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나무의 증언

개마두리 2012. 9. 23. 13:36

 

‘단파트’라는 상인이 아내와 함께 성지를 순례하기로 했다. 그는 모아둔 돈을 맡길 자식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가장 가까운 동무(친구를 일컫는 순우리말)인 ‘굴라이’에게 돈을 맡기기로 하고 동무를 만나러 갔다. 마침 그를 찾아가던 길에 굴라이를 만난 단파트는 그에게 돈주머니를 맡기며 “난 1년 뒤에 돌아올 테니, 그때까지 이걸 잘 보관해 주게.”라고 부탁했다.

 

굴라이는 “물론이지, 잘 보관해 놓을 테니 마음 놓고 다녀오게.”라고 대답하며 그의 동무를 안심시켰다.

 

1년 뒤, 순례를 마친 단파트는 굴라이를 만나 돈을 돌려 달라고 했다.

 

“아, 그 돈? 이틀 뒤에 오면 돌려 주겠네.”

 

이틀 뒤, 단파트가 굴라이를 찾아가자 그는 다시 이틀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다.

 

이런 식으로 한 달이 지나자, 굴라이는 자기는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시침을 뚝 뗐다. 어이가 없어진 단파트는 그를 붙잡고 아크바르 대제(大帝)의 궁궐을 찾아가서 슬기로운 심판을 호소했다. 대제는 비르발에게 이 일을 해결하라고 명령했다.

 

비르발은 두 사람을 앞에 세워 두고 심문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굴라이에게 돈주머니를 맡긴 것이 정확히 언제였나?”

 

단파트는 “7월 여드레(8일 - 옮긴이)였습니다.”라고 주저없이 대답했다.

 

“돈을 맡길 때 증인이 있었는가?”

 

“없었습니다. 가던 길에 마침 그를 만났기 때문이지요.”

 

“그를 어디서 만났는가?”

 

“한 과수원을 지나다가 만났습니다.”

 

“어떤 나무 밑인지 기억하는가?”

 

“아, 그렇군요! 키 큰 자문나무(자몽나무? - 옮긴이) 아래였었지요.”

 

“오, 그렇다면 증인이 있구나! 단파트, 지금 당장 그 나무에게 가서 내가 보자고 한다고 전하게.”

 

단파트는 이 이상한 명령에 어이가 없었다. 나무를 증인으로 데려오라고? 하지만 단파트는 비르발의 슬기를 믿었으므로 그가 시키는 대로 길을 떠났다.

 

비르발은 굴라이에게 “그대는 여기 있게.”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한 시간동안 단파트를 기다렸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비르발은 짐짓 역정을 내며 “왜 아직도 돌아오지 않는 거야?”라고 말했고, 비르발이 벌이는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한심하게 여기며 마음을 놓고 있던 굴라이가 무심코 대답했다.

 

“아직 반도 채 못 갔을 걸요? 그 과수원은 여기서 10여 리(里)나 떨어진 곳에 있고 나무는 그 과수원 한복판에 있는 걸요.”

 

비르발은 “아, 그런가?”라고 대꾸했다.

 

단파트는 거의 세 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는데, 그는 더위에 지쳐 있었다.

 

“시키신 대로 자문나무에게 말씀은 전했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나무가 증인이 될 수가 있다는 건가요?”

 

그러자 비르발이 대답했다.

 

“걱정 말게, 단파트. 나무가 이미 증언을 했네.”

 

비르발은 엄한 표정으로 굴라이를 바라보며 꾸짖었다.

 

“이실직고(以實直告. 바른 대로 말하다 - 옮긴이)하라. 너는 단파트를 만난 적조차 없다고 했는데 단파트가 말하는 과수원과 나무가 어디에 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었느냐?”

 

그제야 낯빛이 흙빛으로 변한 굴라이는 땅에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 출처 :『비르발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을 해』(이균형 엮음, 정택영 그림, 정신세계사 펴냄, 서기 2004년)

 

* 옮긴이(잉걸)의 말 :

 

‘별 생각 없이 한 말과 행동’ 때문에 망한 범죄자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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