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들쥐와 민가에 사는 쥐

개마두리 2017. 5. 4. 21:57

들에 사는 쥐와 민가(民家. 일반 백성들[民]이 사는 집[家]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에 사는 쥐가 만났다. 민가에 사는 쥐는 자기가 얼마나 잘 사는지 들쥐한테 자랑하고 싶어서, 들쥐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왔다.


민가의 사는 쥐의 집은 부잣집 곳간이었다. 곳간을 보니 쌀도 있고, 보리와 콩도 있고, 팥과 밤뿐 아니라 고기도 많이 쌓여 있었다. 들쥐는 ‘민가에 사는 쥐는 참 좋은 데서 사니 행복하겠구나.’하고 부러워했다.


민가에 사는 쥐는 들쥐를 대접하느라고 떡이며 고기, 밤이랑 여러 가지를 갖다 놓고 먹으라고 했다. 들쥐가 막 먹으려고 하는데, 곳간 문이 활짝 열리며 (부잣집 - 옮긴이) 주인이 들어왔다. 쥐들은 겁에 질려 먹지도 못하고 얼른 숨었다.


주인이 나가자, 이제 먹을 것 앞에 나가서 다시 먹으려는데, 또 곳간 문이 열리며 그 집 며느리가 들어왔다. 쥐들은 또 나가 숨었다. 며느리가 나간 뒤, 이번에는 아이가 들어왔다. 쥐들은 또 나가 숨었다. 아이가 나간 뒤 다시 (음식을 - 옮긴이) 먹으려 하는데, 이번에는 머슴이 들어왔다. (그래서 두 쥐는 - 옮긴이) 또 기겁을 하고 나가서 숨었다. 머슴이 나간 뒤에는 고양이가 살짝 들어왔다. 그래서 (두 쥐는 - 옮긴이) 도망쳐 쥐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고양이는 나가지도 않고 오래오래 앉아 있었다. 쥐들은 먹을 것을 눈앞에다 두고 애만 태웠다.


들쥐가 생각해 보니, 들에 살 때 이런 일이 통 없었다. 먹고 싶으면 언제나 마음 놓고 먹고 나가고 싶으면 언제나 마음 놓고 나가곤 했는데, 민가에 와 보니 그렇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는 살 데가 못 된다 하면서 얼른 들판으로 돌아왔다.


-『한국구전설화』(임석재 선생이 모은 설화들을 실은 책)에 실린 배달민족의 옛날이야기


-『한국의 우언』(김 영 엮음, 이우일 그림, 현암사 펴냄, 서기 2004년)에서 퍼옴


※옮긴이의 말 :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배달민족이라면(또는 한국 시민이나 조선 공화국의 공민[公民]이라면), 미안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를 덧붙여야겠다. 내가 볼 때 - 그리고 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 이 이야기는 배달민족의 순수한 창작물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먼저 이야기의 뼈대가 서양의 옛날이야기인 <시골 쥐 도시 쥐>와 똑같고, 가르치는 주제도 똑같기 때문이다.


내가 대학교와 대학원에서 배운 바에 따르면 <시골 쥐 도시 쥐> 이야기는 고대 로마제국 시절에 쓰인 글에도 나오고, ‘네이버 백과사전’은 아예『이솝 우화』에 이 이야기가 나온다고 설명하므로, 그 두 가지 사실대로라면 개화기인 서기 19세기 말에『이솝 우화』가 조선말로 옮겨져 조선 사회에 소개된 뒤, 그것을 들은 조선 백성들이 그 이야기를 자신의 문화를 바탕으로 뜯어고쳐서 이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봐야 한다.


(단, 나는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알다시피 고대와 중세에는 초원의 길과 비단길[실크로드]을 통해 많은 서아시아/중앙아시아 문물이 동아시아로 흘러들어왔고, 그렇다면 헬라스에서 만들어져 서아시아로 전해진『이솝우화』가 다시 중앙아시아를 거쳐 북중국으로 들어와 - 아니면 중앙아시아에서 몽골초원을 지나 - 고구리[高句麗]로 건너갔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또는 중앙아시아와 몽골초원에 살면서 서아시아와 로마와 접촉했던 훈[흉노]계 선비족[나중에 경상북도에서 계림국을 세우는 사람들]이『이솝우화』를 전해들은 뒤, 나중에 고구리 군에게 밀려 한반도의 경상북도로 달아날 때 그 이야기를 가져와서 퍼뜨린 건 아닌지[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이다].


어느 분석[또는 가설]을 따르건, 이 이야기는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 내용이나 줄거리나 주제나 주인공은 그대로 두고 - 풍속/땅 이름/사람 이름 따위를 배달민족의 그것으로 바꾸어서 고친 것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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