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산을 옮기려고 한 왕

개마두리 2015. 8. 5. 21:50

 

아주 오래 전의 일입니다. 나이지리아의 요루바라는 곳에 싸우기를 좋아하는 아주 난폭한 왕이 살고 있었습니다. 오바라는 이름을 가진 그 왕은 자기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얻어야만 직성이 풀렸습니다.

 

어느 날, 오바는 이웃 나라인 일래샤 왕국에 기름지고 넓은 땅이 있다는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땅이 탐난 오바는 일래샤 왕국을 송두리째 삼키기로 작정했지만, 싸움을 일으킬 구실이 없었습니다.

 

생각 끝에 오바는 일래샤 왕국에 사신을 보내 자기에게 선물을 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사신들은 일래샤 왕국에 도착하여 당당한 목소리로 오바의 명령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왕, 오바의 명을 받고 왔소. 그분은 일래샤 왕국에 원하는 것이 있소. 당신들이 그 요구를 들어 주지 않는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당신네들과 전쟁을 해야 하오. 그러니 속히 대답을 해 주시오.”

 

어떻게든 싸움을 피해야겠다고 생각한 일래샤 왕국에서는 그 요구가 무엇인지를 간곡히 물었습니다. 그러자 사신들이 대답했습니다.

 

오바 왕께서는 당신네 나라에 싱싱하고 맛있는 채소(菜蔬. 순우리말로는 푸성귀/남새 - 옮긴이)가 자라고 있다는 소문을 들으셨소. 왕께서는 다음 축제일까지 그 채소들을 갖다 주기를 원하고 계시오. 그런데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왕께 가져온 채소들이 절대로 시들거나 말라서는 안 된다는 것이오. 막 땅에서 뽑은 것처럼 싱싱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오.”

 

사신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래샤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오바 왕의 사신들이 떠나자, 일래샤 사람들은 모두 모여 대책을 의논했습니다.

 

오바 왕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적어도 보름은 걸릴 텐데, 무슨 수로 싱싱하게 운반한단 말인가? 보나마나 채소들은 말라비틀어질 테고, 오바 왕이라면 그걸 트집 잡아 싸움을 걸고도 남을 사람인데 …….”

 

여기저기서 한숨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자 구석에 있던 아기리 아사사라는 남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했습니다.

 

뭘 그런 걸 갖고 걱정합니까?”

 

그 말에 사람들이 모두 아기리 아사사를 쳐다보았습니다. 아기리 아사사는 싱긋 웃더니 말했습니다.

 

내게 좋은 수가 있어요. 화분과 항아리를 여러 개 구해 채소를 흙째 떠서 (그것들 안에 넣고 - 옮긴이) 옮기면 되잖아요. 그러면 아무리 먼 길을 가더라도 제때 물만 주면 시들 염려가 없을 겁니다.”

 

그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숨통이 뚫린 듯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일래샤 사람들은 오바 왕의 축제일이 다가오자, 화분과 항아리에 채소를 옮겨 심었습니다.

 

일래샤 사람들이 오바 왕의 궁전 앞에서 (일래샤에서 날라온 - 옮긴이) 채소를 (화분과 항아리에서 - 옮긴이) 뽑아 갖다 바치자, 오바 왕의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바로 흙에서 뽑아 왔으니, 채소들은 싱싱할 뿐 아니라 신선한 향기까지 내뿜고 있었습니다. 그 일을 구실로 전쟁을 일으키려던 오바 왕의 계획은 수포(水泡 : 물거품/헛된 결과 - 옮긴이)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채소를 가져온 일래샤 왕국의 사람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데, 오바 왕의 신하가 찾아왔습니다. 그 신하는 암소의 넓적다리 고기를 그들에게 건네주면서 말했습니다.

 

당신들이 전쟁을 피하려면 한 가지 일을 더 해야 하오. 오바 왕께서는 당신들에게 이 살코기를 잠시 맡아 달라고 부탁하셨소. 당신들이 보관하고 있다가 추수감사절 축제가 열리기 사흘 전에 이 고기를 다시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오. , 그 고기가 지금처럼 신선한 상태로 돌아와야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되오. 만약 고기가 썩거나 곰팡이가 슬거나 했을 땐 전쟁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일래샤 사람들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일단 고기를 받아 그 곳을 떠났습니다.

 

일래샤 사람들은 걱정이 태산 같았습니다. 오바 왕이 전쟁을 일으킬 구실을 잡으려고 그러는 것이 너무 뻔했습니다.

