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쥐와 고양이

개마두리 2017. 5. 4. 23:33

고 씨네 집 고양이가 쥐를 잘 잡아서, 뭇 쥐가 두려워하며 방자히 굴지 못했다. 그래서 (몇몇 쥐는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 이상한 바람소리만 들어도 반드시,


“고양이가 온다!”


하고 소리를 질러 쥐들이 숨으니, 이 때문에 쥐들도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 그들은 누추하게 지내며 종족을 퍼뜨려 왔으나, 늘 먹을 것이 없을까 근심했다.


어느 날 쥐들은 종족들을 모아놓고 의논했다.


“누가 고양이를 죽일 것인가? 우리가 꼭 해야 하는데.”


어떤 쥐가 말했다.


“이것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오. 차라리 방울 하나를 매달아서 방울소리를 듣고 쉽게 피하는 것만 못하오.”


그러자 늙은 쥐가 탄식했다.


“너희는 이제 다 죽게 될 것이다. 너희가 사람의 방울을 훔친다 한들 누가 감히 고양이 목에 달 것이냐? 너희는 (방울을 - 옮긴이) 훔칠 수도 없고, 방울을 (고양이한테 - 옮긴이) 달지도 못한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도둑질도 막는데, 너희가 도둑질하는 것을 막지 못하겠느냐? 너희는 힘을 다 써보기도 전에 굶주려 죽을 것이야.


하지만 너희가 맡은 바 직분(職分. 마땅히 해야 할 본분 - 옮긴이)을 다 한다면, (사람의 집에 있는 곡식 대신 - 옮긴이) 남쪽 산의 상수리(상수리나무의 열매. 호두와 마찬가지로 견과고 사람이 먹을 수 있으며, 집짐승의 먹이나 약재로도 쓰인다. - 옮긴이)와 북쪽 산의 도토리는 다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 (너희가 - 옮긴이) 제 할 일을 다 하지 않고 (사람의 집에 살면서 사람이 쌓아둔 곡식과 푸성귀와 과일과 생선과 고기를 훔쳐 먹음으로써 - 옮긴이) 사람들에게 해만 끼치려고 하므로 고양이가 공을 세울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너희가 (사람들에게 - 옮긴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고양이의 ‘공’도 없어지게 돼!


내 말은, 우리가 해를 입지 않고 누추하게라도 지내면서 (자손을 - 옮긴이) 퍼뜨릴 수 있는 까닭은 고양이의 덕이라는 이야기다. 고양이가 죽으면, 우리도 얼마 지나지 않아 망하고 말아!”


그런 일이 있은 뒤, 고양이가 개에게 물려 죽었다. 늙은 쥐는 매우 슬퍼하며 눈물을 줄줄 쏟았다. 쥐들이 말했다.


“개가 (우리의 - 옮긴이) 원수를 죽여주었는데, 왜 슬퍼하십니까? 즐거워하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러자 늙은 쥐가 화를 냈다.


“너희가 어찌 알겠느냐? 우리는 그늘진 곳에서 사는 부류로 성질이 탐욕스럽다. 탐욕만 부리고 그칠 줄 모르면 화를 입을 것이야.


이제 우리를 막는 고양이가 없으니, (너희는 - 옮긴이) 반드시 담벼락에 구멍을 내겠지. 분명 책을 갉아먹을 것이며, 옷을 (쏠거나 그것에 똥을 싸서 - 옮긴이) 더럽히고, 먹을 것을 훔칠 뿐 아니라, 진귀한 보물에 흠집을 낼 것이다. 이런 짓을 그치지 않고, 도둑질을 더욱 방자하게 할 것이니, 사람들이 모아 놓은 것이라면 그 무엇인들 해치지 않겠느냐?


너희가 두려움을 알아서 감히 방자하게 굴지 못하고, 굶주림을 참고 슬기(지혜[智慧]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 옮긴이)를 기르며, 죽을 때까지 놀고 즐기면서도 해를 입지 않았던 것은 고양이 덕분이었어. 이제 고양이가 죽었으니, (우리에게 - 옮긴이) 화가 닥칠 것이다.”


늙은 쥐가 마침내 자식들을 데리고 달아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니, 쥐들은 서로 쳐다보며 비웃었다. 그러고는 드디어 고씨네 집에 쳐들어가 담벼락에 구멍을 내고, 책을 갉아먹으며, 옷을 더럽히고, 먹을 것을 훔칠 뿐 아니라, 진귀한 보배에 흠집을 내는 등 방자하기 그지없었다.


마침내 (집주인 - 옮긴이) 고(高)씨가 이들을 미워하여 종들을 데리고, 날카로운 삽으로 쥐구멍을 파서 (그 앞에 - 옮긴이) 불을 질러 연기를 뿜고 뜨거운 물을 그 속으로 흘려보냈다. 그리고 날랜 고양이를 쥐구멍 앞에 두어, (바깥으로 - 옮긴이) 달아나는 쥐들을 잡아먹게 하였다. 쥐들은 다 죽고, 오직 (일찌감치 산속으로 달아난 - 옮긴이) 늙은 쥐와 그의 식구들만 살아남았다.       


- 이광정 선생의 책『망양록(亡羊錄)』에 나오는 우언


(『망양록』: 조선 후기에 이광정(李光庭)이 엮은 한문 단편집. 당시 민중들의 입을 통해 전해 오던 이야기/옛 사람이 한 말들 가운데 세상을 다스리는 데에 도움이 될 만한 21편의 이야기를 세련된 문장으로 엮어 놓은 이야기 모음이다. 이광정의 문집인『눌은집(訥隱集)』 권21에 실려 있다. 작품의 저작연도는 정확하지 않으나 저자의 60세 이후의 만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이 추측대로라면, 이광정 선생이『먕양록』을 엮은 때는 서기 1734년 이후임이 분명하다)


-『한국의 우언』(김 영 엮음, 이우일 그림, 현암사 펴냄, 서기 2004년)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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