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두미안 할아버지와 거인 피어리

개마두리 2015. 8. 28. 17:18

 

두미안 할아버지는 숲 속에서 살았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꿩을 잡기 위해 매일 숲 속에 덫을 놓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두미안 할아버지가 마당에 나와 일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까치 한 마리가 날아왔습니다. 까치는 할아버지 머리 위를 맴돌며 지저귀더니, 두미안 할아버지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습니다. 까치를 신통하게 여긴 두미안 할아버지는 까치를 호주머니 속에 넣고 기르기로 했습니다.

 

얘야, 호주머니 속에 얌전히 있거라. 그러면 너에게 맛난 먹이도 주고, 귀여워해 주마. 그렇다고 시끄럽게 굴면 혼날 줄 알아라.”

 

두미안 할아버지가 호주머니 속에 든 까치를 토닥거리며 말하자, 까치는 알아듣기라도 하는 듯 날개를 파닥였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까치를 호주머니 속에 넣고, 간밤에 놓아 둔 덫을 살피기 위해 숲 속으로 갔습니다.

 

가는 길에 두미안 할아버지는 길가에 못 보던 바위가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자세히 보니, 바위의 갈라진 틈새에 자그마한 새둥우리가 있고, 그 안에 검은 반점이 있는 새알이 세 개 들어 있었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그 새알을 꺼내 까치가 들어있는 반대편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걸 갖다 주면 아이들(문맥상 두미안 노인의 손자손녀들인 듯하다 - 옮긴이)이 좋아하겠지. 알에서 새가 나오는 걸 보면 무척 기뻐할 거야.”

 

생각만으로도 흐뭇해진 두미안 할아버지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렸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 옮긴이) 마침내 덫을 놓은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덫에 꿩이 걸려 있기는커녕, 덫이 갈가리 찢겨서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는 큰 발자국이 어지럽게 나 있었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몹시 화가 났습니다.

 

 

아니, 도대체 어떤 놈이 내 덫을 이 꼴로 만든 거야? 내 꼭 이놈을 잡고 말 테다. 감히 내 덫에 걸린 꿩을 훔쳐 가다니 가만두지 않겠어! 잡기만 해 봐라. 다시는 이런 짓을 못 하도록 따끔한 맛을 보여 줘야지.”

 

화가 머리끝까지 난 두미안 할아버지는 급히 발자국을 좇아갔습니다. 발자국은 한없이 이어져 점점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날이 어둑해질 무렵에야 발자국이 끝난 곳에 다다랐습니다. 그 곳에는 커다란 집이 한 채 서 있었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앞뒤 볼 것 없이 그 집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몇 걸음 못 가서 그 자리에 멈추어 서고 말았습니다. 집채만 한 몸뚱이인 숲의 거인 피어리가 꿩의 털을 뽑다가, 뛰어오는 두미안 할아버지를 바라본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거인의 흉측한 모습을 보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저 흉측한 피어리가 금세라도 나를 잡아 으스러뜨릴 텐데, 이 일을 어쩌면 좋단 말이냐. 아이고, 영락없이 저승에 가게 생겼네. 어쩌다가 일이 이 지경까지 되었지? 하지만 기왕 이렇게 된 일, 할 수 없지 뭐. 한번 부딪쳐 보는 거야.’

 

두미안 할아버지는 심호흡을 한 다음, 용기를 내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 이 도둑놈아! 이 천하에 몹쓸 좀도둑놈아. 감히 내 꿩을 훔쳐? 어디, 너 혼 좀 나 봐야 알겠니?”

 

피어리가 놀라서 두미안 할아버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키가 겨우 자기 무릎밖에 오지 않는 작은 할아버지가 매섭게 노려보며 호통을 치는 모습을 보고,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이제까지 피어리를 보고 도망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는 도망치기는커녕 호통까지 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두미안 할아버지의 기세에 눌린 피어리는 잠시 생각해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소. 이 꿩을 할아버지 덫으로 잡았으니, 우리 반씩 나눕시다.”

 

그러나 두미안 할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어림도 없는 소리! 난 너한테 꿩을 나누어 줄 수 없어. 내 덫에 걸렸으니 당연히 내 것인데 반씩 나누다니 당치도 않아. 당장 꿩을 내놓지 않으면 넌 크게 후회하게 될걸!”

 

기왕 내친 걸음, 두미안 할아버지는 더 크게 호통을 쳤습니다. 그러자 피어리도 은근히 약이 올랐습니다.

 

아니, 할아버지는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큰소리를 치는 거요? 나를 이길 만한 힘이라도 있다는 거요? 힘이 있으면 어디 한번 보여 주시오.”

