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버리기

개마두리 2013. 10. 19. 19:05

 

 

위대한 학자가 있었다. 그는 거믄(1만을 일컫는 순우리말 : 인용자)명이나 되는 제자들을 거느린 학계의 거목(巨木)이었다. 그는 언제가 제자들에 둘러싸여 있었고, 그의 집에는 수많은 경전들과 귀한 책들이 가득하였다.

 

 

어느 날 깜빡 잠이 든 그는 꿈에 뭔가를 보았는데, 너무 생생해서 꿈 같지가 않았다.

 

 

꿈에 아주 늙고 못생긴 마녀 같은 노파가 나타났는데, 너무도 못생겨서 몸서리가 처졌다. 노파가 기괴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대, 뭘 하고 있소?”

 

 

그가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배우고 있소.”

 

 

노파가 물었다.

 

 

“뭘 배우는 거요?”

 

 

“철학, 종교, 인식론, 어학(語學), 논리학 등등 …….”

 

 

“그대, 그걸 죄다 이해하시오?”

 

 

“……그렇소. 모두 이해합니다만 …….”

 

 

“낱말을 이해한다는 건가, 뜻을 이해한다는 건가?”

 

 

노파의 눈빛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감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완전히 발가벗겨지는 걸 느꼈다.

 

 

“낱말을 이해한다는 겁니다.”

 

 

그러자 갑자기 노파가 춤을 추며 노래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징그럽고 못생긴 노파가 점점 아리따운 모습으로 바뀌어가는 거였다.

 

 

이를 본 위대한 학자는 얼른 생각했다.

 

 

‘그(:여인 - 인용자)를 더욱 행복하게 해줘야지. 더욱 즐겁게.’

 

 

그래서 그는 재빨리 덧붙여 말했다.

 

 

“그리고 또 그 뜻도 이해합니다.”

 

 

아리따운 모습으로 바뀌어가던 그가 갑자기 노래를 그치고 춤을 멈췄다. 그리곤 슬피 울기 시작했다. 그의 아리따운 모습은 다시 추하게 일그러졌고, 마침내는 전보다도 더 못생긴 모습이 되고 말았다.

 

 

위대한 학자가 당황하여 물었다.

 

 

“아니, 어떻게 된 겁니까?”

 

 

“그대가 거짓말을 안 하는 훌륭한 학자라서 행복했는데, 이제 거짓말을 했으니 슬퍼서 그러오. 하늘과 땅이 다 알지만, 그대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하지 않는가?”

 

 

그 때 위대한 학자는 꿈에서 퍼뜩 깨어났다. 그는 모든 걸 버리고 곧장 길을 떠났다.

 

 

- 출처 :『동냥그릇』(박상준 엮음, 장원 펴냄, 서기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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