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위대한 똥파리

개마두리 2013. 6. 9. 22:27

 

 

고층 건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어느 대도시의 한켠에 다세대 주택이 한 채 있었다. 건물의 가장 아래층은 반(半)지하여서, 햇빛이 아주 조금씩밖에 들지 않았다.

 

 

좁은 골목에 양쪽으로 늘어서 있는 많은 고층 건물들이 이 반지하의 집에 햇빛이 들어가는 것을 막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집은 아침엔 햇살이 늦게 들어오고, 밤에는 어둠이 아주 빨리 깔리곤 하였다.

 

 

반지하 집에는 아빠와 엄마, 그리고 아들, 이렇게 세 식구가 살고 있었다. 아빠와 엄마는 직장에 다녔고, 아들은 얼마 전에 중학교에 입학했다.

 

 

그 사건이 일어났던 날은 아빠와 엄마가 직장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저녁 무렵이었다. 중학생인 아들은 학교에서 돌아온 뒤 책상 앞에 앉아서 얼마간 공부를 하였다. 그러다 공부하던 책을 책상 위에 그대로 펼쳐 놓은 채 친구들과 놀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파리들만이 있었다. 해가 떨어지기 직전이라 바깥은 아직 밝았지만 집 안은 이미 어두워지고 있었다.

 

 

파리는 어둠 속에서는 날지를 못했다. 그래서 집 안에 전등이 켜지든가 날이 밝아오든가 할 때까지, 있던 자리에서 그대로 꼼짝 않은 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어두워지는 집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아, 한 마리 있었다. 젊은 파리 한 마리가 있었다. 밝은 곳으로 나가기 위해 쉬지 않고 날갯짓을 계속하는 젊은 파리 ……. 아까부터 그 젊은 파리는 계속해서 유리창에 몸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는 유리창 저편으로 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유리창 너머는 아직 밝기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유리창에 부딪치면서도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시도를 하였다. 의욕도 넘치고 힘도 넘치는 파리였다. 그는 어떻게 하면 밝은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지 그것만 궁리하였다.

 

 

다른 파리들은 나이와 경험이 많을뿐더러 학식까지 풍부했다. 그들은 유리창에 헛되이 부딪치는 젊은 파리에게 진심어린 충고를 했다.

 

 

“쓸데없는 짓하지 마라. 나갈 수 없으니까.”

 

 

젊은 파리가 대답했다.

 

 

“하지만 전 이 어두운 곳에 갇혀 있을 수 없어요. 보세요, 밖은 아직 환하잖아요. 저는 밝은 곳으로 가고 싶어요.”

 

 

늙은 파리들 중 한 마리가 말했다.

 

 

“네가 지금 자꾸 부딪치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겠느냐? 그건 유리라고 하는 거란다. 유리는 투명해서 이쪽에서 저쪽을 볼 수 있지. 이쪽에서 저쪽이 보이기 때문에 너 같은 젊은 파리들은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부딪치는 거란다.”

 

 

젊은 파리가 대답했다.

 

 

“옛날에는 유리가 뭔지 몰랐어요. 하지만 머리와 날개를 계속 부딪치면서 이제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저도 알게 되었어요.”

 

 

젊은 파리는 말을 마친 뒤, 어두컴컴해진 집 안의 공중에서 몇 번인가 원을 그리고는 전보다 더 속력을 내어 날아갔다.

 

 

늙은 파리들 중 한 마리가 다시 그에게 말했다.

 

 

“유리가 무엇인지 안다면서 왜 그렇게 계속 부딪치고 있는 것이냐? 네가 어떤 짓을 해도 유리를 뚫고 나갈 수는 없을 게다. 쓸데없이 애쓰지 말거라, 다친다.”

 

 

다른 파리들도 젊은 파리에게 유리는 뚫을 수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려 애썼다.

 

 

“너 자신이 불쌍하지도 않니? 계속해서 부딪치다간 너만 다칠 뿐이야. 그러지 말고 너도 우리처럼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서 아침이 올 때까지 기다리렴.”

 

 

하지만 젊은 파리는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바깥은 아직도 환하잖아요. 전 이 어둠 속에 마냥 머물러 있을 수 없어요.”

 

 

늙은 파리가 다시 말했다.

 

 

“곧 사방이 어두워질 게다. 밤이 오고 있으니까. 그러면 누구나 어둠 속에 있게 되는 거야.”

 

 

젊은 파리가 대답했다.

 

 

“저도 알아요. 차라리 밤이 와서 사방이 어두워지면 다른 희망이 남지 않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바깥이 환하잖아요.”

 

 

젊은 파리는 말을 마치자마자 또다시 빠른 속도로 날아가 유리창에 몸을 부딪쳤다. 백 번째 시도였다. 아니, 어쩌면 백 번째가 훨씬 넘는지도 몰랐다. 그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늙은 파리 한 마리가 젊은 파리에게 말했다.

