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모순들

"스마트폰 아냐고요? 우리는 미개인이 아니예요!"

개마두리 2012. 4. 19. 23:34

 

- 등록 : 2012.04.19

 

[낮은 목소리] 편견으로 고통받는 외국인 유학생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를 보면, 한국에는 2011년 기준으로 9만3000여명의 외국인 유학생이 있다. 이는 2004년 9700여명에서 10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올해 안으로 10만명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폭발적 증가 추세처럼 한국은 외국인 유학생들이 공부하기 좋은 나라일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 3월, 국회에서 ‘외국인 유학생 정책 발전 대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중국 유학생들은 “우린 더럽지 않다”며 울분을 토했다. 이슬람권 국가에서 온 학생들은 종교 문제로 차별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를 주최했던 주한유학생협의회(KISSA)의 실무자는 “외국인 유학생들이 겪는 차별은 결국엔 한국에 대한 나쁜 이미지로 남는다”며 “한국인들의 인식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한 언론사에선 전국 26개 대학의 외국인 유학생 125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68%인 85명이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외국인 유학생들의 국적 분포를 보면 차별의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다. 2011년 기준 총 외국인 유학생 가운데 약 70%에 달하는 6만8000여명이 중국 국적을 갖고 있다. 여기에 2위 몽골(4898명), 3위 베트남(3235명)이 뒤를 잇고 있다. 한국인들이 흔히 갖는 ‘못사는 나라에서 왔다’는 잘못된 편견이 ‘차별’의 근원임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낮은 목소리’는 중앙아시아의 한 나라에서 온 유학생을 만났다. 한국인들의 기준에서 보면 ‘못사는 나라’임에 틀림없는 곳이다. 인터뷰를 마친 뒤 “지금은 적응돼서 괜찮다”고 하는 작은 목소리에서 희망보다는 체념이 엿보였다. 이정국 기자

 

jglee@hani.co.kr

 

제 이름은 영미(한국 이름)예요. 히말라야 산맥 근처에 있는 나라에서 왔어요. 친구들이 편하게 부를 수 있게 한국 이름을 지었어요. 원래 고향에서 쓰는 이름은 따로 있는데 말하면 제 신상이 드러날 거 같아서 밝히지 않을래요. 뜻은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뜻이래요. 아버지가 지어줬어요.

 

우리 나라는 작은 편이에요. 대학은 국립대학이 하나 있는데 5개 캠퍼스로 나뉘어 있어요. 대학생은 합쳐서 8000명 정도예요. 대학이 하나밖에 없어서 입학하기도 매우 어렵고, 사실 졸업해도 별다른 혜택이 없어요. 사람들이 욕심이 별로 없어서 출세라는 개념이 없다고 봐도 돼요.

 

모국에선 중상류층 생활

유학 오니 ‘불법체류자’ 취급

한국인보다 영어 잘하는데

“영어는 할 줄 아니?” 비아냥

 

저는 2007년 한국에 왔어요. 고향에 있을 때 한국 정부가 유학생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어요. 오스트레일리아와 한국 두 곳의 유학생 지원 프로그램에 지원했는데 전부 선발이 됐어요. 하지만 전 한국을 선택했어요. 한류 때문에 한국을 택한 건 아니에요. 오스트레일리아는 ‘영문학’만 전공하게 돼 있었는데 한국에선 여러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저는 평소 관심 있던 경제학을 선택했어요. 우리 나라는 어릴 때부터 모국어와 영어를 동시에 사용하거든요. 그래서 딱히 영어를 더 공부할 필요가 없기도 했어요.

 

우리 집은 고향에서 중상류층에 속해요. 아버지는 오랫동안 회계사로 일했어요. 어머니는 교사 일을 했고요. 8명의 형제들이 있는데 전부 외국에 살고 있어요. 막내 빼고요. 막내가 공부를 못하거든요. (웃음) 유럽, 오스트레일리아, 타이 등에 유학을 가서 기업에 다니거나 박사 과정 등의 공부를 하고 있어요.

