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잔칫집에 가는 사람

개마두리 2015. 9. 6. 14:24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말랑강 근처에 파무드조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파무드조는 강 상류에 사는 케로모라는 부자가 큰 잔치를 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파무드조는 얼굴 가득 웃음을 지으며 생각했습니다.

 

잔치라고? 잘 됐어. 오랜만에 실컷 먹어 보겠는걸.’

 

파무드조는 부엌일을 하고 있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음식을 조금만 만들었지. 게다가 맛있는 건 도통 구경도 안 시켜 줬으니 …….”

 

하지만 나는 매일 밭에서 일하고 해가 져서야 돌아오잖아요. 집안일은 또 얼마나 많다고요. 그래서 오랫동안 친정에도 못 가 봤잖아요.”

 

파무드조는 아내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래, 그랬지. 하지만 오늘은 잔치가 있으니, 난 거기 가서 실컷 먹고 와야겠어. 당신은 내 걱정일랑 말고 친정에 다녀오구려.”

 

정말이에요? 그럼, 내일 아침 일찍 돌아올게요.”

 

아내는 나들이옷으로 갈아입고서 친정으로 떠났습니다. 파무드조도 목욕을 하고, 가장 좋은 옷을 골라 멋지게 차려 입었습니다. 파무드조는 자신의 나룻배에 올라 잔칫집이 있는 강 상류 쪽으로 노를 젓기 시작했습니다.

 

파무드조는 배를 저어 가면서 마을 사람들이 탄 배를 여러 척 만났습니다. 파무드조는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며 마을 사람들의 배를 지나쳐 갔습니다. 그러다가 파무드조는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른 배들은 모두 하류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파무드조는 하류로 내려가는 배에 바짝 다가가 물어 보았습니다.

 

 

여보쇼, 상류에 있는 케로모 씨 댁에서 잔치가 있다는데 왜 모두들 하류로 가는 거죠?”

 

그야, 하류에 있는 마크무드씨 댁에 잔치가 있으니 그렇지요. 마을 사람들을 모두 초대했거든요.”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큰 소리로 대답하며 지나갔습니다. 파무드조는 천천히 노를 저으면서 생각했습니다.

 

마크무드 씨 댁에서 잔치가 있다고? 그 사람은 아주 인심이 좋지. 잔치를 열면 늘 푸짐하게 차린단 말이야. 아무래도 마크무드 씨네 잔치가 먹을게 더 많겠는걸.’

 

파무드조는 뱃머리를 얼른 하류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러고는 왔던 길을 되짚어 열심히 노를 저었습니다.

 

아주 부지런히 노를 저었기 때문에, 하류로 내려가던 다른 배들을 금세 뒤쫓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그들보다도 더 앞서가기 시작했습니다.

 

파무드조는 강둑 위로 보이는 자기 집을 지나면서 확신에 찬 얼굴로 중얼거렸습니다.

 

아무렴, 마크무드 씨는 손님들을 제대로 대접할 줄 아는 사람이고말고.”

 

파무드조는 곧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을 생각에 더욱 신이 났습니다. 파무드조는 바쁘게 노를 저어 하류로 계속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에는 나룻배 몇 척이 상류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은 파무드조에게 손을 흔들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습니다.

 

뭐가 그렇게도 좋아요?”

 

파무드조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우리는 케로모 씨네 잔치에 가는 길이랍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마크무드 씨네에서도 잔치가 있잖아요?”

 

파무드조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자 나룻배에 탄 사람들이 한꺼번에 대답했습니다.

 

케로모 씨가 오늘 잔치를 위해 투실투실하게 살이 찐 소를 여러 마리 잡았답니다!”

 

파무드조는 노젓기도 멈추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소를 여러 마리 잡았다고? 그렇다면 고기가 엄청나게 많겠는걸. 지난번 마크무드 씨네 잔치 때 먹은 고기는 질기고 맛도 형편없었지. , 그렇다면 …….’

 

파무드조는 다시 뱃머리를 돌려 상류로 올라갔습니다. 파무드조는 이번에도 열심히 노를 저어 앞서 가던 다른 배들을 앞질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둑 위에 있는 자기 집을 다시 지나쳤습니다.

 

파무드조는 조금씩 피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나룻배 한 척이 파무드조의 배를 스치며 하류로 내려갔습니다.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이 파무드조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아니, 왜 다시 상류로 가는 거예요?”

 

케로모 씨네 잔치에 갑니다. 고기를 실컷 먹으려고요. 그런데 댁은 왜 하류로 가지요?”

 

 

파무드조가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이 묻자, 그 사람은 하류 쪽으로 노를 저어 내려가며 말했습니다.

 

마크무드 씨네 잔치에 가서 실컷 먹고, 돈도 얻어 오려고요. 마크무드 씨가 오늘 잔치에 온 사람들에게 돈을 나누어 준다잖아요.”

 

파무드조는 다시 생각에 잠겼습니다.

 

돈까지 준다고? 그렇다면 마크무드 씨네로 가야지.’

 

파무드조는 급히 뱃머리를 돌려 다시 강 하류 쪽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파무드조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강둑 위에 있는 자기 집을 지나쳤습니다. 그러나 이젠 너무 지쳐서 노를 빨리 저을 수가 없었습니다.

 

파무드조는 한참 뒤에야 마크무드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마침 그 집을 지나던 마을 노인이 파무드조를 보았습니다.

 

파무드조, 왜 이리 늦었나? 잔치는 벌써 끝났다네.”

 

잔치가 끝났다고요? 그럼 돈은요?”

 

돈도 모두 나누어 주었지.”

 

파무드조는 그 자리에 멍하니 멈추어 섰습니다. 그러다 다시 정신이 난 듯 강가로 달려가 허둥지둥 나룻배에 올라탔습니다. 파무드조는 부지런히 노를 저어 다시 상류로 올라갔습니다.

 

파무드조는 한참 만에야 케로모의 집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케로모의 집에서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뛰어오는 파무드조를 보고는 한마디씩 했습니다.

 

급하게 뛰어가 봐야 소용없어요. 잔치는 이미 끝났으니까요. 차린 음식도 남김없이 다 먹었어요.”

 

다 먹었다고 …….”

 

파무드조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중얼거렸습니다. 그는 터덜터덜 나루터로 돌아왔지만 노를 잡을 힘조차 없었습니다. 파무드조는 물살에 실려 겨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파무드조는 배가 무척 고팠습니다. 그러나 집 안을 아무리 뒤져 보아도, 먹을 거라고는 마른 생선 한 마리뿐이었습니다. 파무드조는 그걸로라도 배를 채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무드조는 포도주 한 병과 생선을 들고 나룻배로 갔습니다.

 

파무드조는 포도주 병을 배의 가장자리에 올려놓고 배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파무드조가 자리에 앉는 순간, 갑자기 배가 기우뚱하더니 포도주 병이 강물에 풍덩 빠져 버렸습니다. 파무드조는 곧바로 강물로 뛰어들었지만, 포도주 병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파무드조는 하는 수 없이 나룻배로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생선마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사이에 개가 와서 물고 달아나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뒤부터 자바 섬에는 이런 얘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한 잔칫집만 찾아가라. 한 가지 일에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 이랬다 저랬다 변덕을 부리는 사람, 늘 망설이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파무드조처럼 잔칫집이 두 곳이나 있어도 굶고 만다!’

 

- 인도네시아의 옛날이야기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3 - 잔칫집에 가는 사람(정희일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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