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모든 일에는 까닭이 있다

개마두리 2020. 5. 21. 01:07

무굴 제국의 아크바르 황제(아래 황제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에게는 ‘비르발’이라는 신하가 있었다. 비록 황제는 무슬림이고 비르발은 힌두교 신자였지만, 비르발은 그 슬기를 인정받아 무굴의 승상이 되었다. 두 사람은 늘 함께 다니면서 다양한 주제를 토론했다. 그러나 비르발에게는 황제의 신경을 건드리는 한 가지 버릇이 있었는데, 다름 아닌 언제나 “모든 일은 까닭이 있어서 일어납니다.”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한 번은 황제가 검술 훈련을 받다가 오른쪽 엄지손가락이 잘렸다. 그것을 본 모든 신하가 두려움에 휩싸였지만, 비르발만은 아무런 동요를 하지 않고 서 있었다. 그것을 본 황제가 말했다.

“승상, 짐의 엄지손가락이 잘려서 짐이 피를 흘리는데, 경(卿)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서 있구려.”

그러자 비르발은 말했다. 

“신(臣)은 당연히 (이 일을 - 옮긴이) 염려하옵니다. 하지만 신은 모든 일은 다 까닭이 있어서 일어난다는 것을 아옵니다. (그러니 - 옮긴이) 이 일은 좋은 결과를 불러올 것이옵니다.”

황제는 자신이 괴로워하며 신음하고 있는데도, 비르발이 철학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자, 화가 나서 소리쳤다.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그대는 짐이 죽기를 바라는가? 여봐라, 승상을 당장 지하 감옥에 가두어라!”

비르발은 호위병들에게 끌려가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이 또한 까닭이 있어서 신(臣)한테 일어나는 일이옵니다. 결국은 좋은 일이 될 것이옵니다.”

황제는 손가락의 절반을 잃었을 뿐, 곧 부상이 나았다. 비록 이야기를 나눌 조언자인 비르발이 그립기는 했지만, 그가 부적절한 말을 한 것을 생각하면 화가 풀리지 않았다.

얼마 뒤, 황제는 밀림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호위병들보다 앞서서 숲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숨어 있던 원시부족(바라트에는 서기 20세기 중반까지 원시인처럼 살았던 소수민족들이 많다. 이들은 무슬림도, 불교도도, 자이나교도도, 시크교도도, 힌두교도도 아니었다 - 옮긴이)이 황제를 덮쳤다.

황제는 그들의 그물에 휘감긴 채, 밀림 속 광장으로 끌려갔다. 부족민들은 그가 누군지 몰랐고, 그것을 신경 쓰지도 않았다. 그들에게 황제는 단지 ‘밀림의 신(神)에게 바칠 희생물’일 뿐이었다.

그들은 희생 의식에 맞게 포로(황제 - 옮긴이)의 옷을 다 벗기고, 그의 몸에 알록달록한 장식들을 달았다. ‘포로’가 제단으로 끌려가는 길목에서는 부족민들이 춤을 추며 괴성을 질렀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황제는 다리가 후들거려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부족의 사제(司祭)는 긴 칼을 휘두르며 황제에게 다가왔고, 그는 포로의 둘레를 빙빙 돌면서 여러 각도에서 포로의 몸을 살폈다. 포로를 신에게 제물로 바치려면, 그 포로가 ‘완벽한 몸’을 지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사제가 손짓을 해 춤과 음악을 멈추게 했고, 그는 황제의 잘려나간 손가락을 가리키며 이렇게 소리쳤다.

“이 자는 신에게 바칠 만 한 자가 아니다. 흠집 있는 자를 신에게 바칠 순 없다.”

군중은 안타까워하며 탄식했다. 사제는 포로를 묶고 있던 넝쿨을 단칼에 끊은 뒤, 포로의 엉덩이를 발로 차 밀림 밖으로 내쫓았다.

죽기 직전에 가까스로 풀려나 황궁(皇宮 : 황제의 궁궐 - 옮긴이)으로 되돌아온 황제는 비르발을 불러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날 겪은 일을 설명하며 말했다.

“승상이 옳았소. 짐이 손가락 하나를 잃은 것은 결국 좋은 일이었으니까. 덕분에 야만인들한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살아 돌아올 수 있었잖소?”

황제는 말을 마친 뒤, 이번에는 다시 비르발에게 물었다.

“짐의 일은 그렇다 치고, 경은 짐이 경을 감옥에 가뒀을 때, 왜 그것이 자신에게 좋은 일이라고 한 거요?”

비르발은 대답했다.

<다 나쁜 일>은 없습니다. 어떤 일이든 좋은 면이 있기 마련이옵니다. 만약 신(臣)이 감옥에 갇혀 있지 않았다면 오늘 소신(小臣 : 신하가 임금에게 자신을 낮추어서 일컫던 말 - 옮긴이)은 당연히 폐하와 함께 사냥을 나갔을 것이고, 함께 야만인들에게 붙잡혔을 것이며, 당연히 손가락이 온전한 소신이 희생물로 바쳐졌겠지요.”

황제는 그의 슬기에 감탄하며 말했다.

“그렇군. 과연 ‘모든 일은 다 까닭이 있어서 일어난다.’는 말은 진리요.

- 내(잉걸)가 어느 ‘네이버’ 회원의 블로그에서 본 글

(원문에서 문법과 어법에 맞지 않는 부분과, 어려운 한자말과, 갈마[‘역사’]에 비추어 보았을 때 맞지 않는 표현을 고쳤습니다만, 글의 내용 자체는 바꾸지 않았습니다 : 잉걸)

▶ 옮긴이(잉걸)의 말 :

불행이 더 큰 불행을 막아줄 수도 있고, 사람은 자신이 겪은 불행 때문에 목숨을 건지거나, 명예를 지키거나, 새로운 길을 찾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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