 서쪽 1000킬로미터 이상 거리에 마리아나제도가 있다. 타라와, 매이킨, 콰절런, 애니위톡, 사이판, 괌 등이 이 지역에 속한 섬들이다.

 

미국이 길버트제도에서 출발했다는 것은 이 섬들에 설치된 일본의 주요 기지나 진지들을 하나씩 점령하며 이를 발판 삼아 북서쪽에 있는 일본 본토 쪽으로 다가간다는 뜻이다.

 

1차 최종 목표지점은 마리아나제도의 사이판이다. 왜냐하면 사이판에서부터는 항공기가 지상에서 한 번에 날아올라 일본 본토를 폭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사이판은 당시 일본군의 주요 점령지인 필리핀과도 가깝다. 나아가 일본 본토와 동남아 사이의 바다를 가로막을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일본의 보급선을 초토화할 수 있다. (그래서 옮긴이) 일본도 사이판을 1차 절대방어선으로 규정한다.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이판에 이르기 전까지 194311월부터 약 6개월(다른 말로는 반년 옮긴이)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는 것이다.

 

우선 누구나 상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섬 상륙작전의 실상을 확인하자. 섬 점령 작전이 개시되면 맨 먼저 항공모함과 이를 둘러싼 순양함, 구축함, 수송선 등 수십, 수백 척의 기동함대가 등장한다. 일본군 쪽에서 바라보면 해안이 새까맣게 미군 함대로 둘러싸인다. 그 모습만 봐도 기가 질린다. 이어서 기동함대의 항공모함과 근처 기지에서 출발한 폭격기와 전투기들이 이번엔 공중을 새까맣게 뒤덮는다. 곧바로 우박이 내리듯 폭탄이 떨어지고 바다의 전함에서는 엄청난 양의 함포사격이 몰아친다. 수비하는 일본군은 참호와 진지와 엄폐물 속에 처박혀 있어야 한다.

 

섬을 공중으로 들었다 놓을 만큼 무지막지한 폭격으로 일본군을 꽁꽁 묶어놓은 다음, 미 해병과 보병의 상륙이 시작된다. 파도처럼 끝도 없이 미군 병사들이 몰려온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군은 뭘 해야 하나?

 

첫째, 상륙작전의 취약 지점인 상륙 순간에 미군을 공격해야 한다. 이것이 잘 되면 효과적으로 미군을 퇴치할 수 있다.

 

둘째, 상륙을 막지 못했다는 진지전으로 들어간다. 잘 만들어진 벙커 참호 동굴에 숨어 포격, 매복, 기습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상륙한 미군을 물리쳐야 한다. 언제까지? 아군인 일본군(근대 왜군 옮긴이)의 육해공 지원군이 올 때까지.

 

그러나 섬에 박힌 일본군으로서는 미군의 상륙을 도저히 막아낼 수 없다. 미군을 상당히 괴롭힐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외부 지원 없는 일본군의 자체 병력과 무기(병기[兵器] - 옮긴이)만으로 미군의 상륙을 막기는 불가능하다. 반대로 어설피 작전을 수행하다 쏟아지는 미군의 포격과 항공기 공습으로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자신들이 전멸당할 수도 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군은 한 번도 이 상륙의 저지에 성공한 적이 없다.

 

미군 상륙 이후 아무리 오래 진지전을 벌이고 있어도 지원군은 오지 않는다. 사이판 섬에 이를 때까지 일본군 함대와 항공기는 사실상 전무했다. 왜 그랬는지 전문가가 아닌 나로서는 정확히 모르겠다(사실은 나도 이 일이 이해가 안 된다. 태평양 쪽 전선이 아닌 다른 전선들, 예를 들면 중화민국의 점령지나 동남아시아의 점령지들에 군사와 물자를 쏟아부어서 태평양 쪽 전선에 보낼 지원군이 모자랐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어서였나? 옮긴이).

 

어쨌든 결론은 하나다. 일본군 사령부는 각 섬에 고립된 일본군을 백퍼센트 방치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섬에 따라 수백 명에서 수천 명에 이른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패배가 결정되었으며 항복하지 않는 한 몰살이 예정되었다.

 

미국 입장에서 이 섬 전투들은 한편으로는 간단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처절한 것이었다. 간단하다는 것은 점령이 기정사실(이미 정해진 사실 옮긴이)로 되었다는 뜻이다. 병력과 장비가 고정된 일본군이 고립된 좁은 섬에서 무슨 일을 하건 상관없다. 섬 근처의 바닷가를 새까맣게 점령하고 있는 미군으로서는 항공기 공격과 대포사격을 언제든지 요청할 수 있다. 장비도 탱크(전차 옮긴이)건 화염방사기건 필요한 대로 더 보충한다. 병력도 마찬가지다. 공명심(功名心. []을 세워 이름[]을 널리 드러내려는 마음 옮긴이)에 붙들려 무리를 하는 미군 지휘관의 만용만 없다면 이 작은 섬들의 공격에 대비한 병력의 추가보충은 사실상 무한대다. 간단한 전쟁일 수밖에 없다.

