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일본의 독도 망언, 미국도 책임 있다

개마두리 2012. 4. 9. 21:13

 

-『미디어오늘』서기 2012년 2월 2일자 기사

 

- [정상모의 흥망성쇠] 일본 외무상, 외교연설서 부당한 주장

 

[미디어오늘 정상모 평화민족문화연구원 이사장] 일본의 독도 망언이 최근 또다시 나왔다. 일본 외무상이 독도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외교연설에서 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다. 게다가 일본 총리까지 한국 정부의 항의와 벌언 취소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거들었다.

 

지난해 3월에는 일본 문부상이 "다케시마는 일본의 고유 영토이다",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내용의 일본 교과서를 검증 통과시켰다. 잊을 만하면, 일본의 독도 망언과 교과서 문제가 불쑥 나타나 과거의 아픈 상처를 헤집곤 한다.

 

우리의 과거 상처를 건드리는 것은 일본의 망언뿐만이 아니다. 미국 의회 도서관이 독도를 리앙쿠르트로 이름을 바꾸려고 해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독도가 자칫 분쟁지역으로 될 뻔한 심각한 문제였다. 미국은 왜 독도 문제에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가.

 

독도는 대한제국이 1900년 칙령 제41호로 울릉도와 함께 한국 영토로 선언한 것을 5년이나 뒤늦게 일본이 강제로 빼앗은 것이다. 일본이 당시 러·일전쟁을 시작하면서 독도 주변의 군사 전략상 가치를 중요하게 보았기 때문이었다.

 

일본이 이렇게 강탈한 독도는 카이로 선언의 정신에 따라 한국 영토로 귀속되는 게 너무나 당연하다. 카이로 선언에서 "일본은 폭력과 탐욕에 의해 약탈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축출될 것"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선언에서 일본의 주권은 혼슈와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와 연합국이 결정하는 작은 섬들에 국한한다고 적시되어 있었다. 전쟁 말기 일본의 스즈키 수상도 카이로 선언 취지대로 일본의 독립을 보장받는다면 메이지 유신 이전 영토로 축소되는 것을 수용하려고 했다(만약 스즈키 수상의 말이 실현되었다면 북해도의 원주민인 아이누족과 오키나와의 류큐인은 독립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옮긴이).

 

그래서 1945년 미국최고사령부 훈령 제677호는 일본에서 한국 영토로 분리되는 섬들은 울릉도, 독도, 제주도라고 열거했다. 미국이 1947년 3월 작성한 대일강화조약 첫 초안부터 1949년 11월 5차 초안까지도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명시돼 있었다.

 

문제가 생긴 것은 이 해 12월 6차 초안부터다. 독도가 아예 빠져 버린 것이다. 소극적으로 대처하던 이승만 정부가 뒤늦게 독도를 한국 영토로 해야 한다며 나섰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1951년 9월 조인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일본이 한국에 반환해야 할 섬으로 울릉도 등이 포함됐으나 독도는 빠지고 말았다.

 

왜 이렇게 바뀐 것인가. 미국의 동북아 전략적 이익이 바뀐 때문이었다.

 

1945년 당시만 해도 미국의 동북아 정책은 중국을 강화하고 일본을 약화시킨다는 것이었다. 이 정책이 1947년 하반기부터 달라졌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 관계가 전면적 대결상태로 들어가고, 중국 내전에서 공산당이 국민당을 이겼다. 미국은 공산화된 중국과도 관계를 맺으려 했으나, 중국은 소련과 손을 잡았다. 미국이 가장 꺼려한 상황이 전개됐다.

 

미국은 아시아 정책의 중심을 중국에서 일본으로 바꿨다. 일본이 미국 아시아 정책의 전략 파트너로 결정됐다. 미국의 전략적 이익 보호와 공산주의 팽창 억제 기능을 일본이 담당하도록 한 것이다.

 

1950년 종·소 동맹조약이 체결되고 한반도 전쟁이 발발했다. 미국의 일본 중시 정책은 더욱 강화됐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체결된 때는 미국과 중국의 군대가 충돌한 시기였다.

 

미국의 정책 변화가 없었다면, 일본 영토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으로 축소됐다. 독도 문제도 생길 리 만무했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카이로 선언의 정신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강화회의에 미국의 반대로 한국이 참여하지 못한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당사자인 한국을 빼놓고 한국의 영토 주권 문제를 처리할 수 있는가. 독도 침탈 야욕의 주체는 일본이지만, 그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는 주장이 왜 나오겠는가.

 

미국의 책임은 독도뿐만이 아니다. 미국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으로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 지배의 길을 터 주었다.

 

일본의 한반도 강점의 결정적 계기가 된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를 적극 도와준 것도 미국이었다.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일본의 조선 지배권을 허용한 강화조약 체결을 주선한 공로로 노벨평화상까지 받았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미국은 카이로 선언 정신에 따라 애초 입장대로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재확인하고 태도를 분명하게 해야 한다. 일본의 과거사 청산 문제도 책임 있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 그것이 역사의 진실이다.

 

미국과 소련 중심의 냉전대결 체제에서 한반도가 분단되고 독도 문제가 발생했다. 강대국들은 한민족을 희생양으로 만든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들이 과거의 일로 끝나지 않고 계속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이 소련을 공동의 적으로 한 전략적 협력관계를 맺으면서 미·중이 1971년 한반도 관련 밀약을 맺었다. 두 나라가 다른 강대국을 배제하고 한반도의 전략적 이익을 공동으로 나누어 갖자는 내용이었다. 우리 민족의 운명을 두 나라가 결정하겠다니 충격적인 일이다.

 

동북아 질서가 역동적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미국과 중국, 미·중·일 사이에 전략적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한반도 문제가 어떻게 논의되는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뒷전으로 밀려 또 다시 강대국들의 이익 다툼에서 희생양이 되는 것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