 

피어리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돌 하나를 집어 두미안 할아버지에게 건네 주었습니다.

 

, 이 돌에서 버터를 짜낼 수 있다면 할아버지의 힘을 인정하고 꿩을 돌려주겠소.”

 

그러자 두미안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힘 자랑에도 순서가 있는 법이야. 내가 나이를 더 먹었으니까, 네가 먼저 해. 그러면 나도 내 힘을 보여주지.”

 

좋소. 그럼 내가 하는 걸 잘 보시오.”

 

피어리는 돌을 꽉 쥐고 힘을 주었습니다. 그러자 돌이 으스러지더니, 가루가 되어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왔습니다.

 

, 어떻소?”

 

피어리가 손을 털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두미안 할아버지는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 이게 무슨 버터냐? 돌가루지. , 이제 내 실력을 보여주마.”

 

두미안 할아버지는 호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새알을 하나 몰래 꺼내 돌멩이와 함께 쥐었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가 손에 힘을 주자, 새알이 터져서 손가락 사이로 노른자가 흘러나왔습니다. 피어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이 할아버지는 정말 힘이 세잖아. 이거 만만한 적수가 아닌데.’

 

피어리는 당황해서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이렇게 쉽게 돌에서 버터를 짜내다니, 정말 놀라운 기술이야.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면 내 체면이 말이 아니잖아.’

 

피어리는 이번에는 다른 것을 겨뤄 보자고 했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누가 더 빠른지 내기해 봅시다. 하늘을 나는 새를 잡아오는 사람이 이기는 거요.”

 

할아버지는 싱긋 웃으며 피어리의 제안에 찬성했습니다.

 

얼마든지 좋아. 어서 해 봐. 네가 어떤 새를 잡는지 봐 주지.”

 

두미안 할아버지와 피어리는 넓은 곳으로 나와 하늘을 쳐다보았습니다. 마침 하늘 저 편에 한 무리의 새가 날아가고 있었습니다.

 

피어리는 새를 잡으려고 있는 힘을 다해 하늘로 뛰어올랐습니다. 하지만 새 근처에도 못 가고 땅바닥에 곤두박질치고 말았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그 모습을 보고 배를 잡고 웃으며 피어리를 비웃었습니다.

 

저런, 저런, 넌 참으로 멋진 새 사냥꾼이로구나. 조금만 더 노력하면 새처럼 날아오르기도 하겠던데 그래. 저기 날아가는 새들이 보이기나 해?”

 

 

두미안 할아버지는 말을 마치자마자 새를 좇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잠시 달리며 새를 잡는 시늉을 하다가, 호주머니 속에서 까치를 슬쩍 꺼냈습니다.

 

! 저런!”

 

피어리는 두미안 할아버지의 손 안에서 퍼덕거리는 까치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정말 놀라운 솜씨였습니다.

 

이 노인은 정말 민첩한 사냥꾼이로군. 하지만 이대로 물러서면 다른 피어리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거야.’

 

피어리는 무슨 내기를 하면 이길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한참 궁리하던 피어리가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좋소. 이번엔 마지막으로 누가 더 크게 휘파람을 불 수 있는지 겨뤄 봅시다.”

 

난 아무래도 좋아.”

 

두미안 할아버지는 자신만만하게 대답했습니다.

 

피어리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더니, 힘껏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어찌나 세게 불었던지, 그 입김에 모래폭풍이 일어나고 널빤지가 날아갔습니다. 할아버지는 옆에 있는 나무를 꽉 부둥켜안고서야 간신히 날아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이젠 정말 큰일났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태연한 척 말했습니다.

 

, 이젠 내 차례다. 내가 휘파람을 불기 전에, 너는 눈을 꼭 감고 있어야 할 거다. 그렇지 않으면 네 눈이 튀어나와 버릴지도 모르니까.”

 

 

피어리는 두미안 할아버지가 으름장을 놓자, 두 눈을 꼭 감았습니다. 이제까지의 내기로 볼 때, 할아버지의 휘파람이 얼마나 셀지 짐작이 갔기 때문입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피어리가 눈을 감자, 몽둥이를 집어 피어리의 머리를 힘껏 내리쳤습니다.

 

, 어떠냐? 내 휘파람 소리에 네 머리가 얼얼하지 않느냐? 이젠 고함을 한번 쳐 볼까? 그럼 아마 네 이가 몽땅 빠져 버릴 거다!”

 

그러자 피어리가 머리를 움켜쥐며 애원했습니다.