 

처절하다는 것은 그럼에도 최후의 깃발은 보병이 꽂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화력과 전투장비가 우월하다(뛰어나다 옮긴이) 해도 수년(몇 해 옮긴이)동안 콘크리트 참호와 땅굴과 바위동굴로 섬 전체를 요새화하여 대항하는 적군의 진지와 고지를 점령하는 것은 소총을 든 보병의 전진뿐이다. 이것만은 폭격으로 대신할 수 없다.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는 한반도(코리아[Corea]반도 옮긴이)에서 벌어진 한국전쟁(6.25 전쟁 옮긴이) 당시 미군이 끝내 북한군(인민군 옮긴이)과 중공군(정식 호칭은 인민해방군’ - 옮긴이)을 이기지 못한 사례에서 알 수 있다. B 29 폭격기가 북한(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줄여서 조선 공화국’. 수도는 평양 옮긴이) 땅 전체를 한 꺼풀 벗겨낼 만큼 폭격을 가했어도 미군은 중공군과 북한군을 밀어내지 못했다. 아침저녁으로 주인이 바뀌는 보병의 고지전만 2년간 반복되었다(되풀이되었다 옮긴이).

 

더 극적인 상황은 미군의 베트남에서의 패배다. 아예 비교가 불가능한(비교할 수 없는 옮긴이) 화력을 퍼붓고도 미국은 베트남을 점령하지 못했다. 이와 같은 진지전과 게릴라전의 참혹함에 대해서는 무수한 영화와 책들이 반복해서 보여준 바다. 보병이 진지를 점령하는 건 이렇게 어렵다.

 

국적을 불문(不問. 묻지[] 않음[] 가리지 않음 : 옮긴이)하고 상대가 준비된 군대라면 진지 점령 전투는 무한히 처참하다. 지형에 따라서는 첨단무기를 지닌 군대가 화살을 쏘는 적군에게 무너질 수도 있다.

 

그런데 몇몇 섬의 일본군은 오랫동안 준비된 정규군이다. 그들의 상대적 전력이 아무리 약해도 미군은 때때로 지옥을 통과해야 한다. 처절한 전쟁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일본군은 한반도나 베트남(정확한 발음은 비엣남[Vietnam]’ - 옮긴이)과 달리 손바닥만 한 섬에 고립되어 있었다. 외부 지원이 없는 이상 승리는커녕 살아 도망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한편 일본군의 유명한 총검 돌격과 옥쇄는 전투 측면에서 별 의미가 없다. 그것은 미군의 입장에서(미군에게는 옮긴이) 가장 수월한 전투 중(가운데 옮긴이) 하나였으며, 일본군의 입장에서도(근대 왜군에게도 옮긴이) 한없는 교만과 어리석음의 전형으로 판명된 전투다. 기관총이나 대포를 향해 제 발로 달려드는 일본군이야말로 진짜 먹잇감들이었다. 그 황당함에 몸서리를 쳤을지언정 미군이 그것에 겁을 먹고 물러난 적은 없다. (근대 왜군 병사들의 옮긴이) 육탄돌격과 자살행위는 전황(戰況. 전쟁의 실제 상황 옮긴이)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미군을 괴롭힌 것은 그런 무모한 돌격이 아니라 끈질기고 교묘하며 신중하게 기획된 일본군의 용감하고도 탁월한 작전들이었다.

 

이렇게 해서 때로는 폭격만으로 때로는 적잖은 희생을 치르며 미군은 섬들을 (하나씩 하나씩 옮긴이) 점령해갔다. 어찌 보면 기묘한 전쟁이다.

 

실제로 나로서는 가장 기묘한 점이 바로 이것이다. 왜 일본군사령부는 전멸할 것이 불을 보듯 훤한 병사들을 섬에 방치했는가(내버려 두었는가 옮긴이)? 시간을 벌기 위해서? 열심히 싸워 미군에게 심리적 타격을 주기 위해서? 아니면 신명(神明. 하늘과 땅의 신령 옮긴이)(근대 왜군 병사/장교들을 옮긴이) 보호할 거라는 요행을 바라고? 말도 안 된다. 이토록 커다란 전력 차이를 두고 그런 성과를 기대하는 건 언어도단이다. 한 국가(나라 옮긴이)의 군사령부가 수만 명의 병사가 속절없이 전멸할 걸 알면서도 끝까지 싸우라고 방치했다는 말인데, 대체 이 전술의 목표와 의미가 무엇일까?

 

거기서 직접 싸우다 죽은 일본군 병사와 장교들은 오히려 이해가 쉽다. 제대로 된 병사는 훈련받고 명령받은 대로 싸울 뿐이다. 도망칠 게 아니라면 살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하물며 당장 폭탄과 총탄이 눈보라처럼 휘날리는데 사령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게 뭔가.

