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모순들

인종차별 호들갑...외국인 혐오증 부추긴 게 누군데

개마두리 2012. 4. 21. 12:55

 

-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던 보수언론, ‘제노포비아’ 싸잡아 비판

 

- 이재진 기자(jinpress@mediatoday.co.kr)

 

"보수언론들이 정신 분열을 일으키고 있다"

 

이주노동자 후원회 정영섭 사무국장은 최근 수원 살해사건 이후 트윗에서 이자스민 새누리당 비례대표 당선자를 비방하는 내용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면서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를 경계해야 한다는 보수 언론(사실 나는 조중동과『문화일보』와 경제신문들을 ‘수구 언론’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참된 보수파가 아니다 - 옮긴이)의 보도에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언론들이 과거에는 오히려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겨놓고 최근 외국인 범죄 사건이 커지자 이자스민 당선자를 끌어내 외국인 혐오증을 경계해야 한다고 외치는 보도는 정신 분열에 가깝다는 것이다.

 

구로, 안산, 동대문 등 외국인 밀집 지역에 대해서는 '밤길이 무섭다', '외국인이 칼을 들고 설치고 다닌다'는 자극적고 선정적인 제목으로 언론 보도를 하고, 외국인 범죄는 더욱 잔인하고 흉폭하다는 인상을 심어줘 제노포비아를 부추긴 게 보수언론들의 행태였다는 것이 정 사무국장의 주장이다.

 

지난 11일자 한국경제의 기사가 대표적이다. 기사에서는 "외국인 거주자들이 130만명에 달하면서 치안생태계 교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국인 거주자가 늘면서 범죄도 덩달아 일어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한국경제는 "최근 한국에서 일어나는 강력범죄 주범들은 상당수가 국내 거주 외국인 일용직 근로자나 불법체류자들로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한국경제는 외국인 범죄가 제노포비아로 연결되는 것을 경계해야한다고 지적하면서도 '불법체류자=범죄자', '외국인 범죄=강력범죄'라는 등식을 일반화시키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중앙일보도 지난 3월 28일 안산 원곡동 다문화거리를 다녀와 르포 형식으로 쓴 기사를 내보내면서 범죄에 노출된 일상적인 원곡동 골목의 풍경을 전했다. 중앙일보는 "전문가들은 외국인 범죄에 관대한 사회 인식이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한다"며 외국인 범죄에 대한 강력 처벌을 주문했다.

 

똑같이 원곡동 거리를 다녀온 지난 18일자 서울신문의 보도를 보자. 서울신문은 <외국인이면 모두 범죄자냐…편견 도넘어">라는 기사에서 "원곡동은 외국인 범죄자 밀집지역이라는 근거 없는 오명을 입증이라도 하듯 분주하고, 평온하고, 활달했다. 위험지역이라는 느낌은 없었다"고 전했다.

 

네팔 출신으로 동대문 지역에서 거주하며 이주노동자 노동조합 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다야(40)씨는 "동대문에서 외국인들이 칼을 들고 설친다는 언론보도를 보고 '그거 진짜야' 물을 정도인데, 한마디로 과장 보도다"라며 "이같은 언론의 과장 보도들이 국민들의 감정을 나쁘게 하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외국인이나 이주노동자들에게 불필요한 피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영섭 사무국장도 "미등록 체류자를 범죄자와 동일시해서 은연 중에 잠재적 범죄자로 이미지 조작을 한게 보수 언론들"이라며 "나쁜 외국인과 미등록 체류 외국인에 대해서는 완전 기생충과 동일시해 몰아내야 하는 대상이라고 하고, 범죄자로 낙인을 찍고, 배제 축출시키는 것은 폭력적인 방식의 인종 차별적인 모습"이라고 강조했다.

 

정 사무국장은 또한 "반면에 한쪽에서는 다문화를 얘기하면서 시혜적이고 착한 한국인을 조작해냈다"며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것이지만 착하고 불쌍한 외국인을 품어주겠다는 우월의식 또한 인종차별의 또 다른 한 측면"이라고 지적했다.

