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모순들

휠체어 버린 장애인들 "장애는 사회적 차별"

개마두리 2012. 4. 22. 10:48

 

- “4월 20일 장애 아닌 장애차별철폐의 날” 종로 집회…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촉구

 

- 박장준 기자(weshe@mediatoday.co.kr)

 

4월 20일 오후 장애인 문애린(33)씨는 종로 사거리를 기었다. 목적지는 보건복지부다. 종로경찰서 경비과장은 확성기를 통해 “여러분이 도로를 20분 동안 점거하고 불법 시위를 해 일반 서울 시민이 불편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문애린씨는 장애인이다. 그에게 휠체어는 팔이자 다리, 온몸이다. 그는 왜 휠체어에서 내려왔을까. 문씨는 “장애인이 바닥을 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수치’이지만 더 이상 할 게 없어 몸으로 저항하려고 휠체어를 버렸다”고 설명했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와 발달장애인법 제정에 복지부가 뚜렷한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행진을 함께 한 비장애인 하나(22·서울대 인문대)씨는 “사회가 비장애인의 속도로 굴러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며 “중증장애인에 맞춘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철폐 공동투쟁단은 20일 오후 서울 보신각에서 ‘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 집회를 열고 보건복지부와 정부에 장애등급제 폐지,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부양의무제 폐지, 발달장애인법 제정을 요구했다. 밤 9시까지 열린 집회와 행진에는 시민 600여 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장애등급제가 장애인을 의료적 기준으로 판단하면서 정작 복지가 필요한 장애인이 활동보조서비스 등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한다며 장애등급제 폐지를 요구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장애등급제는 88년 국가가 예산을 이유로 장애인의 등급을 나눈 것”이라며 “자의적이고 의학적으로 나눈 1~6등급 때문에 장애인들이 복지를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7년 장애인운동단체가 요구해 제정된 활동보조서비스 또한 장애등급제를 기준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신청 자격을 장애 1급으로 제한하고 있고, 이마저도 재차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박 대표는 의료적 잣대가 아니라 장애인에게 필요한 복지를 개인의 조건에 맞게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형숙 경기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대표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1급이지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장애인이 많다”며 “장애를 사회적 차별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한국의 복지제도는 시민을 여러 등급으로 나누고 이에 맞춰 예산을 배정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장애등급제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부양의무제 폐지는 2000년 기초법 제정 이후 계속 장애운동단체의 요구이다. 집회참석자들은 결의문에서 부양의무제를 “빈곤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며 “국가가 책임지지 않고 가족과 개인에게 복지를 떠넘긴다”고 비판했다.

 

현행 기초법에 따르면 법적 부양자에게 일정 소득이 있으면 장애인은 최저생계비를 받지 못한다. 수급권 여부가 본인소득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에 장애인의 자립에 최대 걸림돌이라는 게 장애인운동단체의 설명이다. 2002년 고 최옥란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폐지를 요구했지만 부양의무제는 10년이 지난 현재 유지되고 있다.

 

참석자들은 발달장애인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했다. 이형숙 대표는 “현행 장애인 복지는 신체장애와 정신장애를 기계적으로 나누고, 신체장애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발달장애인은 장애인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법 제정을 촉구했다.

 

집회에 참석한 이아무개씨는 행진 도중 인터뷰에서 “복지부가 63빌딩에 장애인 데려다 밥 한 끼 먹이는 걸 보고 장애인의 날이라고 한다”며 복지부를 비판했다.

 

저상버스를 타고 보신각에 온 이라나(30)씨는 장애인 이동권 또한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얘기했다. 이씨는 저상버스 도입이 10% 정도로 낮고, 차 몸통을 기울여주지 않는 경우 때문에 승하차시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한 “할 수 있는 일, 갈 수 있는 곳이 없는 사회에서 저상버스는 의미가 없다”며 장애인 노동권을 강조했다.

 

장애인들의 집회와 행진은 여느 현장과 사뭇 달랐다. 무대와 거리에는 수화 통역사가 있었고, 발언과 상황을 수화로 통역해 전달했다. 사회자의 질문에 참석자들은 박수와 호루라기로 대답을 대신했다.

 

한편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은 행진하는 도중 경찰과 충돌했고, 경찰은 불법시위라며 행진을 가로 막았다. 참가자들이 보건복지부 옆 한편에서 행진을 정리하려고 했고 경찰은 시민 2명을 연행했다.

 

- 입력 : 201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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