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재수 없는 사나이

개마두리 2017. 3. 26. 18:20

무굴 제국 궁전의 하루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마당을 쓸던 일꾼들이 지나가는 사나이를 보더니 말했다.


“저기 ‘재수 없는 굴샨’이 지나간다. 우리가 오늘 아침 첫 번째로 저 자의 얼굴을 보았으니, 오늘은 밥을 못 얻어먹게 생겼네.”


“그보다 더 재수 없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


그날 아크바르 황제는 평소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는 시종을 불렀다.


“밖에 누가 있느냐?”


그러나 그 자리에는 굴샨밖에 없었다. 굴샨은 자신이 황제가 그날 아침 처음으로 보는 사람이 되기는 싫었지만, 하는 수 없이 불려갔다.


“예, 폐하.”


“짐의 슬리퍼를 다오.”


황제는 그를 본 순간 흠칫했다.


‘저 자는 모두들 재수없어 하는 자가 아닌가?’


“옷을 갈아입도록 다른 시종을 불러다오.”


“예, 폐하.”


황제가 옷을 갈아입고 나자, 시종이 달려와서 이렇게 전했다.


“폐하, 쿠람 황자(皇子)님께서 지금 몹시 아프셔서 폐하를 찾고 계시옵니다.”


“곧 가마.”


황제는 황자의 곁을 몇 시간 동안 초조하게 지키고 앉아 있었다. 가까스로 황자의 몸에서 열이 내려갔다. 어의는 황제에게 아뢰었다.


“폐하, 이젠 황자님이 고비를 넘겼으니 쉬십시오.”


황제가 늦은 아침을 먹기 위해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시종이 와서 전했다.


“폐하, 버마의 대사가 폐하를 뵈려고 아침 일찍부터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그래, 그래, 곧 가마.”


버마 대사를 보내기도 전에 한 신하가 급히 달려와서 전했다.


“폐하, 긴급히 전해드릴 소식이 있사옵니다. 좋지 않은 소식입니다. 지방에서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폭동이라니! 즉시 조치를 취해야겠다. 그 지역의 사령관을 불러라.”


황제는 회의를 열었다. 회의를 마쳤을 때는 거의 저녁 시간이 다 되어 있었다.


“짐은 무척 피곤하다. 그리고 오늘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먹질 못했어.”


“곧 수라를 대령하겠습니다, 폐하.”


하지만 황제가 수라를 먹으려고 앉는 순간, 찌르는 것 같은 위통을 느꼈다.


“의원을 불러라!”


곧 의원이 와서 진찰을 하고는 이렇게 아뢰었다.


“폐하, 부디 음식은 삼가십시오. 과일즙은 드셔도 좋습니다.”


“아, 알았다 ‥.”


황제는 침대에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야. 이것이 어쩌면 그 굴샨이란 자 때문이 아닐까?’


통증과 피로와 허기에 지친 황제는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그런 자는 주변 사람들에게 위협이 될 뿐이야. 그 자는 살아 있어서는 안 돼.’


다음날 아침, 궁 안 사람들은 이 소식을 주고받으며 웅성거렸다.


“그 재수 없는 굴샨이 처형된대.”


“그거 잘 된 일일세. 난 그놈만 보면 괜히 불안했거든.”


하지만 비르발은 마음이 편치 못했다.


‘폐하가 이성을 되찾으시게 해 드려야겠군. 저 가엾은 사람은 아무런 죄도 없어!’


그는 황제께 나아가서 아뢰었습니다.


“폐하, 신(臣)은 굴샨을 위해서 변호하고자 합니다. 그 자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서 어전에서 그에게 몇 가지를 물어보아도 될까요?”


“좋소, 승상. 해 보시오.”


곧 굴샨이 불려왔다.


“굴샨, 말해 보게. 어제 아침 일과를 시작할 때 누구를 만났는가?”


“주위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죠.”


“그러면 어제 그대가 맨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누구인가?”


“황제 폐하입니다.”


“폐하, 폐하께선 이 자의 얼굴을 본 것이 어제의 그 모든 말썽을 일으킨 화근이라고 주장하십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는 어제 아침 맨 처음으로 폐하의 용안(임금의 얼굴 - 옮긴이)부터 뵈었기 때문에 애꿎게도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재수가 더 나쁜가요? 그리고 그것은 누구의 책임입니까?”


“과연 경이 옳소. 짐은 짐의 처지만 생각하고 있었어! 경이 짐을 죄 없는 자를 벌하는 잘못으로부터 구해 주었도다. 승상, 저 가엾은 자를 풀어 주시오.”


-『비르발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을 해』(이균형 엮음, 정택영 그림, 정신세계사 펴냄, 서기 2004년)에서 퍼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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