 

국내 교육사정이 열악하다 보니 외국 정부에서 지원하는 유학 프로그램의 경쟁률이 매우 높아요. 1~2명 뽑는데, 경쟁률이 몇 백 대 1은 기본이에요. 저도 공부를 꽤 잘했어요. 한국 정부에서 지원하는 유학생 프로그램에 뽑혔을 때 무척 기뻤어요. 기대도 컸고요. 하지만 한국에 도착한 2007년 겨울, 제 기대는 무너졌어요.

 

외국인 유학생들은 6개월 이상 체류하면서 외국인등록증을 받아야 해요. 등록 신청을 하면 2주 정도 있다가 발급이 돼요. 그게 있어야 보험도 가입이 되고 휴대폰도 개통할 수 있어요. 저도 집에 자주 연락을 하고 싶어서 빨리 휴대폰을 개통하고 싶었어요.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이 처음으로 겪는 시련 가운데 하나가 휴대폰 개통이에요. 대부분 사기를 한 번씩 당해요. 약정 기간을 속이거나 바가지 요금을 덮어씌우는 거예요. 저는 분명 1년 약정이라고 설명을 듣고 가입을 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3년 약정이었고 휴대폰도 중고폰이었어요. 항의하러 갔더니 “우린 모른다. 네가 다 동의한 거다”는 말뿐이었어요. 결국 휴대폰은 1년도 못 쓰고 고장 나서 책상 서랍 속에 있어요. 지금은 한국 친구의 명의를 빌려 개통한 스마트폰을 쓰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이런 문제들은 초반에 익숙지 않아서 겪는 일이었던 거 같아요. 다른 나라로 유학 가는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하지만 한국에서의 유학생활이 힘든 건 한국 학생들 때문이에요. 즉, 사람 때문인 거죠. 편견으로 인한 차별 문제가 심각해요.

제 고향 나라를 말하면 대뜸 돌아오는 대답은 “인터넷 알아?”, “스마트폰 써?”, “영어는 할 줄 아니?” 이런 것들이에요. 완전 무시를 당하는 기분이죠. 저희 집 식구들은 다 영어도 잘하고 인터넷도 할 줄 알아요. 저도 지금 스마트폰 쓰고 있잖아요. 설명을 하면 그때서야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봐요.

 

더 이상한 건 수업을 듣는 그들의 태도예요. 조별 과제가 있어도 모일 생각을 안 해요. 저는 같이 모여서 토론하고 과제도 나눠서 하고 싶은데 전부 “온라인으로 하자” 하고 집에 가버려요. 저는 옳지 않다고 봐요.

 

엠티·조별과제서 소외 일쑤

한국 학생들과 결연 자리에서

“순 동남아 애들이잖아”

행사장 나가버리는 수모 겪어

 

학교에선 외국 유학생을 위해서 선배를 ‘멘토’로 지정해 학교생활을 지도해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 멘토 제도 때문에 저 같은 유학생 친구들이 상처를 많이 받아요. 멘토를 신청하면 학점으로 인정을 받는데, 다들 정말로 외국인 유학생을 도와주겠다는 마음보다는 학점을 따겠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요. 굉장히 사무적으로 대해요. 제 주변 유학생 친구는 심지어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고 한 번도 연락을 안 하던 멘토 선배가 어디로 오라고 하더니 휴대폰으로 사진만 찍고 돌려보냈대요. 정말 심하죠?

 

한국 학생들은 유난히 백인들을 좋아하는 거 같아요. 저도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영어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벽보를 붙인 적이 있어요. 연락이 와서 학생을 만났는데 “미국인이 아니네요?” 하면서 그냥 가버렸어요. 전화가 오면 항상 묻는 말이 “어디서 왔어요?”였어요. 고향 나라를 말하면 다들 “죄송합니다” 하면서 전화를 끊었어요. 오기가 나서 “저 영어 잘해요”라고 대꾸를 한 적이 있어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말이 “미국식 영어가 아니잖아요”였어요. 한국인들은 영어가 미국식 영어만 있는 줄 아나봐요.

