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대답은 ‘안 돼’

개마두리 2017. 3. 24. 23:17

아크바르 황제(무굴 제국의 황제 - 옮긴이)의 신하인 ‘술탄 칸’은 황실에서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영리하지만 교활하기로 악명 높은 자신의 아들을 중책(重責. 무거운[重] 책임이나 직책 - 옮긴이)에 앉히려고 여러 달 동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날마다 아들을 어전회의에 데리고 나와서 기회를 엿보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이 날마다 벌이는 짓을 예리한 비르발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 술탄 칸이 못된 아들을 데리고 나오기 시작하는 것을 보아하니, 비어 있는 재무장관 자리를 노리는 것이 분명하렷다. 흐음 …….’


며칠 뒤, 아침에 어전회의가 열렸는데, 비르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크바르 황제가 신하들에게 물었다.


“승상(비르발 - 옮긴이)은 어디 있소?”


“폐하, 아직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승상이 왜 늦지?”


술탄 칸은 비르발 때문에 황제가 노여워하고 있는 이 때야말로 기회라고 생각하고 재빨리 나섰다.


“폐하, 비르발이 요즘 어전회의를 소홀히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제국의 신하가 어떻게 감히 어전회의에 늦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흐음 ….”


황제는 그것이 아끼는 신하인 비르발에게 던져진 ‘덫’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짐짓 이렇게 대꾸했다.


“승상에게 따끔한 교훈을 줘야겠군. 그렇지 않나?”


“물론입니다, 폐하.”


“경에게 좋은 생각이 있소?”


“이러면 어떨까요? 오늘 승상이 폐하께 올리는 말씀에 모두 거절로써 대답하신다면요? 그러니까 그의 제안에는 무조건 ‘안 돼.’하고 대답하시는 것입지요 ….”


“그거 괜찮은 벌이로군. 그러면 짐은 승상이 하는 말에는 무조건 ‘안 되오.’하고 대답하겠소.”


아크바르 황제는 이렇게 말하면서 이번에는 비르발이 어떻게 대처할지를 지켜봐야겠다는 은근한 기대를 품었다. 황제는 속으로 ‘그와 이런 “놀이”를 해본 지도 꽤 오래 됐군.’하고 생각했다.


잠시 후, 비르발이 도착했다.


“승상, 무엇 때문에 늦었소?”


황제가 물었다.


“아내가 갑자기 몸이 불편해서 …….”


“경의 말을 믿을 수가 없도다.”


비르발은 황제의 반응에 한순간 당황했다. 하지만 곧 술탄 칸의 표정으로부터 칸이 어떤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사실입니다, 폐하. 신(臣)의 사과를 받아 주시옵소서.”


“안 되오. 거절하겠소.”


“그렇다면 나랏일을 논의하기 시작할까요?”


“안 되오, 하지 않을 거요.”


비르발은 곧 자신에게 주어진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안 되오.”가 이 “놀이”의 이름이로군. 그렇지, 알았어 ….’


“그렇다면 어전을 물러나서 집에 돌아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안 되오. 허락하지 않겠소.”


술탄 칸은 ‘바로 이 때다.’하고 생각하고는 일어나서 (자신의 - 옮긴이) 아들에게 중책을 맡겨줄 것을 황제께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그가 막 입을 열려던 찰나, 비르발이 다시 나섰다.


“하지만 오늘 반드시 올려야 할 청이 있습니다. 폐하, 술탄 칸의 아들 ‘알람’을 새로운 재무장관으로 앉혀 주십시오.”


“안 되오!”


아크바르 황제는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황제는 속으로 ‘역시 비르발이 술탄 칸의 잔꾀를 멋지게 받아넘겼군. 이젠 그도 다시는 잔꾀를 못 부리겠지.’하고 생각했다.


다음날부터 (무굴 제국의 - 옮긴이) 어전에서는 악명 높은 두 사람(술탄 칸과 그의 아들인 알람 - 옮긴이)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비르발 아니면 누가 그런 생각을 해』(이균형 엮음, 정택영 그림, 정신세계사 펴냄, 서기 2004년)에서 퍼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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