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엉터리 수행자

개마두리 2012. 10. 7. 11:30

 

 

한 늙은 홀어미(순우리말로 ‘[남편을 잃고] 홀로 된 어미’라는 뜻. ‘미망인未亡人’이라는 말은 ‘[아직 남편을 따라서]죽지 않은 사람’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올바른 말이 아니다 - 옮긴이)가 비르발을 찾아와서 도움을 청했다.

 

 

“나리, 사기를 당했습니다. 도와 주십시오.”

 

 

그는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는 여섯 달 동안 성지를 순례하기로 했는데, 자신이 모은 돈을 숨겨둘 데가 없어서 궁리하던 끝에 마을 밖에 사는 한 탁발 수행자를 찾아갔다. 그는 맨 땅바닥 위에 벽과 지붕만 두른 간소한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다.

 

 

“이게 제가 지닌 유일한 재산입니다. 성자님께 맡겨 놓으면 안전할 것 같아서요.”

 

 

“죄송하지만 저는 세속적인 일에는 관심을 둘 수가 없을뿐더러 돈을 만지지도 않습니다. 저쪽 구석 아무 데나 구덩이를 파서 돈주머니를 묻어두시구려.”

 

 

그래서 홀어미는 수행자의 오두막 한구석 땅바닥에 작은 구덩이를 파고 돈주머니를 묻었다.

 

 

홀어미는 순례에서 돌아오자마자 수행자를 찾아갔다. 그러자 수행자는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파묻어 둔 데를 안다면 찾아가세요. 하지만 저한테는 제발 돈 이야기를 하지 마세요. 전 그런 이야기는 듣기도 싫어요.”

 

 

홀어미는 돈을 묻어 두었던 구석으로 가 봤지만 그 자리에는 돈이 없었다.

 

 

“성자님, 제발 … 제 돈이 어디 있지요?”

 

 

“그만 가 보세요. 저를 그런 세속적인 일로 성가시게 하지 마세요!”

 

 

“하지만 바로 여섯 달 전, 성자님이 계실 때 저기다 묻어 두었는데요?”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 그런 세속적인 일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요. 제 마음과 귀와 눈은 오직 ‘라마’ 신(神) [힌두교의 여러 신들 가운데 하나 - 옮긴이]께만 몰두해요! 아시겠어요?”

 

 

 

… “그래서 할 수 없이 돌아왔답니다. 어쩌겠어요?”

 

 

“그 수행자가 돈을 훔친 것이 확실한가요?”

 

 

“확실해요. 하지만 증거가 없어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비르발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홀어미에게 계책을 자세히 일러 주었다. 그들은 곧 수행자의 오두막을 찾아갔다.

 

 

“이 나무 뒤에 숨어 있다가 제가 두 번째로 그의 발 밑에 엎드릴 때 들어오셔야 합니다. 더 빨리 들어오셔도, 더 늦게 들어오셔도 안 돼요.”

 

 

“나리, 알겠습니다. 그대로 하겠습니다.”

 

 

비르발은 보석상자를 들고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서 수행자의 발밑에 엎드려 절했다.

 

 

“스승님, 저를 축복해 주십시오. 스승님의 높은 영성(靈性. 영적인 성향 - 옮긴이)을 찬양하는 말들을 많이 들었는데 오늘 드디어 스승님의 축복을 받는 행운이 찾아왔군요.”

 

 

하지만 이 엉터리 수행자는 비르발이 들고 온 보석상자에만 관심을 기울였다.

 

 

‘저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황금? 보석?’

 

 

“성자님, 우리 어리석은 속인(俗人. 세속世俗,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사는 사람 - 옮긴이)들의 문제로 성자님을 성가시게 하기는 정말 싫지만 ….”

 

 

“젊은이, 괜찮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도와주지.”

 

 

“아니, 아닙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신(神)의 아드님이신데 어찌 세속적인 문젯거리로 선생님을 괴롭힐 수가 ….”

 

 

수행자는 비르발이 머뭇거리자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아니, 설마 상자를 가지고 돌아가려는 건 아니겠지?’

 

 

그때 비르발이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 사악한 세상에서 다른 누구를 믿을 수 있겠습니까? 부디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수행자는 ‘이 자가 주저하고 있구만. 내가 얼른 손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젊은이, 자네 집을 내려놓게. 내가 도와주겠네. 그리고 그것이 내 의무라네.”

 

 

“오, 성자님. 저는 아우(동생)를 만나러 아즈메르로 가야만 합니다 … 성자님께 이 귀한 보석을 맡겨두고 가도 될런지요?”

 

 

비르발은 보석이 가득 든 상자를 열어 보였다. 수행자는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오, 저 값진 보석들! 과연 내 생각대로군.’

 

 

“젊은이, 재물에 대한 생각은 나에게 혐오감을 주지만 어쩔 수가 없구먼. 이미 약속을 했으니까 … 신의 아들은 약속을 어길 수가 없다네. 하지만 나는 재물을 만지지 않으니까 자네가 이쪽 구석에다 그 상자를 묻어 두게. 거긴 절대적으로 안전한 곳이니까.”

 

 

“성자님은 너무나 친절하십니다. 이 은혜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비르발은 수행자의 발 밑에 두 번째로 엎드려 절했다. 나무 뒤에서 지켜보며 기다리던 홀어미는 이 광경을 보고는 얼른 오두막으로 들어왔다. 수행자는 그가 들어오자 당황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하필이면 이 늙은이가 이때 올 건 뭐람. 돈을 내놓으라고 소리지르면 어떡하지? 동전 한 주머니 때문에 내가 저 보물을 놓칠 수야 없지? 절대 안 돼!’

 

 

이렇게 생각한 수행자는 낯빛을 바꾸면서 외쳤다.

 

 

“마침 잘 오셨네요! 아주머니가 묻어 두신 돈주머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전날에는 아주머니가 엉뚱한 곳을 찾으셨더라고요. 묻어뒀던 자리를 잊어버리신 게 틀림없어요. 저쪽 구석을 파 보시지 그래요?”

 

 

노파는 그가 가리킨 곳을 파서 돈주머니를 찾아냈다.

 

 

“그렇군요, 성자님. 저쪽 구석이었어요.”

 

 

엉터리 수행자는 노파가 떠나자 비르발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리석은 늙은이! 한 곳에 묻어 두고는 다른 곳에서 찾다니! 돈이 근심을 불러일으킨다네. 그리고 근심은 기억력을 빼앗아가지. 그래서 결국은 삶의 균형을 잃게 되고. 글쎄 이 노파는 심지어 내가 그 돈을 훔쳐갔다고 누명까지 씌우지 않았겠나! 그러니 젊은이, 그 상자를 어디든지 묻어 두되 위치만 잘 기억해 두게나. 난 그런 자잘한 세속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바로 그때 시종이 비르발을 찾아왔다.

 

 

“나리, 아우님이 나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지금 당장 나리를 뵙고자 합니다.”

 

 

“아니, 그래? 그것 참 잘 됐군. 그럼 난 아즈메르로 갈 필요가 없겠구만. 하지만 성자님, 성자님의 친절에 감사드립니다.”

 

 

비르발은 완전히 넋이 빠져버린 엉터리 수행자를 남겨둔 채 보물상자를 가지고 돌아갔다.

 

 

* 출처 :『비르발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을 해』(이균형 엮음, 정택영 그림, 정신세계사 펴냄, 서기 200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