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모순들

배신한 한국여성 찾아온 중국남성...부끄럽습니다

개마두리 2012. 5. 6. 08:24

 

- 모든 사랑엔 책임이... 여러분 아이는 '가장 행복한 하루' 보내고 있나요?

 

- 박은선 (odette97) 기자

 

제 남편은 경찰입니다.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경찰공무원의 근무 여건과 보수 등을 비틀어 "경찰 여러분 결혼하는 거 어렵지 않아요, 그냥 집에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여자랑 결혼하면 돼요"라고 할 때 손뼉 치며 동감했을 만큼 남편 역시 늦은 시각까지 퇴근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몇 해 전 어느 여름, 그날은 도가 치나 쳤습니다. 남편이 자정이 넘도록 연락도 없이 집에 들어오질 않는 겁니다. 잠 못 이룬 저는 새벽녘에야 들어온 남편에게 화를 내려고 한껏 폼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얼굴빛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늦은 이유에 대한 남편의 얘기가 끝났을 때 저는 더 이상 남편을 원망할 수 없었습니다.

 

외국인 범죄를 담당하고 있는 남편은 그날 점심 즈음 민원실로 찾아온 한 중국인 남자를 만났다고 합니다. 한국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이 남자, 다짜고짜 "한국인 여자 한 명을 찾아달라"고 했지만, 사실 이것은 남편이 처리할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국제범죄와 무관한 사안이니 그랬습니다. 하지만 "내 관할업무가 아니다"란 말로 지나치기엔 남자의 얘기가 참으로 가슴 아팠습니다.

 

일본에서 만난 한국인 여성과 사랑하게 된 중국인 남성의 사연

 

남자의 사연은 이랬습니다. 상해에서 태어난 남자는 십여 년 전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갔고, 그곳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는 한 한국인 여성을 만납니다. 낯선 이국땅에서 힘겹게 돈을 벌던 두 남녀는 서로 의지하며 사랑하게 됐고, 빨리 돈을 모아 남자의 고향으로 가 함께 살기로 약속하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 뒤 여자가 임신을 하게 되자,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의 고향의 부모님 집에서 아이를 낳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조금만 더 돈을 벌어서 자신의 아이를 보다 행복하게 키울 수 있기를 남자는 바란 것이죠.

 

그런데 몇 달 뒤 상해의 고향으로부터 남자는 기막힌 얘기를 듣게 됩니다. 상해에서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마친 여자가 고향에 다녀오겠다며 한국에 간 뒤 소식이 끊겼다는 겁니다. 당황한 남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여자의 한국 연고지들에 모조리 연락하며 여자를 수소문해보았지만 여자는 만나주지 않았고, 돌아온 것은 "당신과 함께 살고 싶지 않다. 당신 아이이니 당신과 부모가 키우고 다시는 나를 찾지 말아라"라는 답변뿐이었습니다.

 

당시 남자는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삶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아이'가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남자는 마음을 다잡고 상해로 와 다시 돈을 벌며 열심히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오로지 '내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

 

그러던 남자가 십여 년이 지나 다시 여자를 찾게 된 것, 여자를 찾아 말도 안 통하는 한국까지 오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호구(우리의 호적) 문제였다고 합니다. 아이 엄마가 아이를 낳자마자 한국으로 가 버리면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한 아이, 그 아이가 이제 학교에 갈 나이가 되자 남자는 혼자서라도 아이를 자신의 호구에 넣는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우리의 '인지'에 해당하는 법적 절차를 거쳐 친부-친자 관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중국에서도 유전자 검사가 필수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는 병원으로부터 청천 날벼락 같은 얘기를 듣게 됩니다. 그것은 십여 년을 키운 자신의 아이가 자신과 유전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자신을 배신한 한국여성을 찾아 십여 년 만에 한국 찾은 진짜 이유

 

남자의 설명이 모두 끝났을 때 남편은 십여 년을 키워온 아이가 '자신과 무관한 아이'임을 알고 분노한 남자가 생모에게 아이를 보내거나 그 간의 손해 배상이라도 요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고, 또 여자를 찾고 있다 생각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자의 목적은 전혀 달랐습니다.

 

"아이가 학교만 갈 수 있게 도와달라."

