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높이 뛰어오르는 생쥐 제레미 이야기 - (2)편

개마두리 2013. 4. 18. 21:31

5. 강가에서의 날들

 

멀리 생쥐 마을이 보였습니다. 아마 한참을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왔던 모양입니다.

 

여전히 멀리서 들려오는 그 신비한 소리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며 잠시 숨을 돌리고 있을 때, 누군가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안녕, 꼬마 형제!”

 

제레미는 깜짝 놀라 하마터면 자리에서 뒤집어질 뻔 했습니다.

 

“안녕.”

 

하고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는데 무척이나 상냥한 목소리였습니다.

 

“누구야?”

 

잔뜩 겁을 먹은 불쌍한 작은 생쥐 제레미가 물었습니다.

 

“나야, 너구리. 그런데 너 혼자니?”

 

그건 바로 친절한 눈을 가진 너구리였습니다.

 

“여기서 혼자 뭐 하고 있는 거니?”

 

제레미는 순간 당황했습니다. 그는 누구에게도 이 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특히 생쥐 마을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해 보면 말입니다.

 

“사실은 어떤 신비한 소리를 들었어.”

 

제레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습니다.

 

“뭔가 커다랗고 힘찬 소리야. 그래서 그게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해.”

 

“커다랗고 힘찬 소리라고? 아아, 그건 강(江)이야.”

 

너구리는 제레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신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리 와, 나랑 함께 가자. 내가 강으로 데려다 줄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제레미는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마을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 소리를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소리의 원천을 알고 있는 이를 만나다니! 제레미는 이 소리가 대체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내고야 말겠다고 굳게 결심했습니다.

 

‘강이라는 것에 대해서 알고 나면, 다시 생쥐 마을로 돌아가 다른 생쥐들처럼 바쁘게 살 테야.’ 제레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래, 너구리한테 나랑 같이 생쥐 마을에 가자고 말해보자. 내 말을 믿지 않던 마을 생쥐들도 너구리의 말이라면 믿어 주겠지.’

 

작은 생쥐 제레미는 길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너구리 옆에 바짝 붙어 걷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이렇게 흥분되는 감정은 생전 처음이어서 가슴이 콩닥거렸습니다.

 

얼마나 걸었을까? 너구리와 제레미가 삼나무와 솔방울 냄새가 가득한 커다란 소나무 숲을 지날 때쯤, 강에 가까이 왔는지, 그 소리는 점점 더 크게 들렸습니다.

 

순간 제레미는 무언가 중대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엷은 안개가 뿌옇게 시야를 가렸습니다.

 

그러자 다음 순간 갑자기, 눈앞에 강이 나타난 것이 아니겠어요! 거대하고 힘찬 강물의 소리! 너무 커다란 강이라서 아무리 고개를 들어 건너편을 보려고 해도 보이지가 않았습니다.

 

세상은 이제 모두 강물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디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를 강물은 격렬한 소리를 내며 미지의 장소를 향해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저 … 정말 힘차게 흐르는구나.”

 

작은 생쥐 제레미가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그래, 강이란 정말 대단해.”

 

너구리가 대답했습니다.

 

“그럼 여기 친구를 하나 소개해 줄게.”

 

얕은 강기슭에 수련 잎 하나가 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밝은 초록색 줄기 위에 하얗게 배 부분이 두드러져 보이는 초록색의 청개구리 한 마리가 앉아 있었습니다.

 

“안녕, 형제.”

 

개구리가 먼저 말을 걸어왔습니다.

 

“강에 온 걸 환영해.”

 

“그럼 난 이만 가봐야겠어.”

 

너구리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무서워할 필요는 없어. 이제부터는 개구리가 널 보살펴 줄 거야.”

 

6. 개구리를 만난 제레미

 

“넌 누구니?”

 

제레미가 다시 한 번 물었습니다.

 

“개구리라니까.”

 

“개구리?”

 

제레미가 의아한 듯 고개를 까닥거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제까지 개구리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거친 강물 위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거지?”

 

“아주 간단해.”

 

작은 개구리가 대답했습니다.

 

“난 물과 뭍 양쪽에서 살 수 있거든. 난 물의 수호자야.”

 

그 말에 제레미는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뭔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제레미는 물의 수호자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으니까요.

 

개구리가 다시 말했습니다.

 

“작은 생쥐 친구, 신비한 힘을 빌리고 싶니?”

