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전국시대에 중앙아시아에서 제하(諸夏) 북부로 들어온 밀

개마두리 2023. 10. 12. 22:11

제하(諸夏) : 흔히 중국으로 불리는 나라/세계를 일컫는 다른 이름. 논어 와 정사(正史) 삼국지 에도 나오는 말이다. 근세조선의 역사책인 조선왕조실록 』 「 성종실록 에도 근세조선을 우리 동방으로 부르고, ‘중국제하로 부른 구절이 나온다.

 

(제하의 전국시대에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새로 등장한 농작물도 진()나라(시호가 진시황영정이 여섯 나라를 무너뜨리기 전까지는 []’은 제국이 아니라 왕국이었다. 그러니까 이 글에 나오는 진나라진 왕국이다 옮긴이)의 번영에 도움이 되었다.

 

서아시아(西아시아. 흔히 중동이라 불리는 곳의 바른 이름. ‘가운데에 있는 동양이라는 뜻인 중동[中東]’은 유럽 사람들이 자신들의 고향에서 서아시아를 보고, ‘유럽과 동아시아/동남아시아/남아시아 사이에 끼인 동양이라는 뜻으로 붙인 이름이므로, 올바른 것이 아니며, 아시아인들이 써야 할 이름도 아니다 옮긴이)에서 들어온 밀(사실은 중앙아시아에서 진[] 왕국으로 건너왔을 가능성이 크다. 진 왕국과 서아시아 사이에 중앙아시아 나라들이 끼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서아시아가 원산지인 밀이 중앙아시아로, 다시 중앙아시아에서 화북[華北]지방 내륙에 있던 진 왕국으로 밀이 건너온 것이다 옮긴이)이 전국시대 동안 수수를 대신해 주요 작물로 떠올랐다.

 

밀을 심으면 지금(전국시대 초기 옮긴이) 먹는 수수보다 더 많은 양을 수확할(거둬들일/거둘 옮긴이) 수 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밀이 수수보다 더 맛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옮긴이).

 

(따라서, []나라나 서주[西周] 사람들이나 춘추시대의 진[]나라 사람들은 밀가루 대신 수수로 만든 음식을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수수는 쌀이나 밀보다 꺼끌꺼끌하고 거친 곡식이니, 그걸로 만든 음식을 먹은 하/서주/진 나라 사람들의 혀는 꽤 고생했을 것이다 옮긴이)

 

사람들(진 왕국 사람들 옮긴이)은 맷돌을 만들어 밀을 갈아 밀가루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제 국수, , 만두와 찐빵을 만들어 먹을 수 있어!”하고 말했고(“아니, <중국[제하]>에 서양 사람들이 건너오기 전부터 이 있었어?”하고 물어보실 텐데,

 

내가 스물일곱 해 전에 읽은 책에 따르면, 2 [] 왕조 무조[武照]의 무주[武周]가 망한 뒤 다시 세워진 당 왕조 - 때에도 화북지방에는 서양의 빵과는 다르지만 - ‘이라고 불릴 만한 먹을거리는 있었고, 제하의 전통 요리, 그러니까 이른바 중화요리가운데에는 꽃빵으로 불리는 밀가루 빵이 있다.

 

그리고 중화요리가운데는 만두[饅頭]’로 불리는, 속에 아무것도 안 들어있는 구형[球形. 공처럼 둥근 모양] 밀가루 빵, 그러니까 찐빵과 비슷한 음식도 있다.

 

그러니, 이 글에 나오는 묘사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 이 글의 설명이 완전히 정확한 것은 아니라, 그 부분만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이 글은 제하 한족[漢族]’들의 선조가 된 사람들 가운데 일부인 진[] 왕국 사람들이 밀이 들어온 다음에야 국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었다고 설명하지만, 사실 화북지방에 살던 사람들은 제하의 전국시대가 시작되기 1524년 전부터, 그러니까 하[]나라 초기부터 조나 피나 수수로 국수를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자세한 것을 알고 싶은 사람은 이 게시판의 글인 「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음식 5가지 를 읽어보라], 이 설명은 하나라 때부터 춘추시대 말기까지는 조나 피나 수수로 국수를 만들어 먹던 화북지방 사람들은, 전국시대에 중앙아시아에서 밀이 들어온 다음부터는 밀로 국수를 만들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로 바꿔야 한다.

 

덧붙이자면, 내가 볼 때 만두”, 그러니까 구형인 밀가루 빵이 아니라 오늘날 한국에서는 만두로 부르고 한자로는 교자[餃子]’포자[包子]’로 부르는 음식은 절대 한족의 고유 음식이 아니다.

 

내가 네 해 전에 들은 설명에 따르면, 어느 다큐멘터리는 만두는 중앙아시아 유목민이 만들어 먹었던 음식인데, 중국으로 들어와서 뿌리 내렸다.”고 설명하고, 중앙아시아에서는 만두만트라고 부르는 민족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만두는 원래 중앙아시아와 몽골초원의 음식이었고, 그것이 밀과 함께 제하의 전국시대에 중앙아시아와 가까운 진[] 왕국으로 들어왔으며, 나중에는 한족[漢族]’들도 먹는 음식이 되었다고 봐야 하리라[내가 열네 살 소년이던 해, 그러니까 서기 1992년에 사서 읽은 정석원교수의 책 불가사의한 중국인 -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에도, “국수만두가 원래는 한족의 것이 아니라 북방 유목민족의 음식이었다는 설명이 나온다. 나는 국수는 한족이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만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덧붙이자면,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몽골초원에서 만주로 건너간 만두도 있고, 배달민족은 아예 만트만두로 발음을 바꾸고 그것을 만드는 방법도 유목민족에게서 받아들였을 것이다. 아니면 배달민족을 이루는 여러 겨레들 가운데, 오환족이나 훈나(‘흉노의 바른 이름)계 선비족이나 선비족처럼 유목민족도 있으니, 그들이 만두라는 명칭과 만두 만드는 법을 코리아(Corea) 반도와 만주와 연해주로 가져왔거나]

