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늘 불만스러운 어느 유목민 소년의 이야기

개마두리 2022. 11. 9. 22:03

“어느 유목민 소년의 이야기가 생각나는군. 넓은 사막 어느 오아시스에 어떤 소년이 살고 있었다. 그는 항상 시무룩한 상태였지. 그래서 사람들은 그 소년을 가리켜 ‘항상 불만스러운 소년’이라고 불렀지. 

왜 그 소년이 시무룩했냐고? 그 소년의 눈에는 사물의 불합리함과 만물의 약점이 극명하게 들어왔기 때문이지. 그래서 그 소년은 자신이 실수투성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여겨서 그렇게 불만족스러운 상태였다. 그 소년은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지.

그래서 소년의 부족을 다스리던 추장은 소년이 항상 시무룩한 것을 보다 못해 어느 날 소년을 사막으로 보내었지. 대(大)사막 말이야. 사막은 넓고, 볼품 없고, 황량하지만, 묻는 자에게 대답을 해주거든. 그리고 현명한 추장은 그것을 알고 있었지.

소년은 추장의 조언에도 명백한 모순을 발견했지만, 잠자코 그 조언에 따랐다. 그래서 소년은 낙타 젖이 든 주머니 하나를 든 채 사막으로 나아갔지.

소년은 해가 뜰 때 출발했지. 그리고 해가 가장 뜨거운 시간 동안 계속해서 사막을 향해 똑바로 걸어갔어. 그것은 완전히 미친 짓이야. 가장 뜨거울 때의 사막은 어떤 생물도 견디지 못하거든. 게다가 길을 잃을 가능성도 엄청나고. 햇빛이 뜨겁게 내려쪼일 때의 사막은 움직이지.

그러니까, (모래가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꿈틀댄다 ……, 춤을 춘다. 음, 너희들의 말에는 사막의 춤을 설명할 말이 없군. 어쨌든 그런 상태야. 사막은 실제로 살아 움직이거든. 거기엔 모래밖에 없지만.

그러나 소년은 걸어갔어. 한참을 걸어갔지. 점점 뜨거워지는 햇살에 빗발 같은 땀을 흘리다가, 소년은 낙타 젖을 꺼내어 마시기 시작했지. 

그러다가 소년은 전갈을 만났지. 소년은 더위를 탄 데다가 지쳤지만, 전갈의 모습을 보고는 참을 수가 없었어. 자신의 걱정거리도 잊은 채 소년은 말했지.

‘이봐, 저걸 좀 보란 말이야. 우습지도 않잖아. 전갈의 무기는 그 무서운 독침이지. 그런데 왜 그게 뒤에 달려 있느냔 말이야. 전갈이 뒤로 걷는 생물이기라도 한가? 전갈도 앞으로 걸어. 그러니까 당연히 그 무기인 독침은 앞에 달려 있어야지. 뒤에 달려 있다 보니까, 꼬리를 꺾다 못해 허리까지 꺾으면서 공격해야 되잖아.’

소년은 불만스러운 어조로 그렇게 말했지.

그러자 전갈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지.

‘멍청한 소년아. 독침은 나의 가장 소중한 것이다. 그것이 떨어져버리면 난 무력해진다. 그런데 그 독침을 마치 선물 보따리라도 되는 양 앞에 내밀고 다녀야 된단 말인가? 누구든지 뜯어갈 수 있도록?’

그러자 불만스러운 소년은 말했어.

‘그건 궤변이다. 독침은 쓰기 위해 달려 있지, 보호하라고 달려 있지 않단 말이야.’

‘글쎄, 만일 독침을 써야 할 지경에 빠진다면, 그게 앞에 달려 있는가 뒤에 달려 있는가 하는 문제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 난 그런 지경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겠어.’

소년은 전갈의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전갈은 그냥 걸어가 버렸고, 소년도 자신의 일로 바쁘기 때문에 둘은 그냥 헤어졌지.