 

이것이 남자의 유일한 바람이었습니다. 자신과 유전적 관계가 없어 친자 입증을 할 수 없고 한중 간 입양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아이를 입양할 수도 없으니 아이가 호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모를 찾는 방법밖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남자의 아이라고 믿게 하고 아이를 버린 한국인 여자에게는 사기죄 및 영아유기죄가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외국인 가해자-한국인 피해자'의 범죄를 다루는 남편으로서는 이 같은 문제를 다룰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배신한 한국인 여자가 낳은 아이, 게다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 아이를 버리기는커녕 어떻게든 호구를 만들어주기 위해 무작정 외국으로 와 헤매는 중국인 남자의 모습은 남편의 마음을 흔들었고 밤늦도록 그를 돕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게 만들었습니다.

 

남편의 설명이 끝났을 때 저는 어떤 원망의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라이따이한, 한궈쓰성쯔, 코피노. 일반인에겐 생소할지 모를 이 단어들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 남성들의 왜곡된 성문화와 무책임이 바로 그것입니다. 라이따이한은 1960년대 베트남전에 참가했던 우리 군인들이 베트남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가리키고, 한궈쓰성쯔는 1990년대 한중 수교 이후 사업 등의 이유로 중국을 방문한 한국인 남성들이 조선족 등 중국인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을 가리킵니다. 또 최근 어학연수 등을 이유로 필리핀에 체류한 동안 현지 여성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에겐 코피노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세계화 시대에 국적이 다른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전과 해외근무, 어학연수 등을 마치고 본국에 돌아가면서 미래를 약속했던 여성과 그녀가 낳은 아이를 버리는 일부 한국 남성들의 비인간적인 행태는 어느덧 이 같은 부끄러운 신조어들까지 만들어내며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입니다. 특히 이 문제는 비교적 잘 사는 나라의 남성이 그렇지 못한 나라의 여성을 현지 체류 시 언어나 성의 측면에서 이용한 부분이 엿보인다는 점에서 세계화의 어두운 면까지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진국 여성을 이용한 한국 남성들을 처벌할 수 있는 국내법, 국제법 조항도 전무하고 국가 간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노력도 없기 때문에 버려진 여성과 아이들의 경제적, 정신적 고통은 오로지 그들의 몫으로만 남아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데 자기 아이도 버리는 한국인 남자들과 달리 자기 아이가 아님에도 끝까지 손을 놓지 않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홀로 낯선 한국땅을 헤매었던 한 중국인 남자의 그 위대하고도 가슴 아픈 부성애, 국적과 혈연을 초월한 그 부성애를 생각하면 남편이 늦도록 남자를 도운 것은 정말이지 백번이고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 날도 남편은 남자를 돕기 위한 방법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렵사리 여자의 연락처를 찾아냈지만 여자는 '만나기 싫다'는 태도로 일관했습니다. 여자의 상황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나 남자와 아이를 생각하면 포기할 수 없었기에 오랜 시간에 걸쳐 상황을 설명하며 설득했고, 결국 "책임을 묻지 않는다, 아이의 호구 작성만 도와달라"는 얘기에 여자는 남자를 만나 협조하기로 마음을 겨우 돌렸습니다.

 

그리고 여자의 출생신고로 아이는 한국 국적을 갖게 돼 중국 유학생 자격으로 아빠와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현행법상 '한국인 아이'가 '중국인 아빠'(물론 법적으로는 아빠가 아닙니다)와 살면서 학교에 다닐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란 것이 남편의 설명이었습니다.

 

한 중국인 남자가 보여준 부성애, 다시 되새겨 봅시다.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오늘이 '어린이날'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도 어린이날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한국 국적의 그 아이가 한국 어린이들이 일 년 중 가장 행복해야 할 오늘, 자신을 사랑해주는 '아빠'와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입니다.

 

하지만 모든 아이들이 그처럼 다행스러운 행복을 누리고 있지는 못합니다. 비단 라이따이한, 한궈쓰성츠, 코피노와 같은 아이들만이 문제일까요? 한국인 엄마 아빠 사이의 아이들 중에도, 책임을 저버린 부모답지 못한 부모들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아이들의 수가 사실 적지 않은 것이 가슴 아픈 현실입니다. 오늘은 한국의 모든 아이들이 행복해야 하겠지만, 어디선가 울고 있을 아이들이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모든 중국인 남자가 이런 부성애를 지니는 것이 아니고, 모든 한국인 남자가 외국에서 사생아를 만든 뒤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국인 남자의 부성애는 참으로 큰 메시지를 던져준다고 생각합니다. 그 메시지는 바로 모든 사랑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어린이날인 오늘, 한 번쯤 그 사실을 되새기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 날짜 : 2012.05.05

 

*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28616

 

(<오마이뉴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