 

섬에서 이들을 지휘하는 일본군 지휘관은 이해가 더 잘 된다. 대양(大洋. 넓고 큰 바다 옮긴이) 가운데 떠 있는 섬이니 일단 후퇴할 곳이 없다. 얼마가 되건 준비된 전력으로 지원군이 올 것을 희망하며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어느 나라 군인이건 제대로 된 군인은 이렇게 한다.

 

다만 패배가 분명한 상황에서 잔존(남은 옮긴이) 병력이 항복하지 않고 자살(그러니까, ‘옥쇄’ - 옮긴이)이나 자살돌격을 감행한다는 것만이 일본군의 유별난 점이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일본군사령부인 대본영과 천황(왜왕[倭王] - 옮긴이)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이다. 아무 의미도 남기지 못한 채 전멸이 명백한 수만 명의 병사를 (태평양의 여러 섬들에 옮긴이) 방치한 이들의 정신구조는 무엇인가?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무의미한 병사의 희생만은 막아야 하는 거 아닌가? 실제 전장인 야전에서 패배하여(져서 옮긴이) 쫓겨가는 다급한 상황도 아니고, 본토 작전본부에 앉아 모든 상황을 손금 보듯 살피고 있으면서 마음만 먹으면 필요한 조치를 단행할 수 있는 사령부가 이래도 되는 건가(내가 히로히토 왜왕을 지지하는 왜인[倭人]들과, 친일국가에서 태어나 왜국 정부/우익의 사냥개가 된 자들에게 묻고 싶은 것도 바로 이거다! - 옮긴이)?

 

전쟁사에서는 이 점에 대해서는 별 설명이 없다. 유명한 전쟁사가인 존 키건2차 세계대전사 에서 이렇게 서술했다.

 

타라와(길버트제도의 한 섬 필자)는 중태평양 전역(戰役 : 전쟁 옮긴이)의 전개에 곧바로 긍정적 효과를 또 한 차례 미쳤다. 일본군 함대가 방해하지 않았고, 아니면 그 구역에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니미츠는 마셜제도의 다른 섬을 지키는 수비대를 말라 시들어가도록내버려두고 군도의 맨 서쪽에 있는 콰잘레인 섬과 에니웨톡 섬으로 치고 나가도 괜찮으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451)

 

미군 태평양해역 사령관 니미츠의 작전 구상이다. 이 지역에서 일본군 함대는 아예 나타나지도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일본군이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다른 전쟁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전술적으로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글쓴이 옮긴이)로서는 유독 눈길이 가는 대목이다.

 

이 부분의 전투들에서 미군은 일본군을 그야말로 이 잡듯 잡아 죽였다. 진지 하나하나를 모두 점령해야 하는 미군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얕게 땅을 파고 매복한 일본군은 그 속에서 미군을 쏘았으며, 미군은 그 굴속에 수류탄을 던졌다. 위장된 콘크리트 벙커 안에서 일본군은 미군에게 기관총 세례를 퍼부었으며, 미군은 그 벙커 주위에 폭탄을 설치하고 터뜨렸다. 자연동굴과 인공진지를 드나드는 일본군은 그 속에서 파상적(波狀的. 어떤 일이 일정한 시간 간격을 두고 물결 모양으로 되풀이되는 것 옮긴이)으로 미군을 공격했고, 미군은 그 진지와 굴 속에 화염방사기를 난사했다(마구 쏘았다 옮긴이).

 

(미군은 옮긴이) 이를 견디지 못해 달려나오는 일본군을 향해 또다시 화염 방사기를 발사했으며, 단번에 새까만 통구이가 된 일본군의 탄띠에서는 수십 발의 소총 실탄이 자동 폭발했다(저절로 터졌다 옮긴이). 미군이 아니라 어떤 군대라 해도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일본군은 두절된(끊어진 옮긴이) 지원으로 기아와 질병에 시달렸다. 이것이 태평양전쟁의 악명 높은 참혹들 중 하나다.

 

문제는 누가 일본군을 이처럼 압도적인 미군의 전력 앞에 방치했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만든 게 일본군사령부이므로 일본군사령부는 자신의 병사들을 손톱에서 피를 튀기여 톡톡 부러져 나가는 이 떼들로 전락시킨 셈이다. 그것도 냉정한 맨 정신으로 그랬다.

 

나는 이것이 이 전쟁만의 특수성이라 생각지 않는다. 이것은 (서기 옮긴이) 12세기 무사정권 이래 21세기 지금에 이르기까지 최소한(적어도 옮긴이) 일천년간 지속된 일본 지배층의 근원적인 사고방식이다. 결국 이 섬 전쟁의 기묘함은 일본의 역사를 겨냥한다.

 

( 3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