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자신을 죽인 파디샤

개마두리 2012. 9. 15. 21:18

 

 

이 이야기의 첫머리는 사람들마다 다르게 시작하였다. “어느 나라에 파디샤(‘통치자’라는 뜻)가 살았다.”고도 하고, “옛날 어느 나라에 한 임금이 있었다.”고도 하며, “옛날 어느 나라에 우두머리가 하나 있었다.”고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파디샤니 임금이니 하는 말을 아예 쓰지 않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옛날에 어느 단체가 나라를 통치하고 있었다.”라는 식의 애매모호한 말로 시작을 하기도 했다.

 

이름이 파디샤든 임금이든 우두머리든 단체든, 혹은 또 다른 그 무엇이든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기는 했다. 어느 쪽이 정확한지 따져 봐야 괜한 시간 낭비일 뿐이므로, 우리는 그냥 맨 처음에 나왔던 ‘파디샤’란 말로 이 이야기를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옛날 어느 나라에 아주 교활한 파디샤가 살고 있었다. 그는 꾀가 아주 많은 편이었는데, 결코 궁전 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았다. 좋은 옷과 좋은 음식에 싸인 채 허송세월을 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 나라의 백성들과 어울리며 끊임없이 관계를 맺어 나갔다.

 

그는 틈만 나면 변장을 한 채 백성들 사이로 섞여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지 샅샅이 알아내었다.

 

언제인가부터 그 나라는 경제 사정이 몹시 어려워지고 있었다. 파디샤가 변장을 한 채 백성들 사이로 들어갈 때마다, 그들은 너나없이 파디샤를 비꼬며 저주했다. 그 바람에 파디샤는 시장이나 찻집을 돌아다니다가 자신을 비난하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되었다.

 

“파디샤 같은 놈은 죽여 버려야 해.”

 

“그 따위 파디샤는 없어도 돼.”

 

아까도 말했지만 파디샤는 아주 교활했다. 백성들이 불만을 토로하는 자리에 짐짓 끼어들어서는, 남들보다 더 나서서 파디샤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하루 빨리 죽어 버리면 우리도 해방될 텐데…….”

 

어느 날 파디샤는 또 변장을 하고 도시에 있는 어느 찻집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도 역시 사람들은 파디샤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아니, 파디샤에게 왜 그렇게 화를 냅니까?”

 

그 곳에 있던 사람들 중 한 명이 소리쳤다.

 

“당신은 화가 안 난단 말이오? 사람들이 직장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소. 이 나라에서 일거리를 찾지 못해 다른 나라로 일을 하러 가고 있단 말이오. 다른 나라의 하인이 되는 거지. 다른 나라에 일거리가 많다면 모두들 이 곳을 버리고 떠날 것이오. 그렇게 되면 이 나라에는 노인과 환자, 어린이들만 남게 되겠지.”

 

그 곳에 있던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모든 게 너무 비싸. 갈수록 살기가 어려워지고 있어. 물가는 날마다 올라가고 있고.”

 

뒤를 이어 쉴 새 없이 불평이 이어졌다.

 

“너도 나도 뇌물을 주고받지. 뇌물 없이는 아무 일도 성사되지 않아.”

 

“빽이 없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어.”

 

“화폐의 가치는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있지.”

 

“모두들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어.”

 

“물은 어떻고! 일 주일, 아니 열흘씩 수도꼭지에서 물 한 방울 안 나오는 날도 많아졌어. 모두들 미칠 지경이라구.”

 

“전기도 자주 끊어지고 …… 몇 시간이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작업대에 기계를 세워 둘 때가 많아. 이런 상황인데도 파디샤는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우리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있잖아.”

 

“말하면 끝이 없지. 가스도 안 들어오고 …. 프로판 가스조차 구하기 힘들어. 설사 구한다 해도 불이 붙여지지 않고, 어쩌다 불이 붙는 것은 금세 터져 버리기 일쑤고 …….”

 

“집세는 또 어떻고.”

 

그들은 통치권의 악행을 끝없이 나열했다. 변장을 하고 있던 파디샤는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하도록 일부러 자기 자신을 더 신랄하게 저주하기 시작했다.

 

“그런 파디샤는 없는 게 더 낫지!”

 

파디샤가 스스로 이렇게 저주를 퍼붓자, 백성들은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며칠 뒤, 파디샤는 또다시 변장을 한 채 백성들 사이로 들어갔다. 백성들은 이러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큰일이 나고 말 거야.”