소년은 뜨거운 태양빛을 온몸에 받으며 걸어갔지. 잠시 후 소년은 멈춰서서 목을 축이기 위해 주머니를 들어올렸지. 

소년은 낙타젖을 마시다가 방울뱀을 만나게 되었어. 그런데 방울뱀은 꼬리를 촤르르 흔들면서 두 마리의 쥐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니까 쥐들의 등 뒤에서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지. 쥐들은 뭔가를 먹느라 정신이 없었고.

방울뱀은 꼬리를 흔들어 소리를 낼 수 있지. 우리는 그것을 ‘죽음의 음악’이라고 부른다. 어쨌든 쥐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방울뱀의 소리를 들으며 서 있었지. 

그 광경을 본 소년은 또 참을 수가 없게 되었어. 소년은 혼자말로 말했어.

‘이건 정말 지독한 고문이야! 방울뱀은 고기를 먹고 산단 말이야. 그래서 사냥을 해야 돼. 그런데 그런 방울뱀에게 소리 나는 꼬리를 달아주다니! 저건 평생을 따라다니는 족쇄나 다름없어!’

소년이 그렇게 말했을 때였어. 갑자기 방울뱀이 휙! (하고 – 옮긴이) 날았지. 그리고 쥐들 중 작은 놈 하나를 덥석 물었어. 작은 놈이 잡힌 덕분에, 큰 놈은 달아날 수 있었지. 

소년은 어이가 없었어.

달아난 큰 쥐는 멀리서 애처로운 눈으로 방울뱀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았지. 소년은 기가 차서 (큰 쥐에게 – 옮긴이) 말했어.

‘이봐, 방울 소리를 듣지 못했어?’

‘물론 들었지! 여기 달려 있는 귀가 보이지 않아?’

그러자 소년은 벌컥 화를 내면서 말했어.

‘그런데 왜 달아나지 않았던 거야? 바로 등 뒤에서 방울 소리가 들려왔잖아?’

그러자 쥐는 슬픈 가운데서도 어리석은 소년을 타이르듯이 점잖게 말했지.

‘방울 소리가 어쨌다는 거야? 방울 소리가 우리를 잡아먹기라도 하나? 우리의 문제는 방울뱀의 이빨에 있지, 그 꼬리에 있지 않아.’

소년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뭐라고 대답하려고 했지만, 그때 방울뱀은 식사를 끝내었지. 그러자 소년과 이야기하던 쥐는 바삐 달아났어. 그 모습을 보면서 소년은 투덜거렸지.

‘우습지도 않아. 멍청한 쥐 같으니. 방울 소리가 들리는 곳에 방울뱀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일이잖아. 도대체 꼬리와 몸이 따로 다니기라도 한다는 말이야?’

소년은 대충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걸어갔지.

그리고 잠시 후, 소년은 지칠 대로 지쳐 목을 축이다가 낙타를 보게 되었지. 소년은 목을 축였는데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이 화가 나서는 목이 꽉 막히는 기분이 들었어. 소년은 거의 발작하듯이 외쳤지.

‘저걸 좀 보라구! 저, 저것! 난 도저히 못 참겠어. 낙타는 말보다 훨씬 빠르단 말이야! 다리도 더 길고, 힘도 더 강해! 그런데 등에 저 커다란 혹이 달려 있어서 빨리 달리지 못한단 말이야!’

소년은 목이 꽉 막힐 듯이 화가 나서 그렇게 외쳤지. 그러자 낙타는 소년을 바라보며 말했지.

‘소년. 난 빠르게 달릴 일이 없는걸.’

‘그럴 일이 있어도, 빨리 달리지는 못할 거잖아?’

‘일어나지 않은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안 그래?’

‘지금 빨리 뛸 필요가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영원히 빨리 뛸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

‘영원히 그럴 필요가 없을 수도 있지.’