 

 

“네가 불쌍하구나. 얘야, 유리를 통과하지 못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그렇게 자꾸 몸을 부딪치는 거냐?”

 

 

그 저돌적인 젊은 파리가 말했다.

 

 

“하지만 희망이 있잖아요. 저의 이 시도는 희망을 나타내는 거예요. 밖이 환한 이상 희망을 버릴 수 없어요.”

 

 

“하지만 너는 절대로 유리 저편으로 통과할 수 없어. 그건 불가능한 일이니까.”

 

 

“알아요, 통과하지 못한다는 거. 하지만 알 수 없잖아요. 이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는 통과하게 될지도 ……. 만약 제가 통과한다면요?”

 

 

늙은 파리는 화가 잔뜩 나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 바보야, 통과할 수 없다니까!”

 

 

그러자 젊은 파리가 물었다.

 

 

“그렇다면 빛은 어떻게 유리를 통과하지요?”

 

 

늙은 파리가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런 엉뚱한 놈! 넌 파리야. 빛이 아니란 말이야! 혹시 네가 빛이라고 착각하는 것 아니냐? 이 멍청한 놈!”

 

 

그러자 다른 파리들도 한마디씩 거들며 잘난 척을 하였다.

 

 

“빛은 유리를 통과하지. 하지만 소리는 유리를 절대로 통과하지 못해.”

 

 

그래도 젊은 파리는 꿋꿋했다.

 

 

“어쩔 수 없지요, 뭐. 하지만 전 밝은 곳으로 나가려는 시도를 계속할 거예요.”

 

 

이렇게 말한 후, 다시 공중으로 날아올라 유리창으로 돌진했다. 이번에는 너무나 빠른 속도로 부딪쳤기 때문에 그 충돌의 여파가 매우 컸다. 젊은 파리는 힘없이 창문턱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가느다란 다리로 몸을 어루만진 뒤 날개를 곧게 폈다.

 

 

잠시 후, 젊은 파리는 다시 날아서 빠른 속도로 유리창에 부딪쳤다. 늙은 파리가 근엄하게 말했다.

 

 

“이건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다. 넌 밖으로 절대 나갈 수 없어! 쓸데없는 짓하지 마라. 다친다, 다쳐!”

 

 

그러자 젊은 파리가 화를 내며 말했다.

 

 

“아니, 그럼 여러분은 밝은 세상으로 나가려 애쓰지도 않고 여기 앉아서 뭘 하시는 건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잖아요! 그냥 그렇게 앉아서 시간만 죽이고 있으시면 되나요? 전 여러분처럼 시간만 죽일 순 없어요. 최소한 탈출구를 찾기 위해 희망을 갖고 노력은 해야지요. 제가 하는 일이 죽치고 앉아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발 제 일에 간섭하지 마세요.”

 

 

늙은 파리들은 체념하였다. 말귀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이 고집불통에게 더 이상 충고를 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 고집쟁이 젊은 파리는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해도 말릴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들 중 누군가는 젊은 파리가 바보라고 생각했고, 또 누군가는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딱딱한 유리창에 계속해서 부딪치든 말든 내버려둘 작정이었다.

 

 

어차피 잠시 후면 밖은 어두워질 것이고, 젊은 파리도 자리를 잡고 앉아 아침이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다음날 다시 날기 위해서 …….

 

 

저돌적이며 희망에 찬 파리는 쉬지 않고 유리 저편의 밝은 곳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지치지도 않았고 절망하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이 집 아들이 조금 전까지 공부를 하고 있던 책상 위에 내려앉았다. 아이가 공부하던 책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 젊은 파리는 배우려고 하는 욕구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글도 읽을 줄 알았다.

 

 

그는 펼쳐진 부분을 읽기 시작했다. 책에는 빛에 관한 설명이 씌어 있었다. 그 내용이 아주 흥미로웠다. 그 페이지에 실린 구절은 이랬다.

 

 

고양이의 꼬리에 깡통을 달아 두면 어떻게 될까? 고양이는 자신의 꼬리에 달려 있는 깡통 소리가 무서워서, 그 소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아주 빨리 달린다. 그러다 유리창에 부딪치고 마는데 ……. 이 때 고양이가 유리창을 깨지 않고 통과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같은 페이지에 이 물음에 대한 답이 나와 있었다.

 

 

고양이가 아주 빠르게 달려야 한다. 그리하여 광속에 도달한다면 유리창을 깨지 않고도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빛은 초당(1초에 - 옮긴이) 30만 킬로미터라는 속도로 (앞으로 - 옮긴이) 가는데, 고양이가 그만큼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이것은 하나의 가설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까 빛의 속도만큼 빠르게 날 수 있다면 유리 저편으로 통과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젊은 파리는 이 흥미로운 지식을 알게 되자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그 시도를 해 보리라고 다짐했다.

