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융단을 짠 임금님

개마두리 2015. 8. 16. 21:13

 

* 융단 : 물들인 짐승 털을 모아서 그림이나 무늬를 만든 두꺼운 천. 마루에 깔거나 벽에 건다. 양탄자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카펫(Carpet)이다.

 

이란의 옛 이름은 페르시아입니다. 페르시아에서는 왕을 라고 불렀습니다(참고로 이웃인 아랍국가에서는 왕을 썰퇀이라고 불렀다 - 옮긴이). 샤는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리느냐에 따라 나라가 발전하기도 하고, 어지러워지기도 했습니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샤는 페르시아의 여러 샤들 중에서 가장 훌륭한 왕입니다.

 

우리 임금님은 얼마나 인자하신지 몰라요. 우리들(백성들 - 옮긴이)을 식구처럼 보살펴 주시니까요. 그분은 가난한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병이 든 사람에게는 의사를 보내 주시고, 착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십니다.”

 

페르시아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샤에 대해 물어보면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나쁜 짓을 일삼는 무리들은 샤를 매우 두려워했습니다.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는 무거운 벌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샤가 이렇게 올바르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던 까닭은 백성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샤는 늘 백성들이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백성들이 바라는 것도 직접 듣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샤는 허름한 농부의 옷으로 갈아입고 자주 궁궐을 나섰습니다. 샤는 나라 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백성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나라 안에 아주 흉측한 소문이 나돌았습니다. 매일 밤 사람들이 어디론가 사라지는데, 한번 사라지면 영영 소식을 알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열 명이 사라졌답니다.”

 

오늘은 스무 명이 사라졌다고 합니다.”

 

샤는 크게 놀라 신하들에게 소문의 진상을 밝혀내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알아 내지 못했습니다.

 

소문은 나라 안을 온통 공포로 몰아넣었습니다. 궁궐 앞에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몰려와 눈물을 흘리며 샤에게 하소연하였습니다.

 

깊은 근심에 빠져 있던 샤는 마침내 이 이상한 일이 왜 일어나는지 직접 밝혀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샤는 허름한 농부의 옷으로 갈아입고 거리로 나섰습니다. 샤는 먼저 시장으로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사원의 종소리처럼 아주 맑고 은은했습니다. 샤는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넓은 광장 한 귀퉁이의 커다란 나무 아래에서 수도승 옷을 입은 사람이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의 주위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샤는 사람들 뒤에 서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수도승의 노래는 아주 달콤했고, 마음을 사로잡는 신비한 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사람은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궁궐에서는 노래를 부른 적이 없었을까?’

 

샤는 음악을 좋아해서, 노래를 잘 하는 사람들을 궁궐로 불러 직접 노래를 듣고는 했습니다.

 

샤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수도승이 천천히 뒷걸음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노래를 듣던 사람들도 한 걸음 한 걸음 그를 따라갔습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술에 걸린 것처럼 수도승이 이끄는 대로 천천히 따라가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도시에서 멀어지고 있는데도 아무도 뒤를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샤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저 수도승은 이 사람들을 어디로 끌고 가는 걸까? 뭔가 비밀이 있는 게 분명해.’

 

샤는 사람들 속에 섞여 조심조심 수도승을 따라갔습니다.

 

도시를 빠져나간 수도승은 마침내 어느 낡은 성 앞에 이르렀습니다. 그 성은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아서 으스스한 분위기가 나는 곳이었습니다. 수도승이 성 앞에 서자, 굳게 닫혀 있던 성문이 스르르 열렸습니다. 수도승은 여전히 맑은 목소리로 달콤한 노래를 부르며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들도 그를 따라 성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아, 이를 어쩐담. 사람들이 저 수도승의 노래에 홀려 나쁜 일에 빠진 게 분명해.’

 

샤는 잠시 멈춰 서서 어떻게 할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될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혼자 달아날 수는 없었습니다. 샤는 입을 굳게 다물고 성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그 때였습니다. 꽝 하고 성문이 닫히더니, 순식간에 커다란 빗장이 걸렸습니다. 그러자 노랫소리는 뚝 그치고, 험상궂은 얼굴을 한 악당들이 몽둥이를 들고 나타나 사람들을 사정없이 두들겨 패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하던 성 안에는 사람들이 울부짖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잠시 후 악당들은 사람들의 손발을 꽁꽁 묶더니 어디론가 끌고 갔습니다. 갑자기 당한 일이라서 샤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당신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요?”

 

샤는 자기를 끌고 가는 악당에게 물었습니다.

 

궁금하냐? 너희들을 이웃나라에 노예로 팔려고 한다.”

 

악당은 히죽거리며 말했습니다.

 

너는 체격이 좋으니까 값을 많이 받을 수 있겠는데. 하하하.”

 

그런데 언제 여기를 떠날 거요?”

