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20년 뒤의 계산

개마두리 2015. 8. 16. 22:33

 

가난한 목수가 살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몹시 부는 어느 날, 목수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며칠 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한 터라, 목수의 뱃속에서는 꼬르륵대는 소리가 우렛소리처럼 울려 나왔습니다. 게다가 옷 안으로 파고드는 바람도 너무 차가웠습니다. 이대로 더 가다가는 길바닥에 쓰러지고 말 것 같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목수는 근처 음식점으로 들어갔습니다. 따뜻한 불에 몸도 녹이고, 음식도 좀 먹을 생각이었습니다.

 

목수는 맥주 한 잔과 빵 한 조각, 치즈 한 조각을 시켰습니다. 그리고 삶은 달걀 여덟 개도 시켰습니다.

 

목수는 음식을 먹은 뒤, 계산을 하기 위해 주머니를 뒤졌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주머니 안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목수는 난감해졌습니다.

 

목수는 곰곰 생각한 끝에 음식점 창으로 도망칠 결심을 했습니다. 주인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목수는 창을 넘어 도망을 치고 말았습니다.

 

음식점 주인은 손님이 도망쳤다는 사실을 알고 화가 났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곧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 일이 있은 지 20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습니다.

 

훌륭한 마차 한 대가 그 음식점 앞에 멎었습니다. 그리고 잘 차려입은 상인이 음식점 안으로 들어오더니, 맥주 한 잔과 빵 한 조각, 치즈 한 조각, 삶은 달걀 여덟 개를 시켰습니다.

 

음식점 주인은 부유한 상인에게 좀 더 비싼 것을 먹으라고 권했지만, 상인은 사양했습니다.

 

상인은 시킨 음식을 모두 먹고, 얼마냐고 물었습니다.

 

“12 펜스입니다, 나리.”

 

음식점 주인이 말하자, 상인은 빙그레 웃으며 금화를 다섯 닢이나 꺼내 주었습니다. 주인은 깜짝 놀라 손을 내저었습니다.

 

음식 값은 12 펜스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 이상은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음식점 주인이 거절하자, 상인은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 돈을 모두 받으십시오. 저는 지금 먹은 음식 값만 드리는 게 아닙니다. 20년 전에 어떤 젊은 목수가 음식을 먹고, 돈을 내지 않고 가 버린 일이 있을 겁니다. 저는 지금 그것까지 갚으려는 겁니다.”

 

음식점 주인은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20년 전,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허름한 옷차림을 한 목수가 와서 음식을 먹은 뒤 돈을 내지 않고 가 버린 기억이 났습니다.

 

그러자 상냥하게 웃던 음식점 주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습니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에는 욕심에 가득 찬 표정이 떠올랐습니다. 음식점 주인은 거만하게 말했습니다.

 

, 그런 일이 있었지요. 하지만 저는 당신과 계산하는 방식이 달라요. 생각을 해 보시죠. 만약 당신이 먹은 달걀 여덟 개가 알을 깠다고 칩시다. 그러면 병아리가 닭이 되었을 것이고, 닭이 다시 달걀을 낳았겠지요. 그렇게 20년이 흘렀다면, 지금쯤 저도 당신 못지 않은 부자가 되었을 거예요.”

 

상인은 처음에 음식점 주인이 농담을 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다음 날, 음식점 주인은 상인을 법정에 고소했습니다.

 

상인은 소송에 말려든 것이 몹시 골치 아프고 괴로웠습니다.

 

그 상인에게는 오랫동안 일을 가르쳐 온 청년(도제? - 옮긴이)이 있었는데, 최근 들어 상인이 눈에 띄게 우울해하자, 청년은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그래서 상인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 주었습니다.

 

스승님, 걱정 마십시오. 제게 좋은 수가 있습니다. 저를 변호사로 선임했다고 법정에 알리세요. 그러시면 그 음식점 주인이 주장한 것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보여 드리겠습니다.”

 

상인은 그 청년이 얼마나 총명하고 성실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청년을 자신의 변호사로 선임한다고 재판장에게 알렸습니다.

 

드디어 재판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음식점 주인은 자신의 변호사와 함께 일찌감치 와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상인도 왔습니다.

 

그러나 재판을 시작할 시간이 훨씬 지났는데도, 청년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상인이 재판장에게 좀 더 기다려 달라고 요청을 해서 한 시간이나 더 기다렸지만, 청년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재판장은 재판을 시작했습니다.

 

상인은 이제 재판에 졌다고 생각하며 몹시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상인의 변호를 맡은 청년이 뛰어 들어와 거침없는 태도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저를 여러분의 처분에 맡기겠습니다!”

 

난데없이 한 청년이 뛰어 들어와 재판을 흐려 놓자, 재판장이 소리쳤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저는 이 상인의 변호사입니다.”

 

당신은 왜 재판 시간에 늦었소? 우리는 당신을 한 시간 동안이나 기다렸소!”

 

재판장이 매섭게 소리쳤습니다.

 

재판장님, 죄송합니다.”

 

청년이 말을 이었습니다.

 

일찍 올 수 없는 사정이 있었습니다. 우리 형님이 밭에다가 완두콩을 심으려고 해서요. 창고에 있는 완두콩들을 꺼내 삶았는데, 식히는 데에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그 삶은 완두콩을 밭에다 모두 뿌리고 오느라고 늦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뜨거운 완두콩을 밭에 뿌릴 수 있을 만큼 식히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습니까?”

 

이런 엉터리 얘기가 있나! 삶은 완두콩을 밭에 뿌리면 어떻게 싹이 난단 말이오?”

 

재판장이 소리치자 청년이 다시 말했습니다.

 

만약 푹 삶은 달걀에서 병아리를 깔 수 있다면, 삶은 완두콩에서도 싹이야 얼마든지 날 수 있지 않을까요?”

 

청년의 말을 들은 재판장은 음식점 주인을 따로 불러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낮은 목소리로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음식점 주인과 그의 변호사는 재판장과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황급히 법정을 나갔습니다.

 

재판은 심문도 하기 전에 상인이 이긴 것으로 끝났습니다.

 

- 보헤미아의 옛날이야기

 

* 보헤미아 : 체코 공화국의 서부 지방.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18 - 이십 년 뒤의 계산(이영미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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