 

“이렇게 간다면 끝이 아주 나쁠 것 같아.”

 

“방책을 찾아야 해.”

 

“그렇다면 해결책을 찾자고.”

 

얼마 후, 파디샤는 또 변장을 하고서 궁전에서 몰래 나와 백성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는 어느 여관으로 갔다. 그 여관에서는 청년들이 모여서 해결 방안을 찾기 위해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파디샤는 진작에 그 여관의 주인을 돈으로 매수해 놓았다. 여관의 주인은 자신에게 돈을 준 사람이 파디샤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른 채, 그 곳에 모여 있는 청년들에게 그를 소개해 주었다.

 

그렇게 해서 파디샤는 청년들의 모임에 동참하였다. 청년들은 파디샤에게 또다시 욕설을 퍼부었다. 파디샤는 그들보다 더 심하게 자신을 비판하였다. 청년들이 파디샤의 악행에 대해 한 마디를 하면 파디샤는 열 마디를 했다. 그리하여 그는 곧 청년들의 신임을 얻었다.

 

파디샤가 그들에게 말했다.

 

“동지들, 여러분의 말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소이다. 하지만 말로만 해서 무엇에 쓰겠소? 말은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것이오. 작전을 세웁시다.”

 

그러자 청년들이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그 몹쓸 파디샤를 타도하기 위해 비밀 결사대를 조직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 곳에 모여 있던 청년들 - 즉 노동자, 학생, 교사들은 이 제안이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파디샤를 타도하기 위한 비밀 결사대를 조직하였다.

 

그들 중 파디샤를 가장 심하게 비판한 사람, 즉 변장한 파디샤가 그 비밀 결사대의 대장으로 뽑혔다. 결국 파디샤는 자기 자신을 무너뜨려야 하는 입장에 놓인 셈이었다.

 

그가 청년들에게 말했다.

 

“결사대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합니다. 일단 은행을 턴 다음, 부자들의 돈을 강제로 뺏읍시다.”

 

청년들은 결사 대장의 명령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은행을 털고, 부자들을 납치해 돈을 강제로 빼앗았다. 파디샤는 결사대 내부에 인간의 탈을 쓴 개와 스파이를 잠입시켰다.

 

그 때문에 결사대의 어떤 대원이 언제 어느 은행을 털 것인지, 또 언제 어떤 부자를 납치할 것인지를 그 누구보다 먼저 알게 되었다. 이렇게 정보가 미리 새 버렸으므로 청년들은 범행 현장에서 곧바로 체포돼 버리곤 했다.

 

백성들은 사회 질서를 파괴하는 이 강도들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파디샤를 향한 분노가 이제는 노동자와 학생, 교사들로 구성된 결사 대원들에게로 향하게 된 것이었다.

 

파디샤는 백성들의 미움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 즉 그들의 적의를 다른 사람들에게로 돌려놓기 위해 끊임없이 궁리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는 결사 대원들을 불러모은 뒤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해 갖고는 저 매국노 파디샤를 폐위시킬 수 없을 것 같소.”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다짐을 한 결사 대원들이 파디샤에게 물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합니까?”

 

“도시를 파괴해야 합니다. 건물들을 부수고 불을 지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일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잡아서 모조리 죽여야 합니다!”

 

젊은 대원 몇몇이 이 의견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지만, 결사대에 잠입해 있던 파디샤의 스파이들이 흐지부지되게 만들어 버렸다.

 

결사 대원들은 이제 건물들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이기까지 하였다. 백성들은 이제 파디샤에 대한 분노를 잊고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결사 대원들에게 화를 내고 원망을 퍼부었다. 그렇다고 해서 파디샤에 대한 분노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은 아니다.

 

한편 궁전으로 돌아간 파디샤는 자신의 부하들에게 진짜 파디샤로서의 명령을 내렸다.

 

“이 나라를 혼란에 빠뜨린 자들은 모두 잡아들여 없애라!”

 

하지만 비밀 결사대의 대장이 되었을 때는 청년들에게 더욱더 많은 혼란을 불러일으키라고 선동하였다.

 

어느 날 파디샤는 결사 대원들과의 회의에 참석하여 이렇게 말했다.

 

“동지들, 이젠 파디샤를 죽이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소!”

 

그러자 결사 대원들 중의 한 명이 말했다.

 

“파디샤에게는 경호하는 군인들이 있습니다. 궁전에 무사히 잠입하려면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 일은 내게 맡겨 주시오. 파디샤를 죽일 사람들이 몰래 궁전 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보겠소.”