 

그건 왜? 도망치려고? 후후, 어림없지. 우리는 오늘 밤 달이 떠오르면 이 곳을 떠난다.”

 

이제 샤는 모든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자들이었구나. 이 자들 때문에 매일 밤 사람들이 사라진 거야.’

 

그러나 샤는 이미 악당들에게 붙잡힌 몸이었습니다.

 

, 이 도적들을 혼내주고, 붙잡혀 온 백성들을 구해야 할 텐데 …….’

 

샤는 악당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줄곧 백성들을 구할 생각에 골몰했습니다. 샤는 마침내 좋은 꾀를 생각해 내고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나를 노예로 파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벌게 해 주겠소. 그러니 두목을 만나게 해 주시오. 내게 아주 좋은 생각이 있소.”

 

허튼 수작 하지 마라.”

 

샤를 끌고 가던 악당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사람들이 끌려오고 있는 것을 보고 있던 악당 두목이 샤의 말을 들었습니다. 두목은 귀가 솔깃하여 부하에게 명령했습니다.

 

그 자를 이리 데리고 와라. 사실인지 아닌지 들어나 보자.”

 

두목은 돈에 욕심이 아주 많은 자였습니다.

 

, 두목님. 제가 지금은 비록 농부 옷을 입고 있지만, 저는 매우 솜씨 좋은 직공이랍니다.”

 

샤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샤는 어릴 적에 궁궐 안의 직인들에게서 베틀을 다루는 법을 배웠던 것입니다. 그런데 솜씨가 이만저만 뛰어난 게 아니어서 내노라 하는 직인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습니다.

 

제 손가락은 베틀 위에서 마술을 부리지요. 제가 짠 융단은 제 몸값보다 세 배나 많은 돈을 벌게 해 줄 겁니다.”

 

샤는 이렇게 말하고 두목에게 한껏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당장 중요한 것은 두목의 마음에 드는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마침내 두목은 탐욕스럽게 두 눈을 빛내며 부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당장 베틀을 가져와라. 일단 이 자의 말을 믿어 보기로 하자. 만약 거짓말이라면, 다음 번에 팔아도 늦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그날부터 샤는 융단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샤는 두목의 마음에 들게 되도록 화려한 무늬를 넣어 융단을 짰습니다. 융단이 완성되어 가자, 두목은 샤의 솜씨에 감탄하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이 융단을 팔면 금화를 얼마나 받을 수 있겠느냐?”

 

두목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물었습니다.

 

적어도 (금화 - 옮긴이) 5000 닢은 받으실 수 있을 겁니다.”

 

샤의 대답에 두목은 눈을 번쩍 떴습니다.

 

“5000 닢이라고! 누가 그렇게 많은 돈을 주고 이걸 사겠느냐?”

 

샤께서 사실 겁니다. 하지만 그분은 지금 궁궐 안에 안 계신다는 소문이 있으니, 이것을 왕비님에게 가져가 보십시오. 왕비님도 아름다운 융단을 매우 좋아 하시니까요. 틀림없이 금화 5000 닢을 주실 겁니다.”

 

좋다. 어서 서둘러라. 빨리 이 융단을 왕비님께 가져가야겠다.”

 

샤의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습니다. 샤는 이제 융단 끝자락에다 글자를 수놓았습니다. 그러나 그 성 안에서 그것이 글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샤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악당들 가운데는 글자를 아는 자가 아무도 없었던 것입니다. 당시에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왕족이나 귀족뿐이었습니다.

 

샤는 마침내 마지막 글자를 수놓고 매듭을 지어 융단을 완성했습니다.

 

과연 훌륭하군. 내가 직접 이 융단을 왕궁으로 가져가겠다.”

 

돈이 생긴다고 생각하니, 두목의 입에는 벌써 군침이 돌았습니다.

 

내 손으로 직접 왕비님께 바치겠어. 네 말이 맞다면, 금화 5000 닢을 받을 수 있겠지.”

 

두목이 융단을 챙겨들고 일어서자, 샤는 몇 가지 주의할 점을 일러 주었습니다.

 

왕궁의 문지기가 못 들어가게 해도 꼭 통과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왕비님의 방을 지키는 문지기에게 융단을 맡기셔도 안 됩니다. 반드시 왕비님의 눈앞에서 이 융단을 펼치셔야 합니다.”

 

알았다. 걱정 마라.”

 

두목은 부하들을 이끌고 왕궁으로 떠났습니다. 왕궁 앞에 이르렀을 때, 문지기가 험상궂은 얼굴로 이들을 가로막았습니다.

 

전하는 궁궐에 안 계신다. 그리고 왕비님은 무척 슬퍼서 아무도 만나려고 하지 않으셔!”

