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늙은 나그네

개마두리 2015. 9. 8. 11:49

 

아주 추운 겨울날, 늙은 나그네 한 사람이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밤이 되자 살을 에는 듯한 추위와 어둠 때문에 나그네는 더 이상 길을 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그네는 쉴 곳을 찾았습니다.

 

그 때, 커다란 집이 하나 보였습니다.

 

저런 부잣집이라면 하룻밤쯤 신세를 져도 괜찮겠지.”

 

나그네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큰 집 쪽으로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그 집은 어느 날 갑자기 벼락부자가 된 여자가 사는 집이었습니다.

 

나그네는 그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창문이 열리면서 여주인이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늙은 나그네를 본 여주인은 귀찮다는 듯이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왜 남의 집 문을 두드리는 거예요? 늙고 더러운 거지 주제에!”

 

나그네는 조용하고 정중하게 간청했습니다.

 

죄송하지만 하룻밤만 쉬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여주인은 나그네를 향해 다시 소리를 질렀습니다.

 

헛소리 하지 말아요! 자꾸 그러면 개들을 풀어 놓겠어요. 썩 가지 못해요!”

 

늙은 나그네는 하는 수 없이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어두운 밤길을 힘없이 걸어갔습니다.

 

세찬 바람이 불어왔습니다. 눈 몇 송이가 나그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나그네는 다른 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작고 초라해 보였지만, 즐거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는 집이었습니다. 나그네는 창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자 여주인이 나와서 문을 열어 주었습니다.

 

죄송하지만 하룻밤만 묵어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자 여주인이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집은 비록 좁고 시끄럽지만, 편히 쉬었다 가세요.”

 

나그네는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집 안에서는 아이들이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하나같이 다 낡고 해진 누더기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나그네가 물었습니다.

 

아이들 옷이 많이 낡았군요. 그런데 왜 새 옷을 해 주지 않으셨나요?”

 

여주인은 슬픈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저는 남편을 잃고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어요. 옷은 고사하고 빵을 사 먹이기도 어려운 형편이랍니다.”

 

나그네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잠시 후, 여주인은 저녁을 차리더니 나그네에게 식사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나그네는 손을 흔들며 사양했습니다.

 

괜찮아요. 저는 바로 얼마 전에 먹었습니다.”

 

그러고는 들고 다니던 자루에서 음식을 꺼내어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나그네는 구석 자리에 누워 금방 잠이 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었습니다. 나그네는 다시 길을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나그네는 여주인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습니다.

 

당신은 오늘 아침에 하는 일을 저녁때까지 하게 될 것입니다.”

 

여주인은 나그네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그네가 떠난 뒤 곧 그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여주인은 아이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그 떠돌이 노인네조차 우리 아이들이 지저분하다고 말할 정도면,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

 

여주인은 이런 생각을 하다 집에 남아 있는 마지막 옷감을 떠올렸습니다. 집안에 급한 일이 있을 때 팔아 쓰려고 남겨둔 옷감이었습니다. 여주인은 곰곰 생각한 끝에 그 옷감으로 아이들에게 새 옷을 만들어 입히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여주인은 나그네를 매정하게 내쫓았던 이웃 부잣집에 가서 자를 빌려 왔습니다. 그리고 옷감을 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자를 옷감에 갖다 댈 때마다 옷감은 점점 더 길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여주인은 하루 종일 옷감을 쟀습니다.

 

저녁이 되자, 그 집에는 엄청나게 많은 옷감이 쌓였습니다. 온 식구가 평생 동안 옷을 해 입을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제야 여주인은 늙은 나그네가 떠나면서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달았습니다.

 

가난한 집 여주인은 그 날 밤이 되어서야 이웃 부자집에 자를 돌려주러 갈 수 있었습니다.

 

자를 너무 늦게 가져와서 죄송해요.”

