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가난을 찾아 나선 왕

개마두리 2015. 8. 16. 19:48

 

(西)아프리카에 아자라고 하는 작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아자는 비록 작은 나라였지만, 이 나라의 왕 아자호수는 세상의 온갖 부귀와 영화를 다 누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아자호수는 이런 생활에 싫증이 났습니다. 그래서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여보게, 나를 위해 점을 쳐 주게나.”

 

임금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점쟁이가 물었습니다.

 

과인은 너무 부자라서 가난을 몰라. 그래서 가난하다는 게 뭔지 직접 몸으로 겪어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나?”

 

알겠습니다. 점을 쳐 보지요.”

 

점쟁이는 점 칠 때 쓰는 조가비를 집어던졌습니다. 조가비가 바닥에 떨어지자, 점쟁이는 그것을 유심히 살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조가비를 던진 뒤에, 점괘가 어떻게 나왔는지 찬찬히 살폈습니다.

 

이윽고 점쟁이가 입을 열었습니다.

 

북과 꽹과리와 방울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린도 한 마리 잡아 오십시오.”

 

궁궐로 돌아온 아자호수는 꽹과리와 북과 방울을 챙기고, 사냥꾼들에게 기린을 잡아오게 했습니다.

 

모든 준비가 갖춰지자, 아자호수는 다시 점쟁이를 찾아갔습니다.

 

점쟁이는 사냥꾼들을 시켜 북과 꽹과리와 방울을 기린 목에 묶게 하고는, 아자호수에게 기린의 등에 올라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사냥꾼들에게 아자호수를 기린 등에 단단히 묶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한 뒤에 점쟁이는 아자호수에게 작은 북채를 쥐여 주었습니다.

 

이제 북을 치십시오.”

 

점쟁이의 말에 따라 아자호수가 북을 치자, 기린은 껑충껑충 숲으로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기린은 가시덤불 사이를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아자호수는 떨어질까 무서워 기린의 목을 꽉 부둥켜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기린이 워낙 거칠게 달리는 바람에, 얼마쯤 가자 아자호수를 묶은 끈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깊은 숲 속에 이르렀을 때, 아자호수는 마침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습니다.

 

어이쿠, 사람 살려!”

 

아자호수는 데굴데굴 구르다가 겨우 일어났습니다. 기린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이런! 이제 어쩐다 …….”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그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자호수는 깊은 숲 속에서 길을 잃고 만 것입니다.

 

아자호수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하룻밤 묵어 갈 집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밤이 깊도록 불빛 한 점 찾을 수 없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자호수는 나무 위로 올라가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이튿날, 아자호수는 숲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여기저기 헤매고 돌아다녔지만, 집은커녕 사람 한 명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석 달 동안, 아자호수는 꼼짝없이 숲 속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아자호수는 닥치는 대로 열매를 따 먹고 때로는 짐승을 잡아 허기진 배를 채웠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고를 당해 한쪽 눈까지 잃고 말았습니다.

 

숲 속에 갇힌 지 꼭 석 달이 되는 날, 아자호수는 드디어 사람을 만났습니다. 쪽풀의 잎을 따는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아자호수를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그 날부터 아자호수는 할머니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옷감에 쪽풀의 물을 들여 시장에 내다팔며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시장에 갈 때, 아자호수는 짐을 지고 따라다녔습니다. 그리고 옷감을 다 팔고 나면, 새로 물을 들일 옷감을 사서 지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아자호수의 아들들(그러니까 아자 왕국의 왕자들 - 옮긴이)은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아들들은 아버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살아 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는 옷감을 팔러 시장에 갔습니다. 늘 그랬듯이, 이 날도 아자호수는 짐을 지고 할머니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아자호수의 막내아들이 마침 시장에 나왔다가 이 두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막내아들은 할머니 옆에 있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와 꼭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얼굴은 꼭 아버지를 닮았지만, 한쪽 눈이 없었습니다. 막내아들은 긴가민가하며 두 사람 주위를 맴돌다가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형님, 오늘 시장에 나갔다가 옷감 장수 할머니를 보았어요. 그런데 짐을 지고 할머니를 따라다니는 사람이 꼭 아바마마를 닮았지 뭡니까? 할머니는 그 사람을 머슴처럼 부리고 있더라고요. 한데 그 사람은 한쪽 눈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돌아왔는데 …….”