 

하지만 저는 왕비님께 드릴 아주 값진 선물을 가져왔습니다. 만약 저희를 들여보내지 않으시면, 왕비님이 크게 노하실 겁니다.”

 

이 말에 문지기는 두목과 부하들을 왕궁 안으로 들여보냈습니다. 그러나 두목은 왕비의 방 앞에서 다시 멈춰 서야 했습니다.

 

내가 왕비님께 당신의 선물을 가져갈 테니, 여기 두고 돌아가시오.”

 

왕비 방의 문지기는 이렇게 말하고, 이들을 돌려보내려 했습니다. 그 때 방 안에서 왕비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그 자들을 안으로 들여보내라. 내가 직접 그 선물을 보고 싶구나.”

 

이리하여 두목은 왕비의 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두목은 왕비에게 넙죽 큰절을 하고, 융단을 펼쳤습니다. 순간, 왕비는 눈이 휘둥그러지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융단은 처음 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융단에 수놓인 글자들을 발견한 왕비는 소스라치게 놀라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것은 샤가 왕비에게 보내는 글이었던 것입니다. 왕비는 주의 깊게 글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두목에게 말했습니다.

 

이 융단은 아주 값진 것이구나. 내 기쁘게 받겠다. 값은 얼마나 주면 되겠느냐?”

 

금화 오천 닢입니다, 왕비님. 다른 사람에게는 금화 1만 닢을 받고 파는 물건입니다.”

 

좋다. 내가 1만 닢을 주겠다. 이 융단은 내 맘에 꼭 드는구나. 내가 직접 시종과 함께 가서 돈을 가져올 테니, 여기서 기다리도록 해라.”

 

왕비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하고는, 시종과 함께 방을 나갔습니다. 그리고 시종을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서 은밀히 명령을 내렸습니다.

 

저 융단은 샤께서 짜신 것이다. 샤께서는 융단에 글자를 수놓아 내게 도움을 청하셨다. 저 융단을 가져온 자는 악당 두목이다. 샤께서는 바로 저놈들의 소굴에 갇혀 계시다. 그러니 저놈들이 떠나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뒤쫓아라. 50명의 힘센 군사들을 데리고 가라. 한 가지, 너희가 샤를 구출할 때까지 그 성문이 닫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지금 당장 떠날 준비를 해라.”

 

방으로 돌아온 왕비는 태연한 얼굴로 두목에게 금화 1만 닢을 내주었습니다. 돈을 받은 두목은 싱글벙글 입이 벌어져 궁궐을 나왔습니다. 두목은 그 융단에 글이 수놓아져 있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돈을 받은 것만 신이 나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소굴로 돌아갔습니다. 물론 군사들이 자기들을 뒤쫓고 있다는 것도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두목과 그의 부하들이 낡은 성으로 돌아왔을 때, 가짜 수도승은 오늘도 달콤한 노래로 사람들을 홀려 성으로 꾀어 오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두목은 그들이 성 안으로 다 들어갈 때까지 뒤에서 기다렸습니다. 꾐에 빠진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웃음이 번졌습니다.

 

오늘은 정말 신나는 날이야. 하하하하.”

 

두목이 한바탕 웃은 뒤 막 성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였습니다. 주위에 숨어 있던 샤의 군사들이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습니다. 두목과 부하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샤의 군사들은 순식간에 악당들을 무찌르고 두목을 사로잡았습니다. 노래로 사람들을 홀리던 가짜 수도승도 붙잡았습니다. 그리하여 성문이 닫히기 전에 성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샤의 군사들은 곧 샤를 구출하고, 가짜 수도승의 노래에 홀려 끌려온 사람들을 풀어 주었습니다.

 

가짜 수도승의 노래에 홀려 있던 사람들은 정신을 되찾자, 자신들을 구해 준 샤 앞에 엎드려 감사했습니다.

 

샤는 악당들에게 잡혀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다시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샤를 본 왕비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기뻐한 사람은 왕비만이 아니었습니다. 온 나라 안의 백성들이 너나 할 것 없이 기뻐했습니다. 백성들은 샤의 지혜로움에 탄복하고, (샤를 - 옮긴이) 더욱더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며칠 후, 샤는 넓은 광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악당 두목과 가짜 수도승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리고 온 나라 안에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우리 샤께 영광을!”

 

샤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방방곡곡에 울려 퍼졌습니다.

 

우리의 목숨을 구해 준 베틀에도 축복을! 이야기를 전해주는 무늬를 짜는 모든 직조공들에게도 축복을!”

 

지혜로운 샤 덕분에 페르시아는 평화를 되찾았습니다.

 

이 때부터 페르시아에는 융단 짜는 모든 이에게 축복을!’이라는 말이 널리 퍼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페르시아는 아름다운 융단으로 유명한 나라가 됐습니다.

 

- 이란의 옛날이야기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20 - 죽은 사람은 누구(정하섭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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