소년은 벌컥 화를 내고 싶어졌지. 하지만 낙타는 자신의 일을 찾아 걸어가 버렸지. 무려 세 번에 걸쳐 바보 취급을 당한 소년은 몹시 화가 나게 되었다. 하지만 추장의 명령은 무시할 수 없었고, 그래서 항상 불만스러운 소년은 계속해서 나아갔지.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소년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황량한 모래 벌판에 섰지. 사막 중에서도 완벽하게 모래만 있는 사막 말이야.

그리고 소년은 모래 언덕 위에 서서 모래 때문에 깔깔해진 목을 축이고는 말했지.

‘이봐. 뭐, 여기까지 왔으니 말은 해야겠어. 온 세상에 대한 모든 것을 질문하다간 나도 당신(모래사막 – 옮긴이)만큼이나 나이를 먹게 되겠지.

난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지쳐 쓰러질 때까지 질문하진 않겠어. 

너에 대한 한 가지 질문을 하지. 도저히 눈 뜨고 봐줄 수 없는 이 모래! 도대체 이 많은 모래가 왜 있는 거야? 

모래 위에선 곡식도 자라지 않아. 그 위에선 어떤 생물도 살 수 없어. 전갈들도 사실 이런 날씨엔 돌아다니지 못한다구. 선인장도 이런 모래사막에선 살 수 없잖아. 

도대체 누구에게도 좋은 일이 되지 못하는 이런 모래가 왜 이리도 많이, 그것도 넓게 쌓여 있는 거지? 하는 일이라곤 태양의 열을 흡수하여 지글지글 타오르는 일밖엔 없잖은가.’

소년은 대충 이런 식으로 질문했지.

그렇지만 사막엔 입이 없다. 사막이 무슨 대답을 하나. 모래만 가득가득 쌓여 있는데. 

소년 역시 대답을 기대하진 않았지. 소년은 불만에 가득 차 있었지만, 최소한 사막이 대답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만스러워하진 않았지.

소년은 잠시 증오스러운 눈으로 고요한 사막을 쏘아본 다음, 그대로 몸을 돌려 지금껏 걸어왔던 길을 되짚어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사막이 움직여버렸지. 소년은 길을 잃었어. 돌아오는 길을 도저히 알 수가 없게 된 거야.

태양이나 그림자를 본다는 것은 어느 정도 길이 있을 때의 이야기이지. 사막엔 길이 없다. 조금만 빗나가도 터무니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걷게 되는 것이 사막이야.

우물도 없고, 바위도 없는 완전한 모래사막에선 누구도 길을 찾을 수 없다. 대상(隊商. 낙타나 말에 물품을 싣고 떼를 지어 먼 곳을 다니면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무리. 다른 말로는 ‘카라반’ - 옮긴이)들도 그런 곳으로는 다니지 않는다.

소년은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걸어갔지. 눈에 익은 선인장이나 바위 등이 나타나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그런 것은 나타나지 않았다. 소년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하늘을 향해 고함을 질렀지. 주로 되지도 않는 욕설들이었어.

그렇게 미친 듯이 걸어가다가, 소년은 아까 만났던 낙타와 마주치게 되었지. 낙타는 지치고 초라한 몰골을 한 소년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했다.

‘소년, 그 주머니를 버리는 것이 어때?’

‘뭐라구?’

낙타의 말에 소년은 손에 들고 있던 (낙타 – 옮긴이)젖 주머니를 바라보았지. 낙타는 바로 그 주머니를 가리킨 거야.

‘그걸 버리면 몸이 가벼워질 테니, 더 빨리 걸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말도 안 돼. 더 빨리 걸으려다가 목이 말라 죽을지도 몰라. 이 주머니는 길을 찾을 수 있는 더 많은 시간을 약속한다구.’

‘그런가?’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지. 소년은 낙타를 쏘아본 다음, 계속해서 걸어가기 시작했어. 최소한 아까 마주쳤던 낙타를 만난 이상, 방향은 똑바로 잡은 셈이거든. 그래서 소년은 다시 기운을 차려 걸어가게 되었지.