 

결사 대원들이 파디샤를 죽일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파디샤는 그 나라에서 제일 유명한 조각가를 불러 양초(‘밀랍’을 잘못 옮긴 게 아닌가 한다 - 옮긴이)로 자신의 인형을 만들라고 지시하였다.

 

양초로 만든 인형은 파디샤와 아주 흡사했다. 양초로 된 인형에게 진주로 장식된 파디샤의 옷을 입히고, 머리에는 파디샤의 관을 씌웠다. 그런 다음 양초로 만든 파디샤를 진짜 파디샤처럼 보이도록 구석구석 꼼꼼하게 치장을 하였다. 파디샤는 양초로 된 인형을 왕좌에 앉힌 다음, 그 속에다 닭의 피를 가득 채워 넣었다.

 

그러고 나서 파디샤는 자신을 죽이기 위해 궁전으로 들어올 비밀 결사 대원들이 지나갈 길에 서 있던 경비병들을 철수시켰다. 이제 궁전의 정원과 길목은 모두 비게 되었다.

 

그는 다시 파디샤를 죽일 비밀 결사 대원의 행동 대장이 되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자, 동지들! 매국노 파디샤를 죽입시다!”

 

그들은 궁전의 정원으로 몰래 숨어들었다. 아무도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이윽고 파디샤가 머무는 방문을 열자, 왕좌에 앉아 있는 파디샤의 모습이 보였다.

 

그 때 행동 대장 역할을 하고 있던 파디샤가, 왕좌에 앉아있는 양초 파디샤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매국노! 이 나쁜 놈!”

 

그리고는 양초로 만든 파디샤에게로 다가가 칼을 빼들었다. (그가 - 옮긴이) 목을 향해 칼을 휘두르자, 순식간에 머리가 목에서 잘려 나갔다. 곧 이어 양초로 만든 파디샤의 몸 안에 들어 있던 닭의 피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며 양탄자 위로 번져 나갔다. 결사 대원들은 그 광경을 보고 환호성을 내질렀다.

 

“우리는 해방되었다! 해방되었다!”

 

결사 대원들은 비어 있는 왕좌에 비밀 결사대의 대장을 앉힌 후 파디샤로 추대하였다. 이렇게 해서 파디샤는 자기 자신을 죽이고, 그 빈 왕좌에 앉게 되었다. 도시로 흩어진 결사 대원들은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나쁜 파디샤로부터 해방되었다! 이제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질서가 잡힐 것이다!”

 

백성들의 적이었던 파디샤는 다시 그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거의 모든 나라의 역사에서 한 번쯤 언급되고 있다. 역사책은 이 이야기에서 얻은 교훈을 이렇게 적고 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되도록 하라. 옛것을 대신하려 하는 새로운 것의 정체를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억지로 바꾸려 들지 말라!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의 정체가 실제로는 겉모습만 살짝 바꾼 옛것일 수도 있다. 그것에 속으면 모든 것이 옛날보다 더 나쁘게 될지도 모른다.

 

- 아지즈 네신의 우화(서기 1985년에 발표됨)

 

* 출처 :『당나귀는 당나귀답게』(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주) 도서출판 푸른숲’ 펴냄, 서기 2005년)

 

* 아지즈 네신 : 튀르키예(터키의 정식 국호. ‘터키’는 영국식 이름임)의 작가. 사회를 풍자한 소설로 이름을 날렸다. 서기 1915년에 태어나 서기 1995년에 세상을 떠났다.

 

* 옮긴이(잉걸)의 말 :

 

이 이야기에 나오는 파디샤를 ‘박근혜 의원’으로, 밀랍 파디샤(이자 백성들에게 욕을 먹는 파디샤)를 ‘이명박 대통령’으로, 진짜 파디샤가 가짜 파디샤를 욕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을 박 의원의 이 대통령 떨쳐 버리기(어떤 이는 ‘도마뱀 꼬리 자르기’로 부름)로 바꿔서 읽어보라.

 

그리고 파디샤의 백성들이 파디샤를 깨끗이 잊고 당장 자기 귀에 들리는 강도들의 소식만 가지고 화를 내는 꼴을 정치권과 재벌과 수구세력의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자극적인 범죄의 결과만 놓고 욕을 퍼붓는 한국 군중들의 모습과 견주어보라. 소름끼칠 정도로 잘 맞아떨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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