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쓸모없는 소년과 독실한 신앙인 여든 명

개마두리 2012. 11. 2. 21:39

 

 

아주 오래된 책에 ‘호르무즈’라는 나라에 ‘나흐로드’라는 사람이 살았다고 적혀 있다. 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이 소년은 채 (어른으로 - 인용자) 성장하기도 전에 아주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특히 재미를 붙인 것은 주사위놀이(노름의 일종 - 인용자)였는데, 그는 이 놀이에 거의 미친듯이 빠져 있었다. 걱정이 된 아버지는 아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려고 여러 모로 애를 썼으나 어떤 것으로도 아들을 바꿀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동무(친구를 일컫는 순우리말 - 인용자)가 나흐로드에게 제안했다.

 

“여보게, 내가 조언을 해줄 터이니 들어보겠나? 자네도 알겠지만 이 도시는 자네 아들에게 나쁜 영향만 끼치네. 그대로 두었다가는 점점 더 나빠질 테니, 자네 아들을 좋은 쪽으로 이끌고 싶거든 내 말을 듣게나. 여기서 조금 떨어진 시골에 독실한 신앙인 여든 명이 살고 있는데, 그들은 이 도시의 나쁜 면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순수한 사람들이라네. 그들이 자네 아들을 가두어놓고 여든 날 동안 가르친다면 틀림없이 바뀌리라고 생각하는데. 어떤가, 한번 해 보지 않겠나?”

 

나흐로드는 이 제안이 썩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독실한 신앙인 여든 명을 도시로 불러 후한 보상을 약속하고 아들과 함께 집안에 가둔 뒤 먹을 것을 줄 때를 빼고는 문을 잠가두었다.

 

그렇게 여든 날이 지났다. 기대감으로 문을 연 나흐로드는 방 안을 들여다보고는 경악했다. 독실한 신앙인 여든 명이 소년과 함께 주사위놀이에 열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출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채운정 옮김, 정신세계사 펴냄, 서기 1998년)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원제는『투티 나메』, 그러니까『앵무새 책』이라는 뜻이다. 지은이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앵무새 한 마리가 황제 앞에서 하룻밤 동안 일흔 편의 이야기를 하는 내용이다.

 

▶ 인용자(잉걸)의 말 :

 

물에 독약 한 방울이 들어가면 온 물이 독극물이 되지만, 한 종지에 담긴 독약을 덜 위험하게 만들려면 물을 3리터는 넘게 섞어야 하며 거르개(거르는 장치. ‘필터Filter’의 순우리말)로 여러 번 걸러야 한다. 마찬가지로 착한 사람은 조금만 흔들거나 나쁜 것을 가르쳐도 금새 나쁜 놈이 되지만, 나쁜 놈은 가둬놓고 여러 해 동안 설득하거나 충고해도 착한 사람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늘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자신이 지닌 착함이 사라져 버릴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