 

그만, 그만 하시오! 제발 고함만은 지르지 마시오. 할아버지 휘파람 소리에 내 머리가 날아가는 줄 알았소. 내 눈이 튀어나오지 않은 것만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피어리는 정말로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머리를 감싸쥔 피어리는 어떻게 하면 두미안 할아버지를 물리칠 수 있을까 궁리했습니다.

 

이 노인네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어. 그렇다면 꾀를 쓸 수밖에. 이번에는 기필코 꼼짝 못 하게 만들어야지.’

 

드디어 그럴 듯한 방법을 생각해 냈는지, 피어리는 빙긋 웃으며 두미안 할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날이 저물어 할아버지 댁으로 돌아가기는 늦었으니, 오늘은 우리 집에서 하룻밤 묵어 가는 게 어떻겠소?”

 

안 그래도 걱정했는데, 재워 주겠다니 고맙네.”

 

두미안 할아버지는 선뜻 피어리의 청을 받아들였습니다. 피어리는 두미안 할아버지에게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내놓았습니다. 배불리 먹은 할아버지는 저녁식사를 마치자 잠이 쏟아졌습니다. 피어리는 잠자리를 깔아주며 물었습니다.

 

여기서 주무시오. 그런데 할아버지는 자면서 어떻게 변하시오?”

 

할아버지는 난데없는 질문에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 피어리가 이렇게 묻는 데에는 필시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두미안 할아버지는 능청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난 잠이 들면 나무 그루터기로 변하지. 그러면 편안하게 잠들 수 있거든. 그런데 넌 무엇으로 변하지?”

 

나도 내가 어떤 것으로 변하는지는 잘 모른다오. 하지만 난 누웠다 하면 잠이 들고, 숨쉴 때 불과 연기를 내뿜곤 하지요.”

 

피어리가 대답했습니다.

 

두 사람은 곧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피어리는 자리에 눕자마자 코를 골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두미안 할아버지는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잠자는 피어리를 지켜보니, 정말로 숨쉴 때마다 불과 연기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살며시 방을 빠져나와 마당에서 나무 그루터기를 하나 찾아냈습니다. 할아버지는 나무 그루터기를 잠자리로 옮겨 와서는, 거기에 자기 옷을 덮어씌워 놓고,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숨어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피어리의 입에서 뿜어져 나오던 불과 연기가 줄어들더니, 피어리가 기지개를 켜며 일어났습니다. 피어리는 두미안 할아버지가 가져다 놓은 나무 그루터기를 보고 중얼거렸습니다.

 

잘 됐다. 이제 이 골치 아픈 노인네를 해치워 버려야지.”

 

피어리는 커다란 바윗덩이를 들고 와서, 두미안 할아버지의 옷이 씌워진 그루터기를 향해 집어던졌습니다. 그러자 사방에서 마른 불꽃이 튀었습니다. 그 바람에 피어리는 요란하게 재채기를 했습니다.

 

그럼 그렇지. 제아무리 힘이 좋아도 노인네는 어쩔 수 없어. 어이구, 시원하다! 이제야 나를 귀찮게 하는 놈이 사라진 거야.”

 

두미안 할아버지를 해치웠다고 생각한 피어리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자, 피어리는 상쾌한 기분으로 잠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피어리는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젯밤에 분명히 바위를 던져 해치웠던 할아버지가 옆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닙니까? 그 때, 두미안 할아버지도 부스스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어이, 피어리. 잘 잤나? 그런데 어젯밤 내게 떨어진 저 바윗돌은 대체 뭔가?”

 

피어리는 기가 막혀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습니다. 이젠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피어리가 두미안 할아버지에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이보시오. 할아버지가 가져갈 수 있을 만큼 황금을 줄 테니, 그걸 갖고 한시라도 빨리 댁으로 가시오. 내 다시는 할아버지 덫을 건드리지 않으리다.”

 

그렇다면 먼저 황금을 보여 줘.”

 

두미안 할아버지는 시큰둥하게 말했습니다.

 

피어리가 황금이 가득 담긴 자루를 가지고 왔습니다. 할아버지가 들어보니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기분 나쁜 말투로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그래서 이 자루를 가져가는 대신에 여기서 며칠 더 묵을까 하는데, 어떤가? 싫으면 저 자루를 내 집까지 들어가 주든가.”

 

피어리는 두미안 할아버지가 자기 집에서 며칠 더 있겠다는 말에 펄쩍 뛰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피어리에게 자루를 짊어지게 하고 출발했습니다. 자루가 어찌나 무겁던지, 피어리는 다리가 후들거리고 등이 휠 것 같았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피어리가 비틀거리자, 사정없이 재촉했습니다.