 

[만두가 유목민족의 음식이 된 까닭은 다음과 같다. 만두는 만두피가 만두소를 감쌌기 때문에, 밥이나 죽이나 국수와는 달리, 굳이 접시나 그릇이나 식기가 따로 필요하지 않고, 베어 물지 않는 한 내용물이 흘러넘치지 않으며, 손에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다. 이것은 빨리 움직여야 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유목민족의 삶과 잘 들어맞는다. 튀르키예를 비롯한 서아시아나, 카자흐스탄 같은 중앙아시아에서 케밥이 나타난 까닭도, 그것이 온갖 재료를 빵으로 감싼 뒤 들고 다니면서 먹을 수 있는 간편한 음식이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라부터 춘추시대 말기까지는 한족[漢族]’의 조상이 되는 화북지방 사람들[상(商)나라를 세운 상족(商族)과 하북성/산동반도의 원주민들과 전국시대 이전의 진(秦)나라 사람들은 빼겠다. 역사기록과 고고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보면, 그들을 한족으로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은 빵과 만두를 만들어 먹지 않았고, 밥이나 죽이나 떡이나 잡곡 국수만 먹었으며, 전국시대부터야 빵과 밀가루 국수와 만두를 만들어 먹기 시작했다고 봐야 한다.

 

[나는 제하식() 빵을 만들어 먹는 방법도 진 왕국 사람들이 중앙아시아 사람들로부터 배운 게 아닌지 의심한다. 밀과 밀가루가 뭔지도 모르고 살았던 사람들보다, 이미 오래전 서아시아로부터 밀을 받아들여 길렀고, 그것을 진 왕국을 비롯한 화북지방에 건네준 사람들이 빵을 먼저 만들어 먹었을 가능성이 높은 건 당연하지 않은가? 그리고 빵 만드는 방법을 화북지방 사람들에게 가르쳐줬을 가능성이 높은 것도 당연하지 않은가?]

 

내가 이런 사실을 길게 설명하는 까닭은, 이른바 중화권한족[漢族]’들과 한국 안의 사대주의자들과 서양이 잘못 아는 것과는 달리, ‘한족이나 그들의 조상이 되는 겨레들이 다른 나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한족이 문화나 문물을 만들어서 준 것도 있지만, 다른 나라나 문명권이나 겨레로부터 받은 문화/문물도 있다!], 그것은 고대나 중세에도 일어난 일임을 강조함으로써, ‘한족들의 중화사상과 한국 안의 사대주의와 모든 동아시아 문화는 <중국(제하)> 문화의 아류라는 서양인의 인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서다. - 옮긴이),

 

그래서 덕분에 우리는 더 좋은 음식을 더 많이 먹을 수 있게 됐어.”하고 말했다.

 

그러나 진 왕국이 밀을 들여온 게 마냥 좋기만 한 건 아니었으니, 그 나라가 있던 화북지방의 내륙은 밀을 재배할(기를 옮긴이) 만큼의 충분한 비가 내리지 않아, “더 많은 물이 필요했고, 그래서 서기전 246, () 왕국은 그 시대의 최대 관개사업인 정국거(鄭國渠)’라는 운하를 건설했다.” 이 운하가 다 만들어지기까지 무려 열 해가 걸렸고, 이 운하가 만들어진 뒤부터는 진 왕국이 많은 물을 끌어들여 밀 여름지이(‘농사[農事]’/‘농경[農耕]’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옮긴이)에 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까 진 왕국은 이웃나라인 중앙아시아의 나라들로부터 밀이라는 새로운 식물을 들여왔고, 그 밀이 곡식 생산량을 늘렸으며, 진 왕국 사람들은 밀 때문에 더 맛있는 음식들을 만들 수 있었고, 밀가루 국수를 만들어 자신들의 전통 음식문화를 더 풍부하게 만들었으며, 빵과 만두라는 새로운 음식문화를 받아들였고, 그 모든 것을 유지하려고 운하를 만들어 밀밭에 댈 물을 끌어들이는 토목공사를 한 것이다. 이처럼 새로운 식물이 들어온다는 건 단순히 식생만 바뀌는 게 아니라, 그 식물을 써먹는 인간집단이나 그 식물이 들어온 지역의 문화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그 일은 식물을 전해준 사람들의 문화도 들어오는 계기가 된다. 나는 그 사실도 여러분에게 강조하고 싶다 - 옮긴이)

 

→ 『 만화로 읽는 중국사 1 ( ‘류징[ 劉京/유경 ]’ 지음, ‘이선주옮김, ‘()레디셋고[RSG]’ 출판사 펴냄 )에서

 

단기(檀紀) 4356년 음력 828일에, ‘식물의 갈마는 그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갈마와 문화와 경제와 사회를 바꾸며, 동물의 갈마도 그 점은 마찬가지다.’하고 생각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