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괴물

개마두리 2013. 10. 8. 20:55

언제부터인가 괴물들은 사람들 사이에 섞여 살고 있었다. 그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왔는지, 왜 마을을 어슬렁거리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것들은 추악한 몰골에 걸맞게 하는 짓이 거칠고 시끄럽고 볼썽사나웠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것은 괴물들이 사람 흉내를 낸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소소한 행동들을 따라 할 뿐이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그것들은 사람들의 모든 것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사람처럼 윗도리를 걸치고, 사람처럼 나무를 거칠게 깎아 만든 작대기 같은 지팡이를 짚고, 사람처럼 중절모나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사람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고, 사람처럼 허름하고 조잡하게 만든 오두막을 짓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괴물은 심지어 사람들에게 친한 친구라도 되는 양 인사를 건네기까지 했다. 그것들은 자신들이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사람들은 그것들이 얼마나 하등(下等)한지, 그에 비해 인간이 얼마나 월등한지를 보여 주기 위해 높고 아름다운 탑을 지었다. 괴물들이 그 탑을 보기만 하면 제 분수를 알고 더 이상 가당찮은 사람 흉내는 내지 못할 거라 자신했다.

 

그러나 괴물들은 어설픈 재주로 더 높은 탑을 지었다. 게다가 그 형편없는 결과물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자랑스럽다는 듯이 뻐기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큰 소리로 비웃고 경멸하고 깎아내렸다. 그 탑이 얼마나 조악(粗惡. 조잡하고 나쁨 - 옮긴이)한지 말해 주고 싶었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욱더 과장되게 비웃고 경멸하고 화를 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괴물들은 뻔뻔스럽게도 도리어 인간들을 비웃었다. 그 웃음은 마치 “이만하면 우리가 인간들보다 나은 것 같지 않아? 그렇게 애써 부정할 필요 없어. 이제 그만 우리의 우월함을 인정하라구.”라고 말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그들은 쇠스랑, 갈퀴, 큰 낫, 몽둥이를 들고 화를 내며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했어.”, “다시는 사람 흉내를 못 내게 혼쭐을 내 주마!”라고 소리질렀다.

 

하지만 사람들이 분노하면 할수록 괴물들은 더 거칠어졌고, 그들을 때리면 때릴수록 더 거대해지고 더 강해졌다. 사람들은 죽도록 미운 놈들에게 생채기 하나 내지 못하고 도망을 쳐야 했다.

 

저놈들이 계속해서 사람 행세 하는 것을 두고 볼 순 없었다. 인간의 위대한 문화와 업적은 물론 사람의 손을 거친 것이라면 실오라기 하나라도 그놈들에게는 과분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겐 괴물을 이길 힘이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명석한 인간들은 결국 괴물들의 본분을 알게 할 완벽한 해법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 바로 인간이 괴물처럼 입고, 괴물처럼 벌거벗고, 괴물처럼 소리지르고, 괴물처럼 뒹구는 것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괴물들이 사람 행세 하는 일은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 최규석 화백의 우화

 

- 출처 :『지금은 없는 이야기』(최규석 지음, 사계절 펴냄, 서기 2011년)

 

* 옮긴이의 말 :

 

인간은 사람처럼 굴고 싶어하는 괴물을 사람의 수준으로 끌어올렸어야 했다. 아니면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거나. 그런데 그랬던가? 인간은 괴물이 인간과 닮으면 안 된다는 생각 하나에만 매달린 나머지 자신들의 수준을 끌어내려 괴물이 인간을 흉내 내지 않게 하는 어리석은 방법을 골랐고, 그 결과 결국 인간의 삶도 비참해졌다.

 

우리는 상향평준화(上向平準化 : 모두가/대부분이 똑같이 나아지는 것)를 실천해야지 하향평준화(下向平準化 : 모두가 똑같이 나빠지는 것)를 실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가 사는 곳에 ‘다른 사람’(피부색이건 생김새건 종교건 사상이건 고향이건 성별이건 직업이건 계급이건 국적이건 뭐건 다른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이다)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그를 내쫓거나, 죽이거나, 깎아내려서는 안 된다. 그와 닮은 점이 있다면 - 또는 그가 나와 더불어 함께 살고 싶어한다면 - 어떻게든 끌어안아야지 무작정 내치려고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그를 내치거나 떼어내려고 발버둥치다가 정말로 자신까지 잃어버리면 안 되니까.

 

'우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군  (0) 2013.10.19
▩책임  (0) 2013.10.16
▩미친 사람들, 탈출하다  (0) 2013.10.02
▩비평가  (0) 2013.09.23
▩두 염소와 여우의 이야기  (0) 2013.0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