 

이건 순 억지야. 이 고기는 추수감사절은커녕, 우리가 집에 도착하기도 전에 썩고 말 거야.”

 

맞아. 오바 왕은 우리나라에 쳐들어오려고 일부러 이런 구실을 만드는 게 틀림없어. 그나저나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사람들이 걱정하고 있을 때, 아기리 아사사가 다시 나섰습니다.

 

걱정할 필요 없어요. 제게 좋은 방법이 있으니, 우선 이 고기를 가지고 조금만 더 길을 갑시다.”

 

사람들은 아기리 아사사의 말을 믿고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해가 질 무렵, 그들은 도살장 부근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도살장에서는 어떤 남자가 막 암소 한 마리를 잡으려고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아기리 아사사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이보시오. 소를 죽이는 게 그리 급한 일은 아니잖소. 우선 이 넓적다리 고기를 당신이 가지시오. 우리가 당신에게 잠시 맡기는것이오. 대신 당신은 추수 감사절 사흘 전에 우리가 이 곳으로 오면, 그때 소를 잡아 넓적다리 고기를 우리에게 주시오. 그러면 피차 손해 볼 일이 없겠지요? 우리도 이 무거운 고기를 들고 먼 길을 가는 불편함을 덜 수 있고 말이오.”

 

그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기리 아사사의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추수감사절 사흘 전에, 일래샤 사람들은 다시 그 도살장으로 갔습니다. 도살장의 남자는 약속대로 소를 잡아 넓적다리를 주었습니다. 일래샤 사람들은 신선한 고기를 들고 오바 왕에게 갔습니다.

 

, 가져왔습니다. 요구하셨던 대로 넓적다리 고기는 그 때와 마찬가지로 이렇게 신선하답니다.”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고기를 살펴보던 오바 왕은 껄껄 웃으며 일래샤 사람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떠나자, 오바 왕은 치밀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전쟁을 일으킬 구실이 또 없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번에야말로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을 맡기겠노라고 결심한 오바 왕은 한참을 궁리하더니 다시 일래샤 왕국으로 사신을 보냈습니다.

 

일래샤 왕국에 온 오바의 사신들이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위대하신 우리의 왕 오바께서 말씀하셨소. 당신들은 그 분 앞에 우케우모 산을 옮겨다 놓아야 할 것이오. 그러지 못하면 전쟁을 피할 도리가 없을 것이오.”

 

사신들의 말에 일래샤 사람들은 크게 당황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사신들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사신들이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자, 일래샤 사람들은 또다시 머리를 맞대고 의논을 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아기리 아사사가 멋진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우선 날이 밝는 대로 모두 우케우모 산으로 갑시다.”

 

날이 밝자, 1만여 명의 일래샤 사람들이 오바 왕의 사신들과 함께 우케우모 산으로 갔습니다. 그들은 머리 위에 똑같은 똬리를 하나씩 이고 있었습니다. 아기리 아사사는 사람들에게 우케우모 산을 빙 둘러싸도록 했습니다.

 

사람들이 산을 둘러싸자, 아기리 아사사가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 모두들 힘을 합쳐 산을 들어올린 다음, 그걸 똬리 위에 올려놓으시오!”

 

그의 말이 떨어지자, 사람들은 줄다리기를 할 때처럼 큰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나무나 바위를 붙들고 위로 힘껏 잡아당겼습니다. 그러나 산이 들어올려질 리 없었습니다.

 

아기리 아사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싱긋 웃으며, 사신들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오바 왕의 사신 여러분, 저희는 오바 왕께서 명하신 대로 이 산을 그분 앞에 갖다 드릴 것입니다. ,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1만여 명이나 되는 일래샤 사람들이 산을 옮길 준비를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도 보셨다시피, 저희의 힘으로는 저 산을 들어올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오바 왕께서 (요루바 왕국의 - 옮긴이) 사람들을 보내 산을 들어올려 저희의 똬리 위에만 얹어 주신다면 바로 이 산을 갖다 바치겠습니다. 여러분께서는 오바 왕께 저희들의 간곡한 뜻을 바로 전해 주십시오.”

 

오바 왕의 사신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를 떠나야 했습니다.

 

사신들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오바 왕은 몹시 분했지만, 일래샤 왕국을 차지하려던 욕심을 버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뒤 일래샤 왕국에는 이런 속담이 생겨났답니다.

 

들어올릴 사람이 없어 산을 옮기지 못한다.’

 

- 나이지리아의 옛날이야기

 

* 출처 :웅진 메르헨 월드 16 - 세 가지 질문(오혜윤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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