그러다가 소년은 어느 모래 언덕을 돌아가다가 방울소리를 듣게 되었지. 소년은 당황했어. 방울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방울뱀이 있다는 뜻이지. 하지만 소년은 다시 생각해 보았지. 

아까의 그 방울뱀은 쥐를 포식했지. 방울뱀은 보통 식사를 하고 나면 소화하기 위해 한참 동안 움직이지 않거든. 그래서 소년은 그냥 걸어갔지. 

그때 모래 언덕 위에서 쥐가 나타나서 말했지.

‘이봐, 방울 소리가 들리지 않아?’

‘물론 들려!’

‘아, 그래?’

소년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지. 소년은 기분 나쁜 얼굴로 쥐를 쏘아본 다음 계속 걸어갔어. 역시 방울뱀은 공격하지 않았지만, 소년은 몹시 기분이 상했지. 게다가 지쳤기 때문에 손에 든 주머니는 엄청나게 무겁게 느껴졌지.

소년은 그것을 버리고 싶어졌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어. 애초에 버릴 수 없는 것이면 고민도 없었을 테지만.

그렇게 기진맥진하여 나아가던 소년은 뜨거운 모래밭에서 걸어가고 있는 전갈을 만나게 되었지. 전갈은 소년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음울한 목소리로 말했지.

‘이것 봐. 왜 그것을 들고 다니는 거지?’

‘뭐야? 목이 말라 죽어버리라는 말이야?’

‘어차피 그것은 모두 네 입 속으로 들어갈 것이잖아. 그러니 다 마셔버리고 걸어가면 되는 거 아냐? 왜 힘들게 그것을 들고 다니는 거지?’

‘지금은 목 마르지 않아!’

‘그래? 목 마를 때를 대비해서 가지고 다니는 거로군. 그렇다면 좀더 조심하는 것이 좋겠군.’

‘무슨 뜻이지?’

‘그 주머니는 새고 있어.’

소년은 놀라서 주머니를 바라보았지. 과연 아래쪽에서 낙타젖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어. 얼마 남지도 않은 낙타젖을 그렇게 낭비해 버린 데 대해서 소년은 크게 낙심했지.

소년은 일단 주머니를 거꾸로 들었지. 거꾸로 들면 잡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주머니야. 그래서 소년은 그것을 가슴에 안다시피 한 채 기진맥진해서 걸어야 했지.

사막의 모래들이 붉게 변할 때, 소년은 쓰러질 것 같았지만, 힘들게 다리를 움직여 추장의 천막으로 걸어갔어.

… 기다리던 추장은 소년을 바라보다가 말했지.

‘무엇을 보고, 뭘 깨달았느냐?’

‘사막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가도 가도 모래, 모래뿐이었어요. 아무것도 깨닫지 못했어요.’

그러자 추장은 소년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지.

‘그런가? 이상하군. 낙타와 쥐와 전갈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 주었는데.’

‘예? 아, 그 어리석은 동물들 말인가요?’

그러자 지혜로운 추장은 말했지.

‘그 동물들의 이야기는 좀 다르던데. 그 동물들은 네가 마치 낙타가 매달고 다니는 혹처럼 무거운 주머니를, 전갈이 꼬리를 돌보듯이 소중히 끌어안은 채, 방울뱀 소리의 한가운데를 걸어가고 있다고 전해 주었다.’

‘…… 그래요. 하지만 사막 자체에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사막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어요.’

‘글쎄. 내 생각에 사막은 낙타와 전갈과 쥐를 보여준 것 같은데.’

그러자 소년은 아무런 말도 못하게 되었지.” 

- 이영도, 『 드래곤 라자 』 제 8권, 233 ~ 247쪽

- 『 드래곤 라자 』 제 8권(이영도 지음, ‘(주)황금가지’ 펴냄, 서기 1998년)에 나오는, 자이펀 사람 ‘운차이’가 주인공 ‘후치 네드발’ 일행에게 들려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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