 

주변엔 전부 아프리카, 중국, 이슬람 국가 쪽에서 온 친구들뿐이에요. 한국 친구들은 일단 외국 유학생들하고 말을 하지 않아요. 엠티나 과별 모임에서도 전부 소외돼요. 투명인간 같다고 할까요.

 

한번은 외국인 유학생 단체에서 한국 친구들과 결연을 맺어준다고 해서 참석한 적이 있었어요. 아시다시피 한국에 백인 유학생들은 드물어요. 그런데 참석한 한국 학생들 가운데 몇명이 “뭐야, 순 동남아 애들이잖아” 하면서 행사장을 나가버렸어요. 거기 있던 외국인 유학생들은 전부 교양 있고 영어도 잘하는 친구들이었는데 그런 대우를 받는 게 이해할 수 없었어요.

 

학교 밖을 나가도 이상한 시선은 마찬가지예요. 학교에서 만난 아프리카 친구들과 지하철을 탄 적이 있어요. 3~4명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자리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가 “이 껌둥이들아, 조용히 해. 떠들려면 너네 나라로 가서 떠들어” 이러는 거예요. 전 너무 억울했어요. 잘못한 것도 아닌데 그냥 옆 칸으로 옮겨 탈 수밖에 없었어요. 저는 그런 경험이 처음이었는데 친구들은 종종 겪는 일이라며 참으라고 했어요. 한국인들은 우리 같은 피부를 가진 사람을 보면 ‘불법체류자’를 떠올린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행복한 편이에요. 그래도 정부 지원으로 학비와 기숙사비를 보조받고 있거든요. 정말 불쌍한 친구들은 아프리카나 중국에서 온 친구들이에요. 이 친구들은 집을 구하려고 해도 집주인들이 대놓고 “더럽다”며 방을 주지 않아요. 겨우겨우 외국인 유학생 전용 홈스테이를 찾아서 살긴 하는데 서울시내에 몇 개 없어요.

 

제가 정말 기가 막힌 얘길 하나 해드릴게요. 중국에서 유학 온 친한 친구가 있는데 한번은 이 친구가 기겁을 하고 저한테 얘길 했어요. 하숙집 아줌마가 자기를 감시한다는 거예요. 복도마다 폐쇄회로텔레비전 카메라가 달려 있는데 그걸 통해서 자기가 방에 들어갈 때마다 유심히 관찰했대요. 한번은 아침에 물건을 놓고 와서 급한 나머지 신발을 신고 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아줌마가 “너 왜 신발 신고 방에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렀대요. 바로 그날 방을 빼버렸다고 하더라고요.

 

휴대폰 개통 사기는 필수코스

중국·아프리카 유학생에겐

“더럽다”며 방 안 내주고

집주인이 CCTV로 감시까지

 

전 아직까지 한국이 좋아요. 최근에 한국인 남자친구도 사귀었고요. 그런데 계속 있을 자신이 없어요. 학교에서도 그런데 사회에 나가면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 두렵기도 해요. 지금도 외국인 대상 아르바이트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면 대부분 백인들을 위주로 채용해요. 유학생 인터넷 커뮤니티에 주로 광고가 올라오는데 백인을 선호하는 행태를 지적하는 댓글들이 많이 달려요.

 

마지막으로 부탁할 게 있어요. 우리가 피부색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엄연히 같은 대학생이에요. 오히려 한국으로 유학 온 친구들 가운데 자기들 나라에서 상류층인 경우가 많아요. 교양수준도 오히려 한국 학생들보다 높은 경우도 많고요.

 

우리는 여러분들이 보는 것만큼 미개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상한 시선은 보내지 말아주세요. 부탁드립니다.

 

―『한겨레』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