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밀랍 왕자

개마두리 2012. 9. 29. 15:59

 

 

 

 

아크바르 대제는 비르발의 믿음인 힌두교를 자신의 믿음인 이슬람교만큼 존중해 주었지만 종종 종교를 빌미 삼아 비르발을 놀리곤 했다.

 

 

어느 날, 손자를 안고 산책하던 대제는 또 비르발을 놀렸다.

 

 

“비르발, 힌두교의 신(神)들은 정말 우습구려. 크리슈나를 보시오. 그는 시종도 없나 보더군. (그의 - 옮긴이) 신자가 도움을 빌 때마다 몸소 바쁘게 달려가곤 하니까 말이오. 심부름꾼을 대신 보낼 수도 있을 텐데 ….”

 

 

“글쎄요, 글쎄요 ….”

 

비르발은 대제가 힌두교를 더 이상 놀림감으로 삼지 못하게 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황제가 손자를 무척 귀여워하는 것을 보고는 좋은 방법을 떠올렸다. 그는 밀랍 인형을 만드는 장인(匠人)을 찾아갔다.

 

 

“쿠람 황손(皇孫. 황제의 손자/손녀 - 옮긴이)과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들어 주게.”

 

 

그는 그 인형을 가지고 황손을 돌보는 시종에게 갔다.

 

 

시종이 “쿠람 황손님과 정말 똑같네요!”라고 감탄하자, 비르발은 “그렇다네. 황손님과 똑같은 옷을 입히고 장식을 달았지. 자, 이제 이 인형을 안고 폐하의 뜰로 가게. 그리고 연못 옆에 있다가 폐하께서 나오시면 갑자기 미끄러지는 척하면서 인형을 물 속으로 빠뜨려 주게.”라고 말했다. 시종은 “본부대로 합지요, 나리.”라고 대답했다.

 

 

비르발은 서둘러 대제에게로 가서 그를 정원으로 데려왔다. 대제는 정원으로 나오는 순간, 시종이 안고 있던 손자가 연못에 빠지는 광경을 보았다.

 

 

“오, 저런, 무슨 짓인가? 어이쿠, 내 손자!”

 

 

대제는 앞뒤 가릴 겨를도 없이 연못 속으로 뛰어들어 손자를 건졌다. 하지만 곧 그것이 인형이었음을 깨달았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건 인형이었군요.”

 

 

그러자 비르발이 대제에게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하지만 폐하, 시종도 있는데 왜 직접 물 속으로 뛰어드셨는지요?”

 

 

“물론 있지만 짐(朕)의 귀한 손자가 물에 빠졌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건져주길 바라겠소?”

 

 

“폐하, 그와 똑같사옵니다. 크리슈나 님께서도 그분을 믿는 사람들을 매우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 몸소 가시는 것이옵니다.”

 

 

“그렇군, 비르발. 경의 견해가 증명되었구려.”

 

 

* 출처 :『비르발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을 해』(이균형 엮음, 정택영 그림, 정신세계사 펴냄, 서기 2004년)

 

 

* 옮긴이(잉걸)의 말 :

 

 

나는 ‘얼치기 개신교 평신도(이자 “삐딱한 개신교 평신도”)’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기독교식으로 풀어볼 수 있다.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은 “당신의 신(神)이 그렇게 위대하다면 자기가 직접 가서 문제를 풀던가, 아니면 천사나 예언자를 보내지 왜 자기 외아들(예슈아 벤 요셉. 그러니까 그리스도)을 보냈지?”라고 묻는데, 나는 이 우화를 빌려 “나의 신(神)께서는 아크바르 대제가 자신의 손자인 쿠람 황손을 아껴 시종의 도움을 바라지 않고 몸소 물 속으로 뛰어들었듯이, 크리슈나가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귀하게 여겨 시종을 시키지 않고 직접 가서 문제를 풀어주듯이, 자신의 창조물인 인간을 아끼고 사랑하기 때문에 귀한 외아들을 보내 세상과 인간을 구하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겠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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