 

 

젊은 파리는 비상(飛上. 날아[飛]오름[上] - 옮긴이) 속도를 높이기 위해 뒤쪽으로 멀찍이 물러났다. 그 곳에서 가속도를 붙여 날아오른 뒤 유리창을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역시 유리창 너머로는 통과하지 못했다.

 

 

그러자 속도가 충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더 빠른 속도로 날아가 부딪쳤다. 이렇게 빠르게 날아가 부딪치는 시도를 몇 차례나 되풀이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그는 유리창 위에 납작하게 붙어 버렸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날아가서 부딪쳤기 때문이었다. 피부가 갈기갈기 찢기면서 몸 전체가 짓이겨졌다. 이윽고 피가 유리창 위로 천천히 번져 나갔다. 젊은 파리는 그대로 죽고 말았다.

 

 

집 안에 있던 파리들은 젊은 파리의 시체 주위로 모여 들었다. 그들은 통곡을 하였다. 그 동안 파리가 죽는 것을 수없이 많이 봐 왔지만, 단 한 번도 이렇게 슬퍼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다. 그들에게 젊은 파리의 죽음은 의미가 달랐다.

 

 

파리들은 눈물을 흘리며 젊은 파리의 시체 앞에서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그는 파리들의 선구자다. 우리 모두를 위해 탈출구를 찾으려 노력했다.”

 

 

“그는 희망의 상징이다.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심어 주려고 했어.”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려다 죽은 거야.”

 

 

“너를 절대로 잊지 않겠다.”

 

 

“너는 파리들의 역사에 빛나는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너의 전투 정신은 우리 역사에 황금 글씨로 새겨질 것이다.”

 

 

파리들은 눈물을 흘리며 젊은 파리의 시체 앞에서 경건하게 묵념을 했다. 그 곳에 모여 있던 파리들 중 나이가 가장 많고 학식도 가장 풍부한 파리가 말했다.

 

 

“이 용감한 파리의 주검을 기리기 위해 (주검을 - 옮긴이) 유리 위에 기념비로 남기도록 하자. 밝은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서 목숨을 바친 그의 영혼이 거룩하기 때문이다.”

 

 

다른 파리들도 유리창에 붙어 있는 죽은 파리의 흔적을 기념비로 남기자는 의견에 찬성하였다. 어차피 파리의 주검은 오래지 않아 유리창에 붙은 채로 마를 것이며, 그 자체가 이미 멋진 기념비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가장 나이 많은 파리가 말했다.

 

 

“그는 이 곳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파리들은 영원히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바깥도 어두워졌다. 밤이 온 것이었다. 파리들은 자신들이 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다. 잠시 후, 직장에서 퇴근한 엄마가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집 안에 전등을 켰다. 그리고는 창문의 커튼을 치려고 하다가 유리창에 붙어 있는 파리의 시체를 보았다. 그녀는 걸레로 그 곳을 쓰윽 닦아 내었다. 유리창에 붙어 있던 파리의 시체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늙은 파리가 한 말은 옳았다. 젊은 파리의 기념비는 영원히 남았다. 영원이라는 것은 생물체에 따라 다르다. 나비에게 영원이 세 시간이라면, 사람에게는 삼만 년이고, 파리에게는 몇 시간 동안이기 때문이다.

 

 

기념비로 남은 젊은 파리는 파리들의 역사에 영웅으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어떤 파리는 여전히, 그가 불가능한 시도를 하다가 죽었으므로 바보 혹은 미친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어느 쪽이 맞을까? 파리들은 각자의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이해하기로 결정했다.

 

 

요즘도 저편의 밝은 곳으로 가기 위해 쉼없이 유리창에 부딪치며 애를 쓰는 파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다 목숨을 잃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그런 것을 바보짓이라고 생각하며 어두운 곳에 죽치고 앉아 있는 파리들도 있을 것이다.

 

 

어떤 길을 택할 것인지는 파리들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하지만 진실은 있다. 어둠 속에 죽치고 앉아 있는 파리의 기념비가 세워졌다는 얘기는 파리들의 역사 그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으니까.

 

 

- 튀르키예의 위대한 풍자 작가인 아지즈 네신 선생의 우화.

 

 

* 튀르키예 : 터키(Turkey) 공화국의 정식 국호. ‘터키’는 영어 이름임. 이는 코리아(Korea)로 불리는 나라의 정식 국호가 한국(韓國)인 것과 같다. - 잉걸

 

 

* 출처 :『당나귀는 당나귀답게』(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푸른숲 펴냄, 서기 2005년) -> 이 우화집은 서기 1985년에 튀르키예에서 나왔고, 서기 2005년에 한국어로 번역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