 

막내의 말에 맏형은 눈이 휘둥그래졌습니다.

 

뭐라고? 다음엔 나와 함께 가 보자.”

 

다음 장날, 왕자들은 서둘러 시장으로 갔습니다. 워낙 이른 시각이었던지 할머니는 아직 나와 있지 않았습니다. 왕자들은 지난번에 막내 왕자가 아버지를 닮은 사람을 보았다는 장소에 자리를 잡고, 할머니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윽고 옷감 장수 할머니가 시장에 들어섰습니다. 할머니 뒤에는 짐을 진 남자가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시장 한쪽에 자리를 잡자, 남자는 짐을 내려놓고는 숨도 돌리지 않고 근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한참 후에 나뭇짐을 잔뜩 짊어지고 오더니, 할머니 옆에 쿵 하고 내려놓았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쌀쌀맞게 말했습니다.

 

이젠 밥을 먹어도 좋다.”

 

할머니는 남자에게 먹을 것을 내밀었습니다. 남자는 배가 고팠던지 그릇에 머리를 처박고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아자호수의 아들들이 그 남자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정신없이 음식을 먹고 있던 아자호수는 누군가 자기 앞에 서 있다는 걸 눈치 채고 고개를 번쩍 들었습니다. 아자호수는 자기 앞에 서 있는 아들들을 금방 알아보았습니다. 아자호수는 그릇을 팽개치고 그만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들들도 아버지를 부둥켜안고 엉엉 소리 내 울었습니다.

 

맏형이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할멈, 대체 이분을 언제 어디서 만났소?”

 

, 이 종놈 말입니까?”

 

종이라고요?”

 

그럼요, 제 종이죠. 그게 언제였더라? 3년쯤 전에 숲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걸 제가 거둬들였어요.”

 

그러면 이 사람을 내게 팔지 않겠소?”

 

이 종놈을 팔면 제 짐은 누가 져 나르는데요?”

 

내가 돈은 두둑이 드리겠소. 그 돈으로 더 힘세고 튼튼한 종을 사면 될 게 아니오?”

 

, 그렇다면야 ……. 그런데 이 늙은 종놈을 사다가 뭣에 쓰려고 그러세요?”

 

이분은 종놈이 아니라 내 아버지라오. 그러니 제발 이 분을 내게 파시오.”

 

아버지라고요? 허어, 그렇다면 데려가세요.”

 

이리하여 형제들은 아버지를 모시고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아자호수는 누더기를 벗고 깨끗이 목욕을 한 뒤, 예전처럼 왕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궁궐 마당에 왕자들과 신하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아자호수는 그동안 겪은 일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말했습니다.

 

과인은 부자로만 살았기 때문에 가난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지난 3년 동안 실컷 가난을 맛보고 난 지금은 가난이라면 몸서리가 쳐진다. 내 아들들아, 그리고 내 신하들이여, 결코 가난해지려고 하지 말거라. 가난이란 맛있는 음식도 못 먹고, 좋은 옷도 못 입고, 죽도록 고생만 하는 거란다.”

 

이 때부터 서아프리카에는 이런 말이 널리 퍼졌습니다.

 

사람은 가난을 찾아 나서서는 안 된다.’

 

- 베냉([Fon] )의 옛날이야기

 

* 베냉 : (西)아프리카의 공화국.

 

* ‘: 베냉의 주민. ‘다호메이족이라고도 한다.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6 - 가난을 찾아 나선 왕(이규배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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