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언어와 출신

개마두리 2012. 9. 29. 15:09

하루는 한 판디트(‘학자’라는 뜻. 존칭은 ‘판디트지’고 ‘학자님’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가 아크바르 대제를 찾아와서 자신의 풍부한 외국어 실력을 자랑했다. 그는 대제와 파르시(페르시아어. 오늘날에는 이란의 표준어다. 무굴 제국 시절에는 바라트의 공용어였다 - 옮긴이)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푸스하(표준 아랍어 - 옮긴이)어와 한어(漢語. 북경어北京語로 보인다. 당시 중국에는 북경을 수도로 삼은 명 왕조가 있었으니까 - 옮긴이)도 유창하게 했으며, 어전의 신하들에게 저마다 자기 출신 지역의 말로써 질문을 하게 했다.

 

그리고는 푸스하, 산스크리트어, 텔루구어(바라트 동남부에서 쓰이는 말), 벵골어(바라트 동북부에서 쓰이는 말. 타고르 시인이 쓰던 말이기도 하다. 오늘날에는 바라트 벵골 주州와 방글라데시 공화국의 공용어다 - 옮긴이), 구자라트어(바라트 서부에서 쓰이는 말) 등등으로 던져진 질문에 대해 각각 그 언어로써 유창하게 대답했다.

 

어전의 모든 사람들은 그의 외국어 실력에 감탄했다. 대제(大帝)는 그에게 푸짐한 상을 내렸다. 오만해진 판디트는 신하들을 향해 자신이 내일 궁전을 떠날 때까지 자신의 출신지가 어디인지를 맞춰 보라고 문제를 내놓았다.

 

“폐하. 사람의 출신은 그 말씨를 들어 보면 알 수 있다고들 하는데, 만일 대신 여러분이 이것을 알아맞히지 못하신다면 그 분들은 이 나라에서 저의 실력을 능가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셔야 할 것이옵니다.”

 

대제는 그의 도전을 받아들이고 그를 궁전의 손님으로 하루 묵게 했다. 대제는 그가 물러나자 신하들에게 그의 출신지가 과연 어디인지 짐작하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모두들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었다. 대제는 낙담한 얼굴로 비르발을 보았다. 그러자 비르발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폐하, 내일까지는 알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르발, 우리의 명예가 경(卿)에게 달려 있소.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바라오.”

 

그날 밤, 비르발은 판디트가 잠든 방으로 가만히 들어가서 풀잎으로 그의 귀를 간질이기 시작했다. 판디트는 잠결에 몸을 뒤척였다. 비르발이 계속해서 그의 귀를 간질이며 성가시게 하자 판디트는 잠이 덜 깬 채, “누구야?” 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비르발은 재빨리 몸을 감추고 자리를 떴다.

 

다음날 아침 판디트가 어전에 나타나자 비르발이 나서서 말했다.

 

“판디트지, 판디트지는 구자라트 출신이시죠?”

 

그러자 판디트는 놀라서 입을 딱 벌린 채 고개만 끄덕였다. 기고만장했던 판디트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언제나 호기심으로 가득 찬 대제가 비르발에게 물었다.

 

“승상, 그가 구자라트 출신인지를 어떻게 알아냈소?”

 

“폐하, 비록 여러 나라 말을 하는 사람이라도 무심결에는 자기 출신지의 말을 내뱉는 법이옵니다.”

 

비르발은 간밤에 있었던 일을 황제께 아뢰었다. 풀이 꺾인 판디트와 대제와 어전의 신하들은 비르발의 지혜에 새삼 감탄했다.

 

* 출처 :『비르발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을 해』(이균형 엮음, 정택영 그림, 정신세계사 펴냄, 서기 2004년)

 

* 옮긴이의 말 : 본성(本性)과 속마음과 버릇은 어디선가는 튀어 나오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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