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대학자와 친구가 된 여종

개마두리 2015. 9. 5. 21:11

 

인도 북부인 바라나시 부근의 한 마을에 브라만 출신인 대학자와 수드라 출신인 여종이 살았습니다. 두 사람은 매일 아침 갠지스 강(바라트식 이름 강가. 힌두교 신자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강이다 - 옮긴이)에 목욕을 하러 갔습니다. 대학자는 성큼성큼 앞서서 가고, 여종은 멀리 떨어져서 갔습니다. 대학자는 여종의 그림자라도 자신에게 닿을까봐 (여종을 - 옮긴이) 꺼렸습니다. 여종 역시 대학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대학자는 목욕을 한 뒤 사원으로 가서 기도했습니다. 여종도 사원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힌두교 사회의 관습에 따르면 - 옮긴이) 비천한 여종이 사원에 들어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 옮긴이) 여종은 사원 밖에서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자는 여종이 신에게 기도하는 것조차 못마땅해 했습니다.

 

어느 날, 대학자가 여종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앞으로 목욕하러 나오지 마라. 네가 목욕을 하면 성스러운 강물(갠지스 강의 강물 - 옮긴이)이 더러워진단 말이야.”

 

하지만 선생님, 저는 저 멀리 하류 쪽에서 목욕을 합니다. 그러니까 제가 쓴 물은 선생님 쪽으로 올라가지 않습니다.”

 

상류에서 목욕을 하든, 하류에서 목욕을 하든, 네가 강물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이 성스러운 강물이 더러워지는 거야.”

 

그러자 여종이 두 손을 모으고 겸손하게 말했습니다.

 

저는 결코 부정한 여자가 아닙니다. 제가 목욕을 하면 강물이 어느 정도 더러워지기는 하겠지만, 이 강의 성스러움이 없어진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말씀입니다. 갠지스 강은 모든 인도 사람의 강입니다. 그러니 이 강은 선생님의 강도 되고 저의 강도 되는 것이지요.”

 

 

 

이 말을 들은 대학자는 분을 참지 못하고 파르르 떨었습니다. 몹시 화가 난 대학자는 여종에게 갖가지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여종은 듣다못해 귀를 막았습니다.

 

선생님, 대학자인 분께서 어찌 그런 더러운 욕설을 입에 담으십니까?”

 

아니, 뭐라고? 천한 계집종인 주제에 감히 나를 훈계하려 드는 거냐?”

 

대학자는 불같이 화를 내며 더욱더 모욕적인 말과 심한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여종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대학자에게 달려들어 덥석 껴안아 버렸습니다.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당황한 대학자가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거 놔라!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종과 대학자를 보며 수군거렸습니다. 여종은 마치 몇 년 만에 만난 친구나 부부처럼 대학자를 꽉 껴안고 있었습니다. 여종은 한참 후에야 대학자를 놓아 주었습니다. 대학자는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미친 년! 수드라! 지옥에도 못 갈 나쁜 년!”

 

그러자 여종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걱정 마세요. 저는 이 땅 위에서 살 거니까요.”

 

대학자는 두 주먹을 움켜쥐며 말했습니다.

 

내가 너를 이 땅에서 살도록 내버려 둘 것 같으냐? 임금님에게 너의 소행을 고발해서 나라 밖으로 내쫓아 버릴 테니 두고 봐라!”

 

 

마음대로 하세요! 그래 봐야 소용없어요. 저와 선생님은 이제 하나가 되었으니까요!”

 

여종은 그렇게 말하고는 유유히 사람들 사이를 빠져 나갔습니다.

 

이튿날, 대학자는 갠지스 강에서 오랫동안 목욕을 했습니다.

 

수드라의 그림자만 닿아도 더러워진다는데, 그 여자가 나를 껴안아 버렸으니 ……. 아이고! 이 치욕을 어떻게 하면 씻는단 말인가? 임금님께 이 사실을 고해서 그 여종의 식구들까지도 혼을 내 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그런 나쁜 짓을 또 저지를 거야.”

 

왕에게 간 대학자는 자기가 당한 사실을 과장하여 고해 바쳤습니다.

 

그 여종을 불러 오너라!”

 

왕의 명령으로 여종이 불려 왔습니다. 여종은 왕에게 큰절을 한 뒤에 조용히 한구석에 섰습니다.

 

네가 이 대학자를 껴안았느냐?”

 

왕이 준엄한 목소리로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임금님.”

 

수드라인 주제에 감히 브라만을 껴안다니, 어찌하여 그런 무모한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자기 친구를 껴안는 것이 어찌 무모한 짓입니까?”

 

여종의 대답에, 수군대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습니다. 감히 수드라가 브라만을 자기 친구라고 하다니요! 그 말을 들은 대학자는 분을 참지 못해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왕 역시 엉뚱한 대답에 깜짝 놀랐습니다.

 

어째서 대학자가 너의 친구란 말이냐?”

 

그 사람은 저와 아무런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를 설명해 보아라.”

 

저는 수드라 출신인 여종입니다. 제가 천하든 천하지 않든, 사람들은 저를 비천한 여자로 여깁니다.”

 

그건 그렇지. 그래서?”

 

여종은 차분하게 이야기를 해 나갔습니다.

 

반면에 학자님은 사회에서 덕망 있는 높은 분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힌두교의 - 옮긴이) 경전에서는 화를 참지 못하는 사람을 천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화를 낸다는 것은 제일 비천한 신분인 수드라라는 표시입니다. 학자님은 어제 저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러니 학자님도 수드라가 된 것이지요. 저도 천한 사람, 학자님도 천한 사람! 그래서 우리 두 사람을 친구라 한 것입니다.”

 

왕은 지혜로운 여종의 말에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제야 거기 모인 사람들도 브라만이란 신분은 출생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 바라트(인도의 정식 국호)의 옛날이야기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11 - 엉터리 재판관(박숙희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옛날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은 나그네  (0) 2015.09.08
▷◁잔칫집에 가는 사람  (0) 2015.09.06
▷◁백성을 섬기는 왕  (0) 2015.09.04
▷◁두미안 할아버지와 거인 피어리  (0) 2015.08.28
▷◁멀리서 가물거리는 불빛  (0) 2015.0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