 

“신비한 힘? 내가 말야? 응, 물론이야. 어떻게 하면 되는데?”

 

“어렵지 않아. 그저 바닥에 낮게 웅크렸다가 힘껏 높이 뛰어오르면 돼.”

 

“그게 다야?”

 

“응. 될 수 있는 한 낮게 엎드렸다가 최대한 높이 뛰어오를 것! 그러면 넌 신비한 힘을 얻게 될 거야!”

 

작은 생쥐 제레미는 개구리가 말한 대로 그런 동작을 되풀이 했습니다. 최대한 몸을 낮췄다가 될 수 있는 한 높이 뛰어오르는 연습을 반복했습니다.

 

그러자 힘차게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강보다 더욱 놀라운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강물 뒤로 신성하게 솟아 있는 산(山)이었습니다.

 

제레미가 얼마나 오랫동안 그 신성한 산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한 순간은 시간의 영역 너머에 있기 때문입니다.

 

7. 날 속였어! 그러나 산을 보았어

 

하지만 생쥐 제레미에게는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작은 생쥐 제레미는 단단하고 익숙한 땅이 아니라 이제는 물속에 뛰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제레미를 비롯하여 모든 생쥐는 그다지 헤엄을 잘 치지 못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지요.

 

처음 제레미는 물속에 뛰어드는 순간 덜컥 겁이 났습니다. 그는 다리를 격렬하게 내저으며 머리를 물 위에 내밀고 어떻게든 숨을 쉬려고 버둥거렸습니다. 정말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한참 후에야, 마침내 제레미는 강가로 헤엄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날 속였어, 네가 날 속였어!”

 

생쥐 제레미는 분한 목소리로 개구리에게 소리쳤습니다.

 

제레미는 다시 한 번 소리쳤습니다.

 

“날 속였어!”

 

하지만 개구리는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기다려 봐. 그렇다고 해를 입지도 않았잖아. 넌 신성한 산을 보았어, 그렇지? 이제 분노와 두려움을 모두 떨쳐버려. 그것들은 네 눈을 흐리게 만들어. 중요한 건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는 거야. 안 그래? 넌 뭘 보았지?”

 

작은 생쥐 제레미는 아직도 차가운 물의 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아 추위에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금 전에 겪은 두려움에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습니다.

 

“신 … 신성한 산을 봤어.”

 

“그럼 넌 더 이상 조그만 생쥐가 아냐. 새로운 이름을 받으렴. 넌 지금부터 높이 뛰어오르는 생쥐 제레미야.”

 

“아 ~ 고마워.”

 

높이 뛰어오르는 생쥐 제레미는 놀라면서 엉겁결에 대답했습니다.

 

“고마워, 정말 고마워.”

 

8. 다시 생쥐마을로 가는 제레미

 

“돌아가서 마을 친구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주어야겠어.”

 

제레미는 자신이 겪은 일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물론 그들도 제레미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높이 뛰어오르는 생쥐 제레미는 한껏 흥분해서 생쥐 마을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나를 보면 다른 생쥐들도 모두 기뻐할 거야. 그리고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겠지. 어쩌면 나를 위해 커다란 축제를 열어줄지도 몰라.’

 

높이 뛰어오르는 생쥐 제레미는 아직도 물에 흠뻑 젖은 채로 추위를 이겨가며 간신히 생쥐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생쥐 마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또한 다른 생쥐들은 아무도 젖어있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생쥐 마을에서는 높이 뛰어오르는 생쥐 제레미가 왜 물에 젖어 있는지 열띤 토론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떤 끔찍한 괴물이 그를 삼켰다가 다시 뱉어낸 게 아닐까? 그렇다면 이 생쥐는 뭔가 아주 크게 잘못되어 있을 거야!

 

그런 두려움이 온 마을을 휩쓸기 시작했습니다. 한 번 생쥐 마을을 떠난 생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누가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그러자 마을 생쥐들은 높이 뛰어오르는 생쥐 제레미에게 아무도 가까이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렁찬 강물과 신성한 산을 쳐다본 높이 뛰어오르는 생쥐 제레미의 이야기를 듣는 생쥐는 결국 아무도 없었습니다.

 

생쥐 마을에 사는 어떤 생쥐도 높이 뛰어오르는 생쥐 제레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결코 신성한 산의 모습을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