 

보수 언론들이 열을 올려 제노포비아를 화두에 올려 비난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들의 인권 문제나 미등록 체류자에 대한 강압적인 단속 방식 등에서도 문제를 제기하는 보도도 좀처럼 찾기 어렵다.

 

중앙일보는 오히려 지난 14일자 <엄격한 단속이 '외국인 혐오' 줄인다>는 제목의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그동안 외국인 범죄자 대부분이 이주 노동자로서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비롯된 온정적 정서와 인종 혐오증의 폐해를 막연히 우려하는 분위기 탓에 심도 있는 논의 자체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라며 "불법 체류 외국인 또는 외국인 범죄인에 대한 엄격한 관리와 단속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사무국장은 "이같은 시각은 정부 정책 틀에 갇혀 있는 모양새다. 용어 자체가 불법 체류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사무국장은 "미등록 체류자 중에는 비자관리가 만료된 사람이 많고, 이주민 정책 제도의 문제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체류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싸잡아서 법을 어겼기 때문에 범죄자라고 하고 있다. 사실 개선의 여지가 없다"면서 "불법 체류자는 불법을 저질렀으니 단속을 해야 하고, 단속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권침해 문제는 어쩔 수 없는 부수적인 일로만 치부해버린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도 과거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긴 장본인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지난 2004년 10월 조선일보는 정부가 대테러 종합정책을 발표하자 "국내 불법 체류자들의 반한활동이 알 카에다와의 테러활동과 연계될 가능성까지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능성의 근거가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고 미등록 체류자와 외국인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만들어버린 꼴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3월 8일 탈북자 황미선씨가 북한에서 한국으로 땅을 밟기 전까지 과정을 소개하는 기사에서 황씨가 조선족 남자에게 몸을 팔았다고 보도했지만 결국 사실과 달라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 대상이 돼 ‘탈북 후 중국에서 조선족 남성과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유지했다’는 정정 및 반론보도를 실어야 했다.

 

해당 기사는 황씨 개인사에 치욕적인 보도이면서도 조선족에 대한 이미지를 악화시키는 요소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다. <강제북송으로 만신창이...그때 날 도운 건 한국인>이란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조선족과 대비해 한국인의 착한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지난 1월 17일자 <서울 속 '작은 중국'...점점 커져만 가는 갈등>이란 기사에서도 조선일보는 "국내 체류 중국인이 늘어나면서 중국인 밀집 지역인 차이나타운이 서울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면서 "그러나 차이나타운이 들어서거나 형성되고 있는 지역마다 주민들과의 마찰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인과 중국인 상인들의 갈등을 지적하는 기사였지만, 시민들과 한국 상인들의 불만과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을 뿐 중국인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전혀 볼 수 없었다.

 

특히 이주노동자에 대한 언론 보도의 이면에는 이주노동자의 노동력이 없으면 사실상 경제 밑바탕을 유지할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외국인 혐오증에 커질 경우 추방운동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을 경계하면서 적당히 관리 통제를 하는 식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다.

 

정 사무국장은 "제노포비아의 사회적 요인, 정책적 요인은 무엇인지 왜 극심하게 반발하는지 깊은 고민과 진단이 빠져 있다"면서 "언론에서 제대로 된 평등이 무엇인지 그런 부분들을 깊이 있게 다뤄줘서 외국인 문제를 공론화 시켜줘야 한다"고 주문했다.

 

끝으로 정 사무국장은 우리나라의 제노포비아 현상에 대해 "2008년 이후 경제 위기가 오면서 자기 일자리가 없어지고 특히 서민과 하층민들이 그 원인을 정부나 자본가 집단에게 화살을 돌리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약한 집단으로 돌려 상대적 박탈감을 표출한 것"이라며 "현재 우리나라의 제노포비아의 수준은 조직된 반인종집단이 있는 서구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온라인상에서 소수로 조직된 반다문화주의자 수준을 넘어선 확대 현상이 있다"고 진단했다.

 

- 입력 : 2012-04-19

 

-『미디어오늘』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