 

좀더 빨리 걷지 못하고 이게 뭐야? 난 네가 이렇게 굼벵이인 줄은 몰랐어.”

 

금덩어리를 조금만 쏟게 해 주오. 너무 무거워서 도저히 못 가겠소.”

 

견디다 못한 피어리가 간청했습니다.

 

어림없는 소리 하지 마. 이까짓 자루 하나가 뭐가 무겁다고 엄살이야!”

 

마침내 두미안 할아버지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자루를 내려놓고 숨을 몰아쉬고 있는 피어리에게 할아버지가 말했습니다.

 

여기서 잠깐 쉬고 있어. 내가 집에 들어가서 할멈더러 음식 좀 마련하라고 할 테니 말이야. 여기까지 자루를 들어다 줬으니, 음식을 대접해야지.”

 

두미안 할아버지는 집 안으로 들어가, 할머니에게 귓속말로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지금 밖에 피어리가 와 있소. 하지만 덩치만 컸지 바보나 다름없으니까, 겁낼 건 없소. 이번에 겁을 줘서 보내야 다시는 이곳에 얼씬도 안 할 거요. 그러니 당신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구려.”

 

잠시 후에 두미안 할아버지는 피어리를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여보, 할멈.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음식 좀 내오시오. 몹시 배가 고프니 빨리 좀 갖다 주구려.”

 

 

그러자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저런, 이를 어쩌지요. 빨리 내올 수 있는 음식이라곤 피어리의 머리통과 어제 먹다 남은 조각들뿐이니 말이에요. 그걸로는 모자라지 않겠어요?”

 

이 말을 들은 피어리는 거의 정신이 나갈 지경이었습니다.

 

이크, 여기 있다간 영락없이 잡아먹히겠는걸.’

 

피어리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젖 먹던 힘을 다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머리가 소나무에 부딪치고 얼굴이 가시덤불에 긁혔지만, 그런 것을 상관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피어리는 한참을 달리다가 여우를 만났습니다.

 

왜 그렇게 정신없이 달리세요? 무슨 무서운 일이라도 당했나요?”

 

여우가 물었습니다.

 

말도 마, 난 지금 두미안 할아버지의 집에서 도망 나오는 길이야. 내 생전에 그렇게 무서운 사람은 처음 봤다.”

 

피어리는 여우에게 어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특히 두미안 할아버지의 놀라운 솜씨에 대해서는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들려주었습니다. 이야기가 끝나자, 여우가 깔깔거리며 웃기 시작했습니다.

 

저런, 두미안 할아버지에게 완전히 속아 넘어갔군요. 이봐요, 피어리. 나랑 같이 갑시다. 가서 당신이 당한 만큼 실컷 혼내 주자고요.”

 

여우의 말을 들은 피어리는 그제야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피어리는 여우와 함께 두미안 할아버지의 집으로 갔습니다. 마침 할아버지가 창가에 서 있다가 여우가 피어리를 데리고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또 한 번 꾀를 냈습니다.

 

할아버지는 재빨리 집 밖으로 나가서 여우에게 외쳤습니다.

 

, 여우야. 넌 역시 믿음직스럽고 영리한 내 친구로구나. 내가 놓친 피어리를 다시 데리고 오다니.”

 

그 소리를 듣자, 피어리는 번뜩 정신이 났습니다.

 

어이쿠, 이 여우는 노인네와 한패였구나. 배신자! 감히 나를 속이다니 …….’

 

피어리는 여우의 꼬리를 휙 낚아채서 있는 힘껏 땅바닥에 내동댕이쳤습니다. 그러고는 그 길로 다시 숲 속으로 도망치기 시작했습니다.

 

두미안 할아버지는 도망가는 피어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습니다.

 

잡아라, 잡아! 피어리를 잡아. 그를 놓치지 마라!”

 

두미안 할아버지는 피어리가 달아나고 난 뒤, 여우를 잡아 여우털 모자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위해서는 여우 목도리를 만들었습니다.

 

그 뒤로 두미안 할아버지는 피어리가 가져다 준 황금으로 자식들과 함께 여생을 행복하게 보냈습니다.

 

- 우랄의 옛날이야기

 

(#옮긴이의 말 :다만 우랄이라는 말은 모스크바의 동북쪽이자, 우랄산맥 서쪽에 있는 북우랄 구릉에도 쓰이는 말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북우랄 구릉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우랄산맥 서남쪽의 이야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 우랄 : 우랄산맥이 있는 지역. 더 정확히는 우랄산맥의 서남쪽 지역이다. 우랄산맥은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경계선이자, 유럽 러시아와 시베리아를 나누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13 - 도둑을 잡은 조각상(박영규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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