 

가난한 집 여주인은 부잣집 여주인에게 모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부잣집 여주인은 그 말을 듣자 시샘이 났습니다. 부잣집 여주인은 곧 하인을 불렀습니다.

 

빨리 말을 타고 가서 그 늙은 거지를 데려와라! 가난뱅이는 누군가가 도와 줘야 한단 말이야. 내가 늘 그렇게 말해 왔잖아!”

 

하인은 (길을 떠난지 - 옮긴이) 다음 날에야 간신히 나그네를 찾아 냈습니다.

 

어이구, 이제야 찾았군요. 빨리 저와 함께 가시지요.”

 

그러나 늙은 나그네는 하인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인은 매우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제가 어르신을 모셔가지 않으면, 주인님이 돈 한 푼도 주지 않고 저를 쫓아내실 거예요!”

 

그제야 나그네는 하인을 따라 말에 올랐습니다.

 

부잣집 여주인은 문 앞에 나와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늙은 나그네가 도착하자, 여주인은 꾸벅 절까지 하면서 반갑게 맞았습니다.

 

나그네를 집 안으로 모신 여주인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잔뜩 내왔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침대까지 마련해 주었습니다.

 

영감님, 편히 쉬세요.”

 

여주인은 웃음을 띠며 말했습니다.

 

나그네는 그 집에서 여러 날을 묵었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록 나그네는 편안히 먹고 마시며 떠날 줄을 몰랐습니다. 여주인은 여전히 나그네를 친절하게 대해 주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약이 올랐습니다.

 

이 늙은이가 도대체 언제 가려고 이러나?’

 

그러나 그 나그네를 함부로 내쫓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그간 나그네를 정성스럽게 대접한 보람이 사라져 버릴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나그네는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야 길을 떠나기 위해 짐을 꾸렸습니다. 여주인은 잔뜩 기대에 차서 나그네를 배웅했습니다. 그러나 나그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여주인은 나그네를 쫓아가며 소리쳤습니다.

 

제발 무슨 말이든 해 주세요. 오늘 제가 무엇을 할 것인지 …….”

 

나그네는 한참 동안 여주인을 쳐다보더니 어렵게 입을 열었습니다.

 

오늘 아침에 하는 일을 저녁때까지 하게 될 것입니다.”

 

드디어 신바람이 난 여주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 안으로 후닥닥 달려들어갔습니다. 여주인은 옷장을 열고 옷장의 맨 꼭대기 선반에 두었던 옷감을 모두 꺼냈습니다. 그러자 먼지가 풀풀 날렸습니다.

 

여주인은 다시 돈항아리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루에 쏟아 놓고 돈을 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또 먼지가 일어났습니다.

 

여주인은 그 먼지 때문에 코가 간지러워 재채기를 터뜨렸습니다.

 

에취! 에취!”

 

여주인이 재채기를 하는 바람에 또다시 먼지 구름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래서 여주인은 다시 재채기를 했습니다. 그러자 더 많은 먼지가 피어올랐고, 그 때마다 다시 재채기를 했습니다.

 

에취! 에취! 에취!”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마당에 있던 닭들이 푸드덕거리며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에취! 에취! 에취!”

 

이번에는 소와 말들이 마구간을 부수고 언덕 너머로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리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귀를 싸맨 채 집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에취! 에취! 에취!”

 

창문이 흔들리고 벽에 금이 갔습니다. 그래도 재채기는 계속되었습니다.

 

에취! 에취! 에취!”

 

부잣집 여주인은 해가 질 때까지 재채기를 해 댔습니다. 마침내는 집이 흔들리면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 에스토니아의 옛날이야기

 

* 에스토니아 : 동유럽에 있는 나라. 이른바 발트 3가운데 하나다. 수오미(핀란드의 공식 국호)의 남쪽, 러시아의 서쪽에 있다. 소련 공산당의 지배를 받다가 냉전이 끝나고 소련이 해체된 뒤 독립했다.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